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고향은 파도 소리가 멎지 않는 곳이었다. 창틈으로 햇빛이 흘러들기 시작하면 철썩, 처얼썩. 바람을 따라 부표 위로 물결이 파도치는 소리가 들렸다. 갈매기가 우는 소리, 배의 엔진 소리, 선원들의 고함, 많은 소리소리가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과 함께 창틈을 비집어 아이의 아침을 깨웠다.
어린 날의 아이는 할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배를 타러 나가는 일이 잦았다. 작은 통통배였지만 할아버지 취향의 멋들어진 뱃고동이 달려 있어 그 소리가 널리널리 울려 퍼지는 것이 좋았다. 고기 다 도망간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할아버지는 아이가 고동을 울리는 걸 제지하지 않았다.
앨리스는 아이의 손이나 발과 같은 것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발현된 능력, 걷는 것보다 빨리 사용하던 것. 손이 달린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것처럼 아이는 앨리스를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다리를 움직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사용하였다. 바다를 향해 앨리스를 사용하면 들리지 않았지만 물결 위로 퍼지는 소리를 느꼈다. 할아버지, 저기, 저기요. 소리 나지 않는 입을 벙긋거리며 저기 물고기가 아주 많아요. 노인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러면 노인은 매일매일 손질을 잊지 않는 반질거리는 그물을 아이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으로 던졌다. 영차, 하고.
함께 그물을 걷어내고 잡은 물고기를 통에 담고 시동을 걸어 물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가면 세 사람이 사는 작은 집은 입구에서부터 모락모락하고 맛있는 냄새를 풍겼다. 서툰 젓가락질, 가시를 발라주는 다정한 손, 오늘 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떠들다가 양치질을 잊지 않고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간다. 밤에는 풀벌레 우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센베 냄새가 밴 할머니 품에서 잠들었다가 눈을 뜨는 다시 아침이었다.
행복했다. 얼굴을 기억하기도 전에 죽은 부모가 때때로 생각나기도 했지만 아이에게는 조부모가 있었고, 그 두 사람이 아이의 가족이었으며 전부였다.
그러다 8살이 되던 해였다. 할머니가 아이의 손을 붙잡고 말을 꺼냈다. 우리가 잠시 헤어져야 한다고. 본래라면 좀 더 일찍 들어갔어야 한다고 했다. 그걸 지금까지 늦춰준 거라고. 마침 보통의 아이라면 초등학교에 갈 나이였다. 조금 특이한 학교에 다니게 된 것뿐이라며 할머니는 아이를 보듬으며 충분히 공을 들여 설명해주었다.
-그럼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랑 못 만나요? ……싫어요.
-만나러 가고 말고. 영영 헤어지는 게 아니에요. 세이라는 착한 아이니 할머니 말을 알아주겠니?
착한 아이니까. 그 말을 거부할 수 있는 어린아이가 있을까? 적어도 세이라는 아니었다. 시무룩한 표정을 하고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고, 작은 달력을 품에 꼭 안은 채 하루하루 조부모를 만날 날만을 세며 보냈다.
학원 생활이 싫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학원에서 만난 친구들은 한 명, 한 명이 소중했다. 그럼에도 가족과 헤어진 공허를 채울 순 없었다. 그래도 편지를 쓰고, 면회일을 손꼽아 기다리다 할아버지에게 달려가 안기고, 다음 면회일까지 또 날짜를 세는 약속을 하고 그렇게 1년을 보내면서 이렇게라면 괜찮지 않을까. 어린 마음에 잠시 우쭐댔던 것 같다.
세이라는 잘 하고 있어요.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치 않았다.
겨우 다음해의 봄, 면회일보다 이르게 찾아온 가족은 할머니 한 사람뿐이었다. 딱 하루 특별히 허락을 받아 할아버지의 묘에 갔다. 집 앞 항구에 묶인 배가 쓸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뱃고동을 울릴 손이 없었다. 바닷속 깊숙이 내린 닻은 앞으로 다시 볕을 보는 날이 오지 않겠지. 돌돌 묶인 돛, 걸쳐져 마른 그물, 주인을 잃은 것들. 그 자리만 바람이 멎은 것 같았다. 소리가 죽어 고요했다. 고요 속에서 세이라는 울고 울고 또 울었다. 이제 할아버지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할아버지가 어디로 가버렸기에 돌아올 수 없게 되었는지 막연한 이해만 안은 채 더 이상 채울 수 없게 된 마음의 빈자리를 끌어안고 울었다.
마음을 추스를 여유도 갖지 못했다. 겨우 하룻밤을 자고 일어났을 때 그녀는 학원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할머니 옆에 있을래요. 학원으로 가기 싫어요.
-제발요. 데려가지 마세요. 여기 있게 해주세요.
-할머니…, 할머니……! 싫어, 헤어지고 싶지 않아…!
-나가게 해주세요. 학원에서 도망치게 해주세요.
-여기 있고 싶지 않아…….
처음이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사람에게 닿지 않는 경험을 하는 것은. 이 때까지만 해도 세이라는 자신의 앨리스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다고 의식한 적이 없었다.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전해지는 게 있으니까. 전해지고 있다고 돌아오는 게 있으니까.
그러나 이 때는 달랐다. 목에서 피가 나도록 외쳐도 들리지 않는 듯 그녀를 데려가는 손길은 무심했다. 집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울어도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도망치려는 시도는 무산되었다. 어떻게 움직여도 철저하게 막혔다. 바라는 것을 무엇 하나 이룰 수 없었다.
유리병 속의 벼룩이 된 기분이었다. 아무리 뛰어오르려 해도 벗어날 수 없었다.
세이라는 천천히 가라앉았다. 웅크렸다. 체념하는 법을 배웠다. 안주하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그녀가 되었다. 그렇게 해서 괜찮아졌다.
스스로를 괜찮다 여겼다.
“세탄의 괜찮지 않음을 이야기 해 주면, …그렇게 할 수 있게 믿음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괜찮을 줄로만 알았는데, 그는 어째서 이렇게까지 말해와주는 걸까. 저와 그다지 차이나지 않는 손을 무심코 힘주어 잡는다. 다정한 말은 너무도 간단히 상처에 스몄다. 눈앞이 비에 젖은 창처럼 흐릿하게 번진다. 그의 목소리가, 목소리에 깃든 감정이, 의미가 그녀의 안에서 번져나갔다. 고운 글씨로 적었던 ‘괜찮아요’ 그 네 글자 위로 방울져 떨어지며 잉크가 번지듯 그녀를 느슨하게 만들었다.
“저는…… 저는요, ……무서, 워요.”
일방향의 소리를 흘렸다. 누구도 듣지 못하고 스스로조차 듣지 못하는 소리를 언제나 멀리, 멀리 퍼트렸다. 아무도 듣지 못해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분명 듣기 싫은 소리일 거라 생각했다. 떼를 쓰고 억지를 부리고 우는 소리투성이일 거라고. 이런 소리는 아무에게도, 스스로에게도 들려줄 수 없다고 여겼다.
그럼에도 꾸준히 소리를 내뱉은 것은 결국 누군가는 들어주길 바랐던 것이다. 알아주길 바랐다. 누군가에게 목소리가 닿길 바랐다. 그렇게 해서 답이 돌아오길, 바랐다. ……자신조차 속이고 있던 감정이었다.
-그곳에 잘 계세요, 할아버지? 보고 싶어요. 보고 싶어요. 당신이 그리워요.
-불안해요. 무서워요. 할머니마저 돌아가시면 어쩌지.
-아프지 마세요. 오래오래 세이라의 곁에 있어주세요.
-그래도 결국 할머니는 세이라를 두고 먼저 떠나버리겠죠.
-……외로워. 쓸쓸해. 두려워.
-누군가, 시간을 멈춰준다면.
설령 제 소리가 들린다 해도 바람을 들어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누군가 듣길, 들어주길 바랐다. 그녀가 뱉는 소리가 의미 없이 흩어지지 않길.
서로가 안고 있는 고민은 다를 것이다. 속에서 곪아버린 상처도, 남은 아픔도. 그녀는 아직 그의 이야기를 채 다 듣지 못했다.
털어놓는 것이 어떠한 해결이 되지 못하리란 것 또한 안다. 말해봤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 무엇도 할 수 없어. 그랬기에 이제껏 억누르고 참아왔다. 무언가를 또 욕심내고 실패하기 전에 미리부터 손을 거두고 아무것도 잡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그는 말해달라고 한다.
“……무서운 게 아주 많아요. 무섭다고 소리 내는 것까지도 무서울 만큼.”
들어주겠다고 한다.
“괜찮지 않은 걸 괜찮지 않다고 말하기가 어려워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고 말해도 소용이 없고 그러니 체념하고 순응하려 하는, 당연해선 안 될 일을 당연하게 여기려 하며 힘겨움도 괴로움도 삼켜내고 아무렇지 않아. 그렇게 웃는 그녀를 그는 자꾸만 느슨하게 한다. 애써 당겨 올린 입꼬리가 무너지듯 허물어져 내린다.
“시나요리 군이 들어주나요? 듣고 나서는요…? 같이 무거워질 뿐인 건 아닌가요.”
소리가 돌아온다. 그녀가 뱉은 소리가 그에게 닿는다. 제 옆에 그가 있음을 선명히 알려주었다. 그리고 되돌아왔다. 내가 여기에 있어요. 네 소리를 듣고 있어요.
……그리운 답이었다. 덜컥 안도감을 느끼고 눈물샘이 약해질 만큼. 하지만 그러면서도 주춤해버리고 만다. 들어주는 사람이 생기면 계속해서 말하게 된다. 우습게도, 세이라는 그것 또한 무서웠다.
잡힌 손을 살짝 빼내고 소매 끝으로 눈가를 닦는다. 발갛게 부은 눈가를 누르며 옅게 웃는다. 느슨해진 뺨을 당겼다.
“신기하죠. 제가 주는 다정과 당신이 받은 다정이 다른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돌아오는 당신의 상냥함을 이렇게나? 하고 생각해버릴 만큼.”
저는 그렇게 다정한 사람이 아닌데.
“이렇게까지 제 목소리를 들려줄 생각이 아니었는데. ……정말 신기한 사람이네요, 시나요리 군은.”
그에게서 흘러드는 목소리가 제 안에 스미는 따스함이 자꾸만 마음을 약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손을 잡고 있을 수 없었다. 차츰 온기가 사라져가는 제 손을 주먹 쥔다. 고개를 좌우로 가볍게 젓고는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어쩐지 조금 더 깊어진 듯한 건 제 착각일까.
“무엇이 두려웠는지 찾았나요? 시나요리 군의 실마리가 잡힌 걸 저도 함께 기뻐하고 싶어요. 그리고 당신이 무서워하는 걸 앞으로는 무서워하지 않게 되길 바라고 있어요. ……적어도 제게 닿아오는 시나요리 군의 말이나 감정은, 결코 쉽게 전해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니까요.”
이건 진심이에요. 덧붙이며 다시 입꼬리를 당겼다.
“제 소리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기쁜 일이에요. 그러니까 고마워요. ……오랜만에, 저도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걸 떠올린 것 같아요.”
그러니 충분해요. 이 뒷말까지는 덧붙이지 않았다.
저 아리사 사랑함
← 여기까지 초등부
와 나 초등부 한달 동안 2000트 조금 넘게 하면서 활동 완전 부진했는데(마지막주 1주일간 200트밖에 못함 말도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