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사람을 쓸모의 기준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사람만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세이라와 함께 센베를 굽거나 마당 앞을 쓸면서 아이에게 늘 일러주었다. 모든 생에는 저마다의 가치가 있다고. 센베를 구울 때 부채질하는 불의 생에도, 나뭇가지 끝에 매달렸다 떨어지는 낙엽의 생에도.
할아버지는 세이라를 배에 태워 바다로 나가며 함께 일러주셨다. 저 바다 속 물고기의 생에도, 물고기를 노리는 갈매기의 생에도 저마다의 가치가 있다고. 그러니 우리는 어떠한 생에, 삶에 함부로 우리의 잣대를 갖다 대서는 안 된다고.
그렇게 자라온 세이라에게 눈앞의 소년, 오토나시 토오루의 말은 대단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제가 오토나시 군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면요? 당신에게서 어떠한 도움도 찾지 않는다면.」
당신은 제 바람을 이루어주거나 절 도와주지 않아도 당신의 존재만으로 가치를 가져요.
「그럼… 나는… 그냥… 그 정도의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거겠지…….」
몇 번이고 그는 말했다. 도움이 되어야 한다. 쓸모를 증명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나의 존재의의를 증명한다. ───너와 내가 같지 않으니까.
사람 사이에 급을 나누는 게 세이라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쓸모 있어야만 존재가치가 있다는 말 또한. 그의 말이 세이라에겐 어딘지 별세계 같았다.
「우리 관계의 주도권은… 세탄에게 있으니까아…….」
관계의 어디에 주도권이 있는 걸까. 그녀가 주도하고 그가 따르는 것은 올바른 관계인 걸까. 세이라는 그렇게 교육받지 않았다. 소라게의 삶에도 소라게만의 가치가 있다. 달팽이에게도 달팽이가 생각하는 생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 가치는 스스로가 결정하는 것이지 타인에 의해 규정지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주도하고 그가 따르는 관계는 도무지 건강한 방식이 아니었다.
그러나 생각할수록 어려웠다.
「친구는… 그러면 안 돼…? 그럼… 어떤 거면… 돼…?」
어떤 관계를 친구라고 말하고 어떤 관계는 친구가 아니라고 할까. 그 정의를 내리는 건 누구일까. 만일 그가 한쪽이 주도권을 가진 관계라도, 서로 동등하지 않은 관계라도 친구라고 한다면, 그녀는 그의 정의에 반론을 내세워도 되는 걸까.
「우리는 어떠한 생에, 삶에 함부로 우리의 잣대를 갖다 대서는 안 된단다.」
할머니, 너무 어려워요……. 저는 잘 하고 있는 걸까요?
「───내가 바라는 관계는… 주인과… 시종… 같은 걸까….」
“오토나시 군은, 어떤 관계를 맺더라도 불안해지고 말 것인가요? 어떤 관계에서든 당신의 쓸모를 의식해버리고 말 건가요?”
어떻게 하면 그에게 불안하지 않은 관계를 줄 수 있을까. 그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꼼지락거리는 그의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저는 오토나시 군이 행복할 수 있는 관계를 골랐으면 좋겠어요. 당신이 스스로 선택한, 스스로 바란, 행복해질 수 있는 관계를. ……만일 그 관계가 주종이란 형태라 하더라도 그렇게 오토나시 군이 안심할 수 있다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