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띄어쓰기조차 잊은 듯 엉망진창으로 휘갈겨 쓴 일기는 이 뒤로도 쭉 흥분의 도가니가 이어졌다.」
「그 샤비가 어떻게 생기고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구구절절 쓴 문장이 10줄을 넘겼다.」
「흥분으로 가득했던 일기는 그러나 이윽고, 머뭇거림이 섞여 종이가 눌린 자국이 깊어졌다.」
하지만 막상 샤비를 눈앞에 두고도 저는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어요. 왜냐면 제게는 이미 테리와 테이가 있었고 되도록 열두자리의 기회 앞에서 다양한 타입의 친구를 만나고 싶었거든요. 모두에게 동등하게 활약할 기회를 주고 싶기도 했고요.
테리와 테이는 기술의 타입이 조금 다른 편이라서 함께 활용할 수 있었지만 샤비가 엔트리에 들어왔을 때 어떻게 이 아이의 무대를 빛나게 해줄 수 있을까, 책임질 수 있을까 고민스러웠어요.
아이를 빛내주고 책임져줄 자신이 없다면 그저 제 마음을 앞세워 데려와서는 안 될 일이니까요.
「한 글자, 한 글자 고심해서 적은 듯 종이에 꾹꾹 정갈하게 이어지던 문장은 그 다음부터 다시 급류를 맞은 듯 빨라졌다. 롤러코스터 타는 기분이 일기에 적나라했다.」
하지만 이렇게 희귀한 풀 포켓몬이 제 앞에 나타났다는 건 제가 꼭 데려가야 한다는 운명 같은 게 아닐까요? 저는 늘 아르세우스 님이 점지해주는 운명을 믿는 편인데 이 수많은 야생의 포켓몬들과 야생의 트레이너 사이에서 저와 샤비가 만났는데 이걸 어떻게 운명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제가 비록 벌레 타입이나 고스트 타입이나 강철, 드래곤 타입 같은 쪽은 잘 키워줄 자신이 없는 편인데요. 풀 타입이라면 책임지고 정말 잘 키워줄 수 있거든요. 아니 위에서 쓴 말이랑 반대인 것 같지만 정말로 풀 타입은 예뻐해 줄 수 있거든요. 제가 이 아이를 아름답고 고혹적이고 우아한 샤로다까지 정말 잘…… 키워줄 수…… 있는데.
「롤러코스터는 위로 향하다가 아래로 급속하강하고 빙글빙글 돌고 나면 속도가 느려지기 마련이다.」
햇볕 드는 숲길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아이를 온전히 제 욕심만으로 데려와도 되는 걸까, 하는 고민이 드는 거였어요.
그래서 저는 용기도 없고 자신도 없이 물어봤어요.
“녀는 이곳이 좋은 거지?”
만약 샤비가 이곳이 좋다고 하면 그 길로 벌떡 일어날 셈이었어요. 네가 이곳에서 행복하다면 난 그걸로 충분해. 야생에서 만나기 어렵다는 널 만난 걸 오늘의 기념으로 삼을게, 하고 말이죠.
그랬는데 샤비는, 오히려 저를 보고 웃어주는 게 아니겠어요? 그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이에요. 네가 뭘 걱정하는지 안다는 듯, 그리고 제게 좀 더 욕심내도 된다는 듯이요.
샤비의 너그러운 유혹 앞에서 저는 주저하기를 그만 포기했어요. 그리고 샤비에게 정중하게 볼을 내밀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