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갖는 공포, 경험하였기 때문에 갖는 공포. 디모넵이 고스트 타입의 포켓몬을 향해 갖는 공포는 전자이면서 곧 후자였다. 오래도록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갖지 않던 것이었다.
문득 극복하고 싶다는 생각이 움트게 된 것은 어느 울보 고오스 덕분이었다.
영원의 숲을 기억한다.
사람들은 기쁠 때도 슬플 때도 꽃을 샀다. 디모넵은 축하의 꽃다발만큼이나 애도의 꽃다발을 엮어보았다. 바구니 가득 꽃을 싣고 숲을 지났다. 비석 위로 놓인 꽃들을 볼 때면 묘한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이별의 슬픔, 애도와 추모, 기억에 새기는 것, 꽃과 함께 남기는 것, 강물에 흘려보내는 것까지.
생과 사를 곱씹었다. 꽃의 일생을 보는 사람에게는 퍽 익숙한 일이었다.
의외로 근방에서 자주 마주치는 포켓몬 중 하나였다,
고오스는.
가까운 숲속 깊은 곳에 폐가가 있던 탓일까. 가스로 이루어진 고스트 타입. 고스트 타입들이 대개 그렇듯 장난을 좋아하는 짓궂은 녀석들. 낮에도 어두컴컴한 숲 안쪽은 디모넵에게 늘 미지의 영역이었다. 미지로 두려는 것이었다. 무엇을 알게 될지 두려웠다.
그래도, 싫어한 적은 없었다. 불호와 공포는 다른 것이었으니.
그러니 이 자리를 빌려 한 번 더 짚고 넘어가자면 디모넵은 여태껏 메시를 싫어한 적이 없다. 그 아이를 두려워한 것은 아이를 알아서가 아니었다.
단어를 반복해 설명을 하자면 디모넵은 그 고오스를 몰랐기에 모든 고오스를 두려워하듯 공포를 집어먹었다. 그러나 한 달 하고도 다시 반 달이라는 시간은 미지를 알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하룻밤 사이에 가스로 몸을 숨기던 수줍은 많던 아이가 그림자를 꿰매며 나타났다. 모습이 변했다고 하여 새삼스럽게도 두려울 것은 없었다. 아이는 디모넵이 잘 아는 그대로였다. 신기하게도 겁나지 않았다.
“이리 와, 메시. 나는 이제 네가 무섭지 않아.”
겁이 많은 아이였다. 잘 울고 잘 놀라고 잘 움츠리고 잘 도망가고, 정작 무얼 그렇게 무서워하는지 들어본 적이 없다. 디모넵이 아이를 무서워하는 만큼 아이에게도 디모넵은 무서운 존재였을 것이다. 제가 상대를 놀라게 할지도 모른다는 무서움 말이다.
“너를 무서워하지 않으려고 고스트 타입을 알로 받으려 했었어.”
폭 안겨든 몸은 생소하고 낯선 감촉이었다. 풀타입의 서늘함과는 다른 오싹하고 저릿한 한기, 살아있는 생물 같지 않은 섬칫한 감각. 그러나 이것을 두렵다고 이름붙이지 않는다. 이 아이를 무서워하는 건 정말 미안한 일이다.
“그 때는 좀 치기어린 행동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말이지. 조금… 괜찮을 것 같아.”
지금이라면 좀 더 잘 네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어때, 메시. 진화한 스스로는 기뻐? 이제 변화가 무섭지 않아? 네가 이상한 게 아니라고 괜찮다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너는 어떤 외형을 갖더라도, 네가 어떤 포켓몬이라고 하더라도 상냥하고 귀여운 메시인 건 그대로인데.
숨죽여 우는 아이를 따라서 꼭 끌어안고 아이의 트레이너가 자주 해주던 것처럼 이마에 쪽, 가벼운 키스를 남겼다.
“네게는 미안한 마음이 아주 많은데, 그런데도 너는 여전히 착한 메시여서 기쁜 거 있지. 이렇게 안아줄 수 있게 되어서.”
하나도 무섭지 않고 무섭게 생기지 않았어. 모두가 그럴 거야. 널 제일 무서워하던 내가 괜찮아진 것처럼. 앞으로의 네 길에 늘 따스한 축복이 함께하길 바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