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신세계를 위하여 10

그 밤

비척거리는 발걸음으로 겨우 입구에 도착한다. 카드키를 갖다 대자 경쾌한 전자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조심스럽게 왼손을 뻗어 안으로 들어가자 온전히 제 냄새로만 가득한 자신의 영역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타인의 흔적 따위 없는 제 공간에 드디어 어깨의 긴장을 내린다. 깊은 한숨과 함께 구두를 대충 벗어던지고 불을 켰다. 한쪽 손으로 서툴게 정장의 단추들을 푸르고, 이어 넥타이를 잡아 당겨 벗고, 조끼, 다음으로 와이셔츠까지. 조금 구겨진 것 외엔 멀쩡한 셔츠의 단추를 위에서부터 하나하나 벗어 내리다 확 신경질이 솟았다. 그러나 제 힘으로는 단추를 튿어내는 것보다 얌전히 푸는 쪽이 현명하리라. 겨우 피부에 닿는 옷감들을 전부 떨어트리고 나서야 남자는 제 팔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오른쪽 팔이 어깻죽..

신세계 : 소노아

"불렀습니까? 용건은 짧게." 체이로( @ceiro_ )님 커미션입니다. [외관] 모발이 가느다란 검은 단발. 왼쪽 귀에 눈색과 같은 취마노 빛깔의 피어싱을 하고 있다. 선이 가늘고 마른 체격으로 특히 얇은 손목이 두드러진다. 옷은 기본적으로 깔끔한 쓰리피스 정장. 난조를 뜻하는 노란 손수건을 늘 소지하고 있다. 손수건의 끝부분에는 복수초가 수놓아져 있다. 다가가면 은은한 베르사체의 삼나무 향이 풍긴다. 조곤조곤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큰 소리를 내는 일은 매우 드물다.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무표정한 분위기를 띠고 있으며 영업을 위해 짓는 가면 같은 미소 외에 타인에게 미소를 보이는 일은 거의 없다. [이름] 소노아 [성별] 남 [신장 / 체중] 175 / 평균 -5 [나이] 29세 [소속] 난조파 [직급]..

개나리

『이것 봐요, 잔뜩 피었어.』 “응. 정말 잔뜩 피었네.”그녀의 말을 따라 하며 그 뒤를 쫓는다. 맞잡은 손은 나란히 걸어도 괜찮다고 해주었지만 조금 익숙하지가 않아 네 갈색의 머리칼이 나부끼는 걸 뒤에서 지켜보다가 결국 잡아당기는 손에 이끌려 나란히 보조를 맞췄다.함께 봄나들이를 가기로 결정한 건 몹시 즉흥적인 일이었다. 「개나리, 가윤이를 닮았어.」 그 말 한 마디에 불쑥 약속이 정해졌다. 아직 꽃봉오리가 피기도 전부터 그녀는 언제쯤 꽃이 다 피어날까요? 노래를 하며 기대했고 이윽고 언 땅이 녹고 메말랐던 땅 위로 파릇파릇한 잎사귀가 덮일 즈음이 되자 제일 먼저 자신에게 달려와 주었다.노아야, 꽃이 피었어요. 같이 보러 나가요!──바깥에 핀 꽃을 보기도 전에 환하게 웃는 그녀의 얼굴이 꽃처럼 곱다고 ..

함께 어른이 되는 꿈

“그래서 이번 수학여행 장소는…”“이번에도 선택권 1등은 우리 난조인가~ 대단한걸.”“한 번쯤은 다른 반에 줘도 좋았을 텐데 말이죠.”“그랬다가 우리가 산에 가면 어쩌려고.”“산엔 산의 재미가 또 있지.”“난 산 싫은데. 안 가, 안 가.”“뭐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올해도 난조는 호수?”“응, 찬성.”“나도.”“이의 없음.”“───, 노아는 어때?”왁자지껄한 목소리들은 어딘지 현실감이 없었다. 예전에 뒤적거리던 백과사전의 페이지에 고대의 문명이라며 텔레비전을 소개하던 것이 떠올랐다. 네모난 상자 안에서 사람들이 움직이고 말하던 기계라고 했던가? 꼭 텔레비전을 눈앞에 둔 것 같다. 혹은 연극.무대는 지금 이 기숙사 안이고 배우는 그를 제외한 모두다.어느 쪽이든 그가 저 안에 녹아드는 모습은 상상도 ..

방울 소리가 멎다

도깨비쥐가 주는 음식을 먹고, 그러다 잠이 들고, 문득 일어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에 잠겨서, 친구를 찾아 손을 더듬고, 그러다 혼자 남아, 아아…… 어둠에 완전히 먹혀버리면 차라리 편해질까. 외로움에 사무치길 반복해.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자신이 산지도 죽은지도 모르는 채 그저 막연하게 손발이 전보다 자랐다는 걸 느끼던 어느 날이었다. 임금쥐로부터 명령이 내려왔다.도깨비쥐가 인간에게 명령이라니, □■가 들었으면 기가 찼을 것 같아.……어라. 누구더라?잘 기억나지 않아.사실은 기억만이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너무 오래 머문 걸까. 잘 보이지 않고, 잘 들리지 않았다. 손발에 쇳덩이가 매달린 듯 무겁고 모든 것이 흐리멍덩해.아?당연한가.나는 살아있지 않으니까.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

산산이 부서지는 눈부신 우리의 날들이 다시는 오지 못할 어둠으로 가네

처음 ?의 방을 앞에 두고 무슨 생각을 했더라? 알고 싶어. 그래, 그랬던 것 같다. 단순한 호기심만은 아니었다. 호기심이었다면 진작에 도망쳤을 것이다. 그보다도 가슴을 쿵쾅거리며 저를 부추긴 건 두려움.두려웠기 때문에 열고야 말았다. 제 두려움의 실체를 알고 싶어서.안에는 무언가 역한 냄새와, 정신을 어지럽히는 거울로 된 벽이 있었지. 제가 찾고 있던 건 늑대였다. 이 안 어딘가에 늑대가 숨겨져 있어. 그렇게 믿었다.파작, 하고 거울에 흠집을 내고 그 너머에 빈 공간을 찾았을 때는 약간의 기쁨, 그리고 기쁨보다 큰 두려움.“선생님은… 여기에 누가 들어온 것 같다는 보고를 받아서 감시중이란다. 혹시 모르니?”그 때 이미 들켰던 것이겠지. 벽에는 제 신력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제 여우는 그 모든 ..

그렇게 소리가 어둠에 먹혔다

즐거운 축제날이었다. 안 좋은 예감 따위 조금도 들지 않던…… 그렇지. 짧은 인생 중 손 꼽아 즐거웠던 날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그 때 이미 운명은 결정되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볼 거 많겠지…. 먹을 것도. 한 바퀴 돌아보려고. 같은 자리 빙빙 안 돌고 잘…….”“그럼 오늘, 은…… 헤매지 않게.”체력이 좋지 않은 저는 평소부터 움직이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 날은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 제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현권, 신인학당에 와서 친해진 아이로, 언제나 구석에서 가만히 있는 제게 먼저 와서 말을 걸어주고 옆에 있어주던 친구였다. 특별히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함께 무언가를 그리거나 새기거나, 권이 곁에 있으면서 잔잔히 흘러가는 시간을 좋아했다.권이와 함께라면 축제도 즐거울 것 같아. 막연하게..

공백

【노아야, 뭐 하고 있었어?】어릴 때부터 숫기가 없는 편이었다.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하루를 꼬박 보내도 괜찮을 정도로 내향적이고, 얌전한 아이. 누이는 그런 저를 언제나 살뜰하게 챙겨주었다.“아, 버지의. …….”【대패질이라고 해. 신기하지? 저렇게 하면 나무가 매끈매끈해져서, 만져도 다치지 않는데.】제가 다 말하지 않아도 꼭 마음을 읽은 듯 먼저 말해주던 누이. 덕분에 저는 말이 서툰 채로도 불편함을 느낄 줄 몰랐다.【도와줄까?】“…… ……응.”【자, 여기. 연이 날아가서 곤란했겠다.】“…… ……응.”누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불쑥 나타나 제 손에 필요한 것을 쥐어주었다. 부르지 않아도 곁에 있었다. 언제나 언제나, 신기할 정도로.“……■□는 어떻게, 내, 가…… 말, 안 해도.”..

애매한 기억

: 채도화 “…안 돼, 소노아. ……그러면 안 돼.”그렇게 말하는 네 눈동자 너머로 진한 공허를 보았다. 한 번 삼켜들면 빠져 나오지 못할 것만 같은 그 우물 속에, 너는 어떤 것을 빠트렸어? 딸랑, 딸랑.두 개의 방울이 부딪치며 맑은 소리를 낸다. 습관처럼 제 머리카락을 넘기며 노아는 구석에 웅크렸다. 광장이든 계단이든 교실이든 어디라도 좋다. 다른 사람들의 잡담을 듣고 있으면 마치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 들어 노아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좋아했다.그러고 있으면 많은 이야기가 들려왔다.“어? 이 거울… 저번에 –한테 빌린 건데…… 누구였지?”“주인이 알아서 찾으러 오겠지.”“그런가?”“……우리 부모님은 연세가 굉장히 많은데 자식이 나 하나뿐이라 되게 애지중지 하신다니까. 어릴 때도 되게 ..

신세계를 위하여 : 소노아

(*인장은 안개님S2) "……듣고 있어." [외관] 빛이 통하지 않는 새까만 머리카락에 취마노 색의 눈동자. 신물은 눈 색과 같은 방울 2개로 처음 받을 땐 하나였던 기분이 들지만 언제부턴가 2개가 되었다. 선이 가늘어 언뜻 봐서는 성별이 헷갈리는 외모로 시선은 늘 아래를 향하고 있다. [이름] 소 노아 / 蘇 瑙雅 [성별] 남 [신장 / 체중] 156cm / 47kg [생일 / 나이] 3월 3일 / 만 13세 [소속 반] 난조 [출신지 / 초등교육기관] 인왕골 / 인왕원 [성격]내향적인 / 속내를 표현하지 않는 / 숫기가 없는 / 섬세한 /조금 무뚝뚝해 보이지만 모두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분란이 없고 모두와 화목하게 지내는 마을의 풍조에 따라서 모난 돌이 되지 않는 범위에서 조용히 어울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