산산이 부서지는 눈부신 우리의 날들이 다시는 오지 못할 어둠으로 가네
처음 ?의 방을 앞에 두고 무슨 생각을 했더라? 알고 싶어. 그래, 그랬던 것 같다. 단순한 호기심만은 아니었다. 호기심이었다면 진작에 도망쳤을 것이다. 그보다도 가슴을 쿵쾅거리며 저를 부추긴 건 두려움.
두려웠기 때문에 열고야 말았다. 제 두려움의 실체를 알고 싶어서.
안에는 무언가 역한 냄새와, 정신을 어지럽히는 거울로 된 벽이 있었지. 제가 찾고 있던 건 늑대였다. 이 안 어딘가에 늑대가 숨겨져 있어. 그렇게 믿었다.
파작, 하고 거울에 흠집을 내고 그 너머에 빈 공간을 찾았을 때는 약간의 기쁨, 그리고 기쁨보다 큰 두려움.
“선생님은… 여기에 누가 들어온 것 같다는 보고를 받아서 감시중이란다. 혹시 모르니?”
그 때 이미 들켰던 것이겠지. 벽에는 제 신력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제 여우는 그 모든 것을 지켜보았으니까.
“단아. 말하지 말아줘. 부탁, 이야.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돼.”
“신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다른 신님들께도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정말로 여우를 믿었냐고 물어본다면 고개를 젓겠지. 하지만 믿지 않는다고 마땅히 다른 도리가 있던 게 아니었다. 그래서 믿는 척을 했다. 믿는 척, 아무것도 모르는 척, 아무것도 저지르지 않은 척.
겁쟁이이면서 비겁하고, 그런 주제에 하지 말란 것만 골라하던,
모순된 아이.
【규칙. 또 위반하고 싶지 않아?】 ……쉿, 조용, 히 해. ……누군가 들어. 【이미 많이 저질렀는데. 그치? 궁금해서.】 궁금해. 궁금하지만, ……그리워하고 있지만,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모르겠어. 【‘우리’는 널 보고 있어. 모두를 보고 있어. 네 안의 빈 곳은…… ……그러게. 왜 비었을까.】 ……무엇, 을 알고 싶은지조차…… 모르겠어. 모르겠어서, 더 찾고, 있어. 쫓고 있어. ……나는 나쁜 아이야. ──그러니까 들리지 않는 척을 해. 착한 척, 나쁘지 않은 아이인 척. 들키면 안 돼. 알려져선, 안 돼. 【……그래. 들키지 말자. 나는 계속 착한 아이. ……착한 아이가 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나쁘지는 않은 아이.】 |
이도저도 되지 못하고 실패한 아이.
“……미안. 나, 나는…… 도와줄, 수 없어.”
도깨비쥐에게 도와달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저는 달라진 게 없었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너희, 는…… 사람을, 해칠 거야. …………내, 친구들, 도. …………서울이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내 친구, 들을 죽인 건…… 어른들도 똑같아. 하, 하지만…… 난, …………무서, 워. 나는, ……그렇다 해도, 전쟁 같은 건 바라지 않아.”
무언가를 선택하기보다 방관하기를 택했다. ──가장 안 좋은 선택이었다. 비겁하고 무력한.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떴을 때 제 시야를 덮은 건 온통 까만 어둠이었지. 묶여 있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에 가려진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이 멀어버린 줄로만 알았다. 덜컥 두려움이 몸을 덮쳤다.
“신님께서 저희의 뜻에 따라주시지 않는 것은 유감입니다. 하지만, 신님께서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괴물이 찾아갈 것입니다.”
새까만 어둠 너머로 기이한 목소리만이 들렸다.
“당신에게 찾아가는 것은 괴물뿐입니다. 죽이십시오. 기한은 1주일이지만…… 만일 명령에 불복할 경우, 하루씩 늘어납니다.”
그리고 이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느낄 수 없었다.
캄캄한 건 싫어. 어둠은 무서워. 혼자인 건 싫어. 누군가 곁에 있어줘. 왜 아무도 없어? 아무도 없어? 아무도 없어? 아무도 없어? 아무도 없어? 아무도 없어? 아무도 없어? 아무도 없어? 아무도 없어? 아무도 없어? 아무도 없어? 아무도 없어? 아무도 없어? 아무도 없어? 아무도 없어? 정말로?
내가 나쁜 아이여서 그래?
무서웠다. 두려웠다. 쓸쓸했다. 추웠다. 그리웠다. 원했다. 누군가를, ……곁에 있어줄 누군가를. 손을 잡아줄 상대를, 등을 보듬어줄 상대를. 엄마, 아빠……, 하산아……, 유리야……. 얘들아………….
바닥에 누워 천천히 식어갔다. 어둠에 정신까지 먹혀들 듯, 무기력해졌다. 가금 배를 곪다 못해 바닥을 더듬으면 맛이 느껴지지 않는 음식을 주워 먹고 다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을 천천히 눈으로 더듬다 감아버렸다.
나는 살아있는 걸까? 죽은 걸까? ……어쩌면 이미 죽은 걸지도 몰라. 여우의 손에 이끌려 도깨비쥐의 소굴까지 온 것도 다 꿈일지 몰라. 그렇지, 이미 죽은 거야. 백단이랑 같이, 방울이랑 같이,
분명 와작, 으깨졌을 거야.
그래, 차라리 이미 죽어버린 거라면───
“%^끼이^*”
화들짝 놀랐다. 이렇게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워졌는데, 전혀 모르고 있었다. 소리가 들린 쪽으로 멍하니 고개를 움직인다. 어라, 움직이네? 왜 아직 움직일까? 잘 모르겠다. 소리가 가까워져. 하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아. 포기한 듯 멍하니 있는다.
네가 괴물이야? 내가, 죽여야 하는? 목소리를 냈던가? 잘 모르겠다. 입술이 달싹거린 것도 같은데,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모르겠어. 모르겠어. 나는,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해. 그러면 네가 날 죽일 거야?
멍하니 있자 저쪽에서 다가와 주었다. 딱딱한 것이 목을 스쳤다, 멀어졌다.
왜 멀어져? 왜 죽이지 않아? 그러면 내가 널 잡아버릴지도 몰라. 멀어지지 마. 날 혼자두지 마. ……또 혼자 남겨지는 건 싫어.
그 때 또 다시 목소리가 들렸지.
【잡아둘 수 있잖아?】
……잡아두면 될까? ……그럼, 옆에 있어줘?
【옆에 있도록 계속 잡아둘 수 있겠지.】
그럼 잡아둘래. 잡아둘 거야. 멀어지는 건 싫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힘 조절, 잘 못 할지도 몰라. 아프면, ……미안해?
오랜만에 쓰는 신력이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아서, 잘 썼는지 알 수가 없다. 도혁이가 쓰던 모습을 떠올려보려고 했는데, 미안해. 기억나지가 않았어.
시야에 가득한 어둠을 휘둘렀다. 그물처럼, 던졌다. 무언가 잡혔어. 당길까? 새기는 걸 주로 하다 보니까 이런 건 익숙하지가 않은데……,
푸직.
붙잡은 그것은 차가웠을까 따뜻했을까. 딱딱했을까 물렁했을까. 잘 모르겠어. 느낄 수 없어.
그래도 꼬옥 안아주었어. 친구니까, 옆에 있어줄 거지?
───그렇게 다시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감각이 무뎌진다. 알 수가 없어. 또 다시 소리가 들렸다.
“신&*님.”
다른 친구야? 이리 와줘. 멍하니 손짓을 해보았다. 하지만 목소리는 한참을 가만히 머물다 또 제게서 떠나가려고 했다. 안 돼. 가지 마.
【친구를 잡을까?】
그 때 또 들려온 목소리. 이번에는 목소리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잡자. 그물은, 어둠은, 아주 많아.
친구를 잡았다. 무언가 흐르는 소리가 난 것도 같다. 하지만 보이지 않아. 느껴지지 않아.
그저 친구를 꼬옥 안아주었다.
내 친구. 가면 안 돼.
이상하기도 하지.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품 안에 있던 친구는 사라졌어. 나만 두고 어디로 가는 거야? 왜 자꾸만 날 혼자 두는 거야? 몇 번이나 그런 일을 반복했을까.
또 누군가 제게 말을 걸었을 때, 더 이상 제게는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괜찮아. 붙잡으면, 곁에 있어줘. ……있어줘.
“안 돼, 죽고 싶지 않──”
싫어, 가지 마. 떠나게 두지 않아. 나는 그저, 친구가 보고 싶을 뿐인데. 내 곁을 떠나지 않을 친구가 필요할 뿐인데. ……왜 곁에 있어주지 않는 거야.
자꾸만 나를 슬프게 만들어.
【──지금 뭘 하고 싶어?】
…………친구가, 보고 싶어.
붙잡고 싶어.
누구라도 좋아.
제발,
곁,
에
있어줘────.
“이 정도면 된 것 같군요.”
……마침내 빛이 제 눈에 돌아왔지만, 제 눈은 더 이상 아무것도 비출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나 찾아 헤매던 【공백】이 누이였고, 나리였으며, 성하였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야 노아의 누나인걸. 언제나 노아를 지켜보고 있는 게 당연하지.』
【공백】의 자리는 산산이 부서지고, 저를 지켜주던 시선을 잃었다.
눈부셨던 과거의 날들이 제 정신과 함께 어둠에 먹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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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안예은, 홍연 인용
여기까지가 1부 (13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