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은 나란히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그것도 좋지만, 나는 당신의 바로 앞에 마주 서 새 발자국을 남겼다. 그리고는 당신의 머리색처럼 어딘지 뿌옇게 흐릿한 미소를 바라보며 먼저 손을 뻗었다. 손바닥에 와 닿는 것은 변함없는 온기. 지금은 내 쪽이 조금 더 체온 높을까? 바깥을 걸은 탓인지 살짝 뻣뻣해진 손가락을 꼭 감싸 쥐고는 까만 눈동자 안에 당신의 표정을 담는다.
당신의 머릿속에 어떤 지독한 태풍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걸까.
“내가 경멸하거나 두려워할까봐 무서워?”
내가 당신의 말을 듣고 곁을 떠날까봐 두려워? 느릿하게 질문을 던진다. 표정을 읽어본다.
그렇다면 루, 나는 곁을 떠나지 않아. 떠날 걸 걱정할 만큼, 내가 당신의 잃고 싶지 않은 존재인 만큼 내게도 당신이 똑같을 테니까. 단지 그것만으로 곁에 있을 거야.
나도 이것저것 고민했는데 말야. 역시 생각나는 건 이 말뿐이네. 새까만 눈동자를 샐쭉 접으며 미소를 그린다.
“언젠가 해야 할 말이라면 내게 주었던 편지와 같은 얘기일까? 지금 얘기하고 싶지 않으면 그걸로 됐어. 하지만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선 안 돼. 내 대답은 지금이랑 같을 테니까.”
당신이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책임이 그 어깨에 올라앉아 당신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을까. 전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선택이란 것이 정말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어. 그게 내가 선택할 일인지조차. 하지만 설령 어떤 길을 고르게 되더라도, 그 길이 어디를 가리키더라도 나는 내가 향하고 싶은 곳을 향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