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를 사용하지 않아도 전해오는 그의 마음에 두근두근하고 심장의 고동을 느꼈다. 두근거림의 색으로 뺨을 물들이며 방긋 웃었다.
“지금도 충분히, 시나요리 군 덕분에 기쁜걸요?”
───소년이 학원에 온 지 이제 갓 1년이던가. 그녀와 마찬가지로 소리와 관련된 앨리스였기에 막 그가 학원에, 초등부 B반에 왔을 당시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덕분에 기억하고 있었다. 특별능력반으로 배정을 받았지. 같은 소리지만 같지 않은 소리. 그가 내는 소리는 어떠한 음색일까 궁금하게 여겼다.
세이라가 1년 간 지켜본 시나요리 아리사는 온화하고 얌전하지만 마냥 어른스럽지만은 않은, 또래다운 얼굴도 보이는 소년이었다. 물건 찾기를 할 때도 그랬다.
「밤을 밝힐 수 있는 보라색 물건도 찾고 있어요…!」
「후후, 제가 무엇을 갖고 있을까요.」
성실한 그는 어서 자신이 가진 물건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골몰하였던 것 같지만 ‘놀이’라는 말을 꺼내자마자 금세 표정을 바꿔왔다. 그 작은 변화에 즐거움을 느꼈다.
그를 보고 있으면 따스한 밤이 떠올랐다. 밤이면 작은 소리도 크고 넓게 퍼지지. 다른 소리들은 모두 잠들어 조용할 적에 울려 퍼지는 촉촉하고 기분 좋은 음. 딩- 동- 댕- 조심스럽게 실로폰을 두드리면 이런 느낌일까.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음을 겹치며 세이라는 잔잔한 밤의 호수를 떠올렸다.
「포근한 낮이 세탄이고, 내가 따스한 밤이라면 우리가 함께 있는 지금은 행복한 하루가 되겠네요…!」
그랬기에, 동감이에요. 낮도 밤도 다정한 시간이에요. 웃으며 도란도란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비슷한 앨리스를 갖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그와는 앨리스에 관한 이야기도 많았다. 그러면 마치 당연히 준비된 순서처럼 화제는 그 다음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중간고사 과제와 같은 그것, 「나의 앨리스」로.
그리고 발견하였다. 그가 유독 앨리스를 이야기할 때면 주저하는 것을.
그녀라고 다르진 않았다. 앨리스를 이야기할 때는 자연스럽게 울적해지고 만다. 하지만 그녀가 갖는 감정과 그가 품은 것은 다른 종류의 것 같았다. 다르기에 이해하지 못할 거라 단정 짓지 않는다. 그러나 반대로 다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오만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세이라는 그가 품은 감정을 나누고 싶었다. 그와 행복을 나누었던 것처럼.
그와 나누는 대화는 즐거웠다. 사진을 찍어오겠다고 해주는 말에는 잠시 멋대로 남매의 풍경을 상상해보았다. 여동생에게 상냥한 오빠겠지. 저에게 하듯 다정하게 말을 걸고 웃는 얼굴을 만들어주고. 그리고 돌아온 표정을 보며 저 또한 기쁜 표정을 짓겠지.
행복이란 글자가 형상화 된 것만 같을 풍경으로 자신의 그리움 위를 덧칠하였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상상하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해서 저까지 행복이 옮아올 것 같았다. 그렇기에, ……역시 제겐 시나요리 군의 앨리스가 아주 멋진 것 같아요. 그래서 알고 싶어요.
당겨오는 손길에 살짝 놀란 눈을 하였다. 온화한 시선이 올곧게 뻗어왔다. 들려오는 목소리는 모난 곳 없이 둥글게 하나씩, 하나씩 탑처럼 쌓였다.
“포장이 아니라 노력이니까요, 어리광이라 해도, 나쁜 게 아니니까요. 나는 괜찮을 수 있는 일을 견디고, 괜찮지 못할 일엔 욕심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런 착한 사람이요.”
그러니 세이라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꼭 그 뒷말이 들려올 것만 같았다. 그가 들려주는 목소리 하나하나 그녀를 위해 모인 것이란 게 신기했다. 어째서 시나요리 군은 이렇게까지 저를 위해 진심을 다해주는 걸까요. 그래서 흐릿해질 것 같은 눈을 깜빡였다.
“……순서가 바뀌었어요, 시나요리 군. 참고 견디고 괜찮게 여겨야만 하는 게 피할 수 없는 과정이기에, 결과로서 착한 아이가 만들어지는 거예요. 제게는 그러니까…… 순응하고 편해지는 것과, 순응하지 않으려다 억지로 앉혀지는 것밖에 없어요.”
아무리 떼를 쓰고 욕심을 부려도 얻어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느릿하게 가라앉는 눈꺼풀 위로 과거의 장면들이 스쳐 지난다. 필름을 잘라내듯 눈을 질끈 감았다 뜬다. 고개를 들면 저를 이해해주려는 필사의 눈이 있었다. 저와는 다르게 아직 꺾이지 않은 눈이었다. 이제 1년. 그보다 몇 해 더 많이 이곳에 머물렀다고 아는 체를 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가 아직 이곳에서 느끼는 부자유가 저만큼은 아니란 점에서 안도해버리고 말았다.
그것이 비록 얄팍한 감정이라 해도.
“시나요리 군이 들려준 말은 기뻤어요. 그리고 분명 옳은 것이에요. 그저 제가 그 말을 따를 수 없을 뿐이에요.”
그러니까 당신은 저와 다르게, 당신이 바라는 착한 사람이, 욕심 부릴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속삭였다.
“……시나요리 군?”
대화를 이어나가다 돌연 미간을 좁히는 그에 조심스레 고개를 기울여 표정을 살핀다. 언뜻 스치는 두려움에 그 너머로 지나가는 기억을 더듬듯 그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이 반대로 제게 뻗어와 눈가를 문지를 땐 저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다정히 닿아오는 그의 손이 곧 위로였고 동의였고 공감이었다. 정말 어리광을 받아주는 데 능숙하네요. 여동생이 있기 때문일까요. 떠올리며 그의 손가락 끝이 그리는 선을 따라 표정을 누그러트리고 웃었다. 역시 저는…….
“시나요리 군이 어째서 음색 앨리스인지 알 것 같아요. 당신의 감정이 곧 제게 전해지고 제 감정을 당신이 받아가고, 신기할 만큼 당신은 타인에게 공감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네요. 저와는 달라요. 제 소리는 늘 일방향인데 말이에요.”
당신이 주는 다정한 공감에 감사해요. 인사와 함께 미소를, 미소와 함께 제게 내밀어진 손을 잡는다. 그러니 이번엔 자신의 차례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제게 조금 더 당신의 앨리스를 알려주시겠어요? 당신이 들어준 저의 소리만큼 이번엔 제가 당신의 소리를 듣고 싶으니까요.”
당신이 품은 두려움까지 말이에요.
아리사랑 한 타래로 너무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바람에 로그가 되게 단편적이어서 조금 아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