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캠프 사람들과 배틀을 하는 모의전이 있는 날이에요. 캠프가 지나는 길목의 다른 호프 트레이너와 겨루거나 야생 포켓몬과 겨루는 일은 몇 번 있었지만 캠프 사람들끼리의 배틀은 처음이네요. 캠프에는 엄청 호전적인 트레이너도 한 분 있는데요. 박사님의 허가 없이는 캠프 안에서는 배틀을 할 수 없어서 그 사람도 근질근질한 걸 오랫동안 참아온 것 같아요.
그래요. 캠프는 말하자면 우리의 이동하는 마을이니까, 규칙을 지켜주어야겠죠!
제 상대는 와이 씨와 노체 씨였어요. 노체 씨는 제 테리와 서로 상성 상관없이 대결하기로 해준 분이고 와이 씨는 그냥 제가 하고 싶었어요. 저는 자기 전에 미리 두 사람의 포켓몬을 조사했는데요.
“노체 씨는 에나를 내보내겠지. 테리, 에나와 겨룰 거야. 괜찮지?”
테리는 걱정 말라는 듯 자기 잎사귀를 살랑살랑 흔들어줬어요. 응, 믿음직하기도 하지. 에나는 포챠나, 악 타입의 포켓몬이에요. 한 번 입에 물어버린 건 쉽게 놓지 않는 특성의 잡식 포켓몬인데 노체 씨가 엄청 아껴주는지 늘 털이 반질반질하고 즐거워 보여요. 지난번에는 에나와 메리프랑 같이 러닝을 하고 오기도 했는데, 역시 다른 사람의 포켓몬을 제가 어떻게 다룰 수는 없어서 아무거나 입에 넣으려는 에나를 말리느라 혼쭐이 났지 뭐예요.
“물리지 않게 조심하자.”
괜히 겁주지 말라는 듯 테리가 잎사귀로 절 툭 쳤어요. 미안, 미안.
와이 씨의 포켓몬은 심보러인 나스카와 토중몬인 카스토르. 둘 중 누가 나올까요? 누굴 내보내느냐에 따라서 전략을 새로 세워야겠지만……,
“테루테루, 네게 부탁할게.”
자기 이름이 불리자 테루테루가 화들짝 놀라요. 그리고 텐트 구석으로 도망가 버리네요. 저 아이는 말이죠, 블루라는 친구들이 다 그렇지만 특성인 ‘도주’처럼 겁이 아주 많아요. 자기가 겁나는 걸 숨기려는 듯 툭하면 으르렁거리거나 겁나는 얼굴을 써서 반대로 상대를 쫓아버리기도 하지만, 아직 테루테루는 다른 친구들도 저도 낯선 것 같았어요.
“테루테루는 무슨 맛을 좋아해? 혹시 포핀은 먹어본 적 있어?”
그럴 땐 먹을 걸로 꾀는 게 최고죠. 포핀케이스에서 색색의 포핀을 꺼내 자랑을 하자 옆에서 테리가 ‘그런 걸로 꼬실 수 있나.’ 하는 눈으로 쳐다보았지만─테리는 정말 너무해요─테루테루는 조금 호기심이 생긴 것 같았어요. 가까이 와서 킁킁거리다가 한 입 무는 건 달고 신 맛 나는 포핀이었어요.
테리가 또 쳐다보네요. 네 그래요, 달고 신 냄새가 나지만 입에 넣으면 신기하게 밍밍한 포핀이에요. 테루테루는 태어나서 이런 건 처음 먹어본다는 듯 눈이 동그래지다가 이어서 와구와구 먹어주었어요. 오구 잘 먹네, 우리 귀염둥이.
잘 먹는 아이에게 살금살금 다가가 꼬옥 끌어안자 움찔 놀라서 버둥거리던 녀석은 조금 뒤에 훅 힘을 풀었어요. 그제야 헤헤 웃으며 부비적거리자 테루테루도 따라서 제게 뺨을 부벼왔어요. 테루테루, 이빨이 차갑구나.
“테루테루, 내일 시합에 나갈 거야. 무서우면 도망쳐도 괜찮아. 네가 도망칠 곳에서 내가 기다리고 있을게.”
제 말을 다 알아들었을까요? 테루테루는 시합이란 말에 내키지 않는 듯 꼬리를 추욱 내렸지만 곧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여주었어요.
“후후, 잘 부탁해!”
저는 그런 아이를 껴안으며 내일은 테루테루가 도망쳐 달려와도 멋지게 받아줘야지 생각했어요.
테루테루의 얼음엄니!!
효과가 굉장했다!
나스카는....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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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테, 테루테루. 잘했어. 장하다!”───어? 서, 설마 이렇게 될 줄이야.
결론적으로 멋지게 받아주었으니 된 거겠죠. 우리집 겁쟁이 막내, 테루테루. 아주 잘했어. 너는 앞으로 더 귀엽고 멋져질 거야!
풀이 죽은 나스카에게 다가가 숲의 양갱과 함께 잔뜩 예쁘다 예쁘다 해주고 오는 것도 잊지 않았어요. 나스카, 다음에 또 상대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