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892

022. Happy Trick Night

with. 이르한 더보기 도대체 누가 핼러윈이라고 코스튬을 다섯 벌씩 갈아입을 생각을 하느냐고 투덜거리면서도 멜로우는 이르한의 제안을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했다. 「이것도 재밌을 것 같고, 저것도 재밌을 것 같지 않아?」 온갖 종류의 핼러윈 코스튬을 늘어놓는 모습에 「너한테 재미없는 게 어디 있어.」 퉁명스럽게 답했더니, 그치고는 드물게 정색을 하고 「그게 무슨 소리야. 나도 재미없는 것쯤 있다고. 아니, 오히려 재미없는 게 더 많지.」 진지한 답이 돌아온 것이다. 기세에 잠깐 주춤한 게 문제였다.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재미있는 일이라면 놓치고 싶지 않아.」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기도 하고-원인이 여기 있군. 멜로우는 늘 그를 이해하고자 한다!-결국 옆에서 함께 코스튬을 골랐다.늑대와 빨강 망토, 이상..

내려앉은 밤 2025.11.01

021. 남겨진 자들의 무도회

With. 레이람 남겨진 자들의 무도회더보기 실체 없는 것들이 무게를 가지고 짓눌러올 때가 있다. 커튼처럼 몸을 휘감고 연기가 코와 입을 틀어막는 감각이다. 악몽이 집요하게도 쫓아왔다. ‘가지 마.’, ‘떠나지 마.’ ‘▒를 여기 ▒▒지 마.’ 아무리 몸을 비틀고 바르작거려도 떨쳐낼 수 없었다. 가위에 눌리는 걸까? 멜로우는 가위눌림이라는 현상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의식과 육신의 균형이 어긋날 때 발생하는 현상이다. 의식은 유령처럼 육신의 위로 붕 뜨고 낚시줄에 걸린 물고기처럼 육신은 펄떡펄떡…… 추레하기도 하지.가위에 눌리는 것만으로 사람은 죽지 않는다. 아무리 이 순간이 고통스럽다 한들 결국엔 끝이 있었다. 끝만을 바랐다.숨이 넘어갈 듯한 고통에서 깨어났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

내려앉은 밤 2025.10.31

020. Life will continue

For. 이르한 더보기 내 행복을 바란다고 말해준 너인데, 나는 네 곤란한 얼굴이 제법 좋은 것 같아. 조금 짓궂어도 이해해줘. 드디어 우리 눈높이가 맞은 기분이거든. 그러니 좀 더 내려와. 내 목소리가 잘 들리도록.자, 그럼 네 숙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너는 불행에 대해선 잘 알지만 행복은 아직 잘 알지 못하는구나. 언젠가 꼭 행복해지라고 하지만 네가 말하는 행복한 내 모습이란 어딘지 현실과 동떨어진 동화 속 결말만 같아. 날 위해 준비한 네 축복 어린 말, 모든 아름다운 것과 듣기 좋은 것, 다정한 것을 한 곳에 모아둔 선물상자가 기쁘면서도, 글쎄. ──사람이 언제나 행복하기만 하진 않잖아.어떤 이상적인 행복이라도 영원하지 않아. 불행의 저주가 사라진 뒤에도 나는, 그리고 너는, 이 땅을 살아가는..

내려앉은 밤 2025.09.14

019. What Men Live By

For. 레이람 더보기 ──나는 있지, 레이람. 지켜봐 온 네가 더 잘 알겠지만 무엇이든 실증에 기반해 판단하는 사람이잖아. 언제나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치중하고, 중요한 것은 그것을 풀 수 있느냐 없느냐지.그리고 그 과정은 늘 혼자 치러 왔어. 타인의 문제에 관여할 때도 내가 그것을 해결할 수 있을지, 도움이 될지를 가늠하였고 내 문제에는 더더욱,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데 누구에게 도움을 청한단 생각은 하지도 못했지.실로 오만했고 자기중심적이었어. 하지만 풀지 못할 문제를 남들과 공유하는 게 무슨 도움이 되겠어. 괜히 짐을 나눌 뿐이지. 타인에게 내 치부를 보이고 싶지 않았어. 해결되지 않을 문제에 고작 맞대는 머리가 하나 늘어난다고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어.그런 내게 닥쳐온 도저히 나아..

내려앉은 밤 2025.09.14

018. First and foremost

For. 카이오르 더보기 언젠가 먼 과거의 기억, 화낼 줄 모르는 소녀를 대신해 화내주고 울지 못하면 대신 울어주고 자기를 옹호하지도 못하고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던 때에 「네 짐을 덜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내 존재가.」 그렇게 말해주던 믿음직한 소년이 있었다.-나는 나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아.기묘할 정도로 결벽적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들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다는 간절한 마음의 발로였으나 당시에는 무엇이 그렇게 두렵고 도망치고 싶은지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떨었다. 주어진 진실이 버겁고 죄의 무게에 짓눌려 버릴 것만 같았던 순간에 그 조그만 어깨를 당시에는 그렇게 차이나지도 않던 품이 강하게 끌어안아 주었다.-모두가 네 탓이라고, 설령 너조차도 네 탓이라고 해도……. 나만큼은 그때 그 ..

내려앉은 밤 2025.09.14

017. Life is about finding light within the darkness

For. 페나 더보기 갈수록 시선이 떨어지는 친우에게 멜로우는 손 뻗지 않고 지켜보았다. 자신이 한 말이 ‘가장 듣기 싫은 말 1위’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이런 점에서 서로 닮았으니까,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걱정이란 건 실질적인 해결책으로는 쓸모가 없다. 하는 입장에선 무어라도 상대를 위하고 싶어 보인 다정이나 받는 입장에선 걱정을 구실로 상대에게 무력한 자신을 낱낱이 드러내야만 했다. 상대가 언제 배신하여 칼을 꽂을지 모르는 두려움, 고통에 허덕이는 자신을 보여야 하는 비참함, 그 때에 상대가 지을 표정과 겪을 감정, 다시 그것을 감당해야만 하는 순간까지 모든 것이 갚아야 할 빚이요 부채감이며 거기까지 허락하고 싶지 않다는 일말의 자존심인 것이다. ──그 마음을 어떻게 모르겠어.다 알면서..

내려앉은 밤 2025.09.14

016. Girl You So Silly

For. 샤일란테 더보기 「네 잘못이 아니야.」「왜… 그게 네 죄라고 생각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거야?」「나는, 멜이 과거의 그들에 너무 매여있지 않았으면 좋겠어.」・・・「네 사정을 아는 녀석들도 그렇게 말했다면 다수의 의견을 받아들여보는 건 어때.」본인이 생각해도 이상한 집착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죄악감을 느끼고 스스로를 괴롭히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도 아닌데, 이성적으로는 그만한 책임을 느낄 일이 아니란 걸 알면서 기묘할 정도로 죄스러워하는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그것이 자해에 가까운 행동임을 자각하고 있었다. 끊임없이 상처를 파내고 일깨운다. 절대 잊어선 안 된다는 것처럼.그 마음이 단순히 죄액감이나 원망이었던 걸까.“──그곳에 두고 온 것이라도 있니?”실이 묶여서 계속 그 주변을 돌 수밖에 없는..

내려앉은 밤 2025.09.14

015. By doubting we come at the truth

For.페나 더보기 고작해야 10살에서 13살 아이들을 모아다가 한곳에 두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나이로, 지역으로, 생김새로, 취향으로 서로 닮은 꼴을 찾아 삼삼오오 모이기 마련이다. 두 사람은 그중에서도 조금 독특한 점에 주목하여 짝을 이뤘다. 무엇이냐 하면 ‘불행의 저주의 해주’. 어린아이가 의문을 갖기에는 상당히 거시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멜로우에겐 필사적일 이유가 있었고 그 의문에 페나는 기꺼이 동참해주었다.멜로우에게 그는 굉장히 중요한 동료였다. 자, 문장을 잘 읽어보자. ‘소중한’, ‘좋아하는’, 그런 것들과 조금 다른 ‘중요한’이다. 저주의 해주를 목표로 하는 렘즈미어에 직접 발 디뎌놓고 이 중에서 진지하게 저주를 해주하고자 하는 이들은 몇 되지 않음을 금세 파악한 바다.불행의 저주란 무..

내려앉은 밤 2025.09.14

014. 코틀라스의 이방인

개인로그 더보기 오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니, 어제인가.아직 봄이 오지 않은 429년의 어느 추운 날이었다.부고를 알리는 전보가 도착한 것과 신문에 제 조부의 이름이 실린 것은 거의 비슷한 시각이었다. 제목은 [어느 부조리한 죽음]. 조부는 죽어서 또 한 번 이름을 남겼다.멜로우는 행정반에 찾아가 휴가 신청서를 냈다. 휴가는 얼마나 쓸 수 있습니까? 되도록이면 이른 복귀를 바랍니다, 마농 경. 아시다시피 일손이 많이 부족해서요. 콘덴으로 우선 가야 했고, 코틀라스까지 더 들어가야 했다. 시간이 조금 빠듯했다. 그래도 멜로우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일손이 부족한 건 사실이었으니까.콘덴에 도착하자마자 그를 가장 먼저 반긴 것은 조부의 관이 아니라 당신의 동지라는 사람들이었다. 멜로우 역시 익히 아..

내려앉은 밤 2025.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