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츰차츰 달라지던 눈높이가 어느새 역전되어버렸다. 그래봐야 나란히 섰을 때 티도 안 나는 수준이지만, 길게 넘실거리는 하늘 빛깔의 옆에서 눈으로 좇으며 에슬리는 한 번 더 5년의 시간을 실감했다. 방문이 열리자 안쪽에서는 네펠레가 말해준 것처럼 좋은 향이 났다. 향의 근원지를 찾아 두리번거리자 한쪽에 매달린 포푸리가 보였다. 귀여운 주머니네. 슬며시 웃으며 걸어 들어가자 네펠레는 조금 부산스럽게 차를 끓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방 안은 과거에 방문하던 곳과 공간만 달라졌을 뿐 분위기는 그대로인 것 같았다. 잠이 잘 올 것만 같은 푹신한 이불과 쿠션, 그 옆으로 그녀의 다양한 취미가 엿보이는 책들이 꽂혀 있었다. 여전히 사랑스러운 방이네. 하고 웃음 짓다가 어라, 저 커다란 악기는 뭐지? 에슬리의 고개가 잠깐 모로 기운다.
“자, 에슬리. 캐모마일이에요!”
“아, 고마워. 펠. 잘 마실게.”
김이 피어오르는 차를 홀짝이며 소소한 잡담 같은 것을 나누었다. 만나지 못하는 동안에도 편지는 꾸준히 나누었지만 역시 얼굴을 보고 있으면 별 것 아닌 이야기도 나오기 마련이다. 동생의 편지가 언제 올지 기대되네. 몇 번째일지 모를 화제를 꺼내다 먼저 하품을 한 건 아마도 에슬리였겠지. 졸려요? 그 물음에 조금, 하고 눈을 비비자 그럼 슬슬 잠자리에 들자는 말이 나왔다.
침대는 두 사람이 함께 누워도 무리가 없어 보였다. 여기서 같이 자는 건 꼭 5년 만인가. 체온이 닿으면 안심이 된다고 그녀가 가르쳐주었지. 마주 보고 눕자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쑥스러운 미소부터 흘렀다. 이렇게 마주보고 속닥거리면, 굉장히 두근두근하더라. 두서없이 나온 에슬리의 말에 저도 그래요. 하고 네펠레는 과거가 달라지지 않은 앳된 미소를 보여주었다.
5년 전에도 이랬었지. 온기를 나누고 둘 밖에 없는 조용한 방 안을 속삭임으로 채우다가 스르륵 잠이 들었다. 펠이 편히 잠들 수 있길 바라서 온 건데 언제나 펠이 잠드는 걸 보기 전에 내가 먼저 잠들어버려. 그래서 이후에는 몇 번인가 자지 않고 버티려고 했지만 그 편이 네펠레를 신경 쓰이게 해 더 잠들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대신에, 이렇게 스르륵 잠이 들었다 눈을 뜨면 언제인지 몰라도 겨우 잠이 든 그녀를 볼 수 있었다. 여명이 스며드는 아래 분홍색 깃털이 볼가에 닿은 채 새근새근한 숨소리를 낸다. 그 숨소리가 안정적임을 확인하고 이런 펠을 지켜보는 것 또한 제 특권이라며 에슬리는 히죽 입 꼬리를 당겼다.
“내가 펠에게 기분 좋은 잠을 선물해주었다면 기쁠 거야.”
생일 축하해, 펠. 자고 일어났을 때도 당신이 행복하길 바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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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이랑 같이 자는 로그는 1부 때도 한 번 써보고 싶었다가 타이밍을 놓치고 2부 때야 썼네요. 러닝 기간이 기니까 캐릭터들 생일도 엄청 축하해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