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주노
「왠지 매일이 떨려요. 이상하죠, 바보같이.」
바보 같을 리가 없었다. 바로 여기, 그와 함께 언덕을 오르는 에셸의 기분이 바로 같았으니. 에셸은 그 말을 꼭 전해주고 싶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발되었을까, 당연한 의문을 캠프의 주최자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가 웃으며 답하기를 “여행이나 포켓몬과의 생활에 경험이 없는 사람”을 우선해서 뽑았다고 했다. 첫 여행, 첫 모험, 얼마나 설레는 울림인가.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으면서 동시에 처음이란 오로지 한 번뿐이다. 그 소중한 기회를 우리는 같은 날 쓰게 되었다. 처음(初め)이면서 동시에 시작(始め)하는 이 자리, 같은 출발점에 있었다.
나이도 출신지도 배경도 다른 32명의 캠프 멤버는 그래서인지, 능숙한 이든 서툰 이든 할 것 없이 모두 똑같은 표정을 하고 캠프에 임했다. 여행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었다. 그 순간의 얼굴을 에셸은 놓치지 않고 지켜봤다. 한 사람도 놓치지 않고. 하나의 감정이 모든 이를 관통하고 지나가던 순간이 무엇보다도 벅차고 설렜더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하나도, 바보 같지, 않아, 요."
──이건 온전히 숨이 가쁜 문제다. 마지막 한 발을 내딛는 순간 바보 같은 건 제 체력이 아닌가 0.1초 정도 자괴감에 빠지려다 금세 회복했다. 아니죠, 아니에요. 저는 더 나아질 거예요. 포지티브는 달링의 장점이다. 그 앞에서 미진한 체력을 보이는 건 부끄러웠으나. 점점 뒤쳐지는 걸음에 도리어 그의 걱정이 더 컸던 듯싶다. 지금이라도 멈출까 고민하는 기색에 그래서 더 손을 내저었다. 갈 수 있어요. 그럼요. 앞으로 오를 산이 몇 개인데요. 그 말에는 그도 납득하고 말았던가. 그것은 함께 걱정할 몫이 되겠지.
튀어나온 돌부리, 지면으로 굽은 뿌리, 움푹 파인 곳이며 머리 위로 뻗어든 가지까지 하나하나 일러주는 그는 처음 인사를 나눌 때부터 느꼈듯 세심하고 상냥했다. 익숙함이 주저함을 가려줘 언행이 물 흐르듯 흘러가기도 했다. 들판을 넘어 오솔길을 지나 마을이 한눈에 보이는 언덕까지의 길은 확실히 마을 토박이가 아니라면 알 턱이 없는 비밀스런 경로였다. 여기를 걸어갈 줄 몰랐어요. 신기함에 눈이 커졌지만 한번으론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았다. 다음에 또 방문할 수 있을까?
마침내 목적지에 달했을 때는 햇빛을 머금은 가을바람이 한껏 기분 좋게 불어 왔다. 무르익은 과일의 향, 단풍 든 잎사귀가 바람에 스치는 소리, 구름이 지날 때마다 따사롭게 떨어지는 볕, 모든 순간이 기분 좋게 와 닿았다. 산행의 묘미다.
겨우 숨을 가다듬은 에셸은 민망한 미소와 함께 가져온 피크닉 바구니를 열었다.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누름돌을 얹는다. 그가 보온병의 물로 차를 내리는 동안 세 종류의 마들렌과 건포도를 넣은 스콘, 레몬딜버터와 무화과 잼이 준비되었다. 조금 양이 많은가? 싶기도 했으나 캐이시가 참가해준다면 충분하리라.
느긋하게 다리를 뻗고 아래로 보이는 마을의 전경을 눈에 담는다. 이곳은 보물과 같았다. 옆자리를 향해 에셸은 새삼스럽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가 아니었으면 보지 못했을 것이다.
“저도 비슷하답니다. 당장의 이곳 누림마을이나 북새마을이나, 일 때문에라도 몇 번은 와봤던 곳인데 이런 곳이 있었나? 새로운 발견의 연속이에요. 그리고 매일같이 떨리죠.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오늘은 또 어떤 설레는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 되다니. 이런 경험을 어디서 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하나도 바보 같지 않아요.
“앞으로도 함께 이 떨림을 나눠주세요.”
같은 곳에서부터 시작해, 함께 여행을 해나갈 동료로서. 조금 부끄러운 말이었을까? 하지만 이 기쁨과 감동을 전하기엔 그마저도 부족하다. 당당한 셸링 포인트를 매기고 에셸은 표정을 바꿔 장난스럽게 눈을 접었다.
“그럼 벤더 씨의 카페에 취직할 수 있을지 없을지, 당신의 차를 맛보도록 할까요.”
심사라도 할 것처럼 말하지만 긴장하지 말라고 웃음을 덧붙였다.
앞으로 3개월간 이어질 남자친구와의 데이트 서막
'포켓몬스터 : 디 이노센트 제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14) 01.22. 가장 밝은 빛 (0) | 2022.04.14 |
---|---|
13) 01.21. 북새 체육관 진입 (0) | 2022.04.14 |
11) 01.18. 3주차 리포트 (0) | 2022.04.13 |
10) 01.16 2주차 리포트 (0) | 2022.04.13 |
09) 01.14. 누림 체육관 입장 (0) | 2022.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