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에티유 로젠슈타트
콜크 영지를 다스리는 위실 가문은 비록 오등작의 지체는 높지 않으나 제국에서 유서 깊고 인망이 두터운 가문이었다. 오랜 가문의 역사와 영지민들의 지지는 남작위라는 것조차 그들을 검소하고 결백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기실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역대 영주들은 특별히 권력욕이 있지 않았고 드넓은 보리밭이 매년 풍작을 이루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거기서부터 나오는 맥주와 위스키를 즐기며 태평성대를 이루었으니.
그렇다고 해서 현 가주 파울로 위실이 권력욕을 안고 서부에서 ‘정치’라는 것을 한다고 그가 크게 그릇된 것은 아니었다. 원하는 것의 대상이 달랐을 뿐, 각자의 욕심일 뿐이다.
여기서 어쩌면 놀랍지도 않은 사실을 한 가지 짚고 가자면 처음, 위실 남작이 갓 작위를 물려받은 새파랗게 어린 공작을 보았을 당시만 하더라도 어린 공작을 잘 보필하여 영향력을 늘려야겠다고 생각했더라는 것이다.
아직 사리분별도 제대로 못할 약관이나 지났을 공작에게 제가 가진 경험과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하려 했고 이를 통해 신임을 얻으려 했다. 뭐니 뭐니 해도 저희는 같은 “아픔”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 분명 통할 구석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메이데이 위실이 이 자리를 빌어 양부에 대한 변명을 하나만 해준다면 영주 회의에서 양부가 저를 가지고 떠벌린 것은 속된 말로 ‘친한 척’의 일종이었고 그것을 면전에서 깔아뭉개는 행위에 자신의 위신에 흠이 갔다고 여긴 그가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꿔 대대적으로 공작의 반대편에 돌아선 것은, 초기에 목표로 했던 권력욕과는 참으로 거리가 먼 감정적이고 어리석은 선택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정치라는 것은 영리한 자들로만 굴러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노골적으로 대공작을 견제하는 그의 행위에 마치 계몽이라도 당한 것처럼 동조하는 이들이 생겨나면서 어엿한 파벌을 이루게 되었다. 아이러니의 극치가 아닐 수 없었다.
여기까지의 일련의 흐름에 양부의 정치적 선전에 사용되면서도 본인의 의사는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던 메이데이 위실의 기억은 그의 팔을 어설프게 붙잡고 아직 몸에 익지 않은 예법을 필사적으로 따라하며 영주 회의에 참석했던 첫 기억으로 돌아간다.
그때가 막 양자로 들어선 지 1년째였던가, 그보다 조금 지나서였던가. “이 가엾은 아이가.” 라든지 “남작께서 참 너그럽기도 하지.” 라든지 “그래도 마력량 하나는 발군이라지요.” 혹은 “헌데 얼굴에 남은 저것이…” 따위의 저를 가리키면서도 가리키지 않던 삿대질만 없을 뿐인 무례한 시선의 화살들에 꽂혀 차라리 허수아비라도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끝에 도망친 자리에서 아름다운 젊은 신사 한 명을 만났다.
지금에야 어엿한 숙녀였으나 그때는 겨우 꼬질꼬질한 때를 벗긴 계집에 불과했다. 제 옷이 아닌 것 같은 어색하고 화려한 드레스와 어린아이의 발에는 가혹한 구두,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것 같은 이질감 가득한 공간에서 헤매던 소녀를 남자는 간단히도 끌어당겼다.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손등에 입 맞추고 우아한 에스코트를 행했다. 그러나 겨우 그것만으로 자리를 잘못 찾아왔던 계집이 연회장에 어색하지 않은 꼬마 숙녀가 되도록 만들어주었다. 훗날 그가 젊은 공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소녀는 이 상냥하고 예쁜 신사님이 그저 좋기만 했던 것 같다.
메이데이 위실이라는 이름에 정을 붙일 수 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그가 이곳에 저의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그러니까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은 아마도 까마득한 옛날이었거나 혹은 그보다 조금 뒤의 옛날, 아무튼 참 오래된 일이란 뜻이다. 심장이 없는 불구라고 칭하는 그에게 대신할 마음을 주고 싶었다. 그의 빈자리에 무엇이라도 좋으니 따뜻한 것을 놓아줄 수 있다면 덕분에 그가 조금 더 살고 싶어진다면.
신기하지. 지금이었다면 필시 주제넘은 생각이라고 고개를 흔들었을 만한 것을 과거 그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는 당당하게도 생각했다. 타인에게 자신이 얼마만큼의 가치를 지닐지 저울질할 줄 모르던 무구한 머릿속에는 오로지 가진 모든 것을 내주는 것을 최고의 가치라 여겼다.
언젠가 은혜 갚을 날을 꿈꿨다.
언젠가 그에게 자신을 줄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부끄러워 하지 않고 모든 것을 내주겠노라 감히 꿈꿨다.
*
시간이 흘러 소녀는 자랐고 대단한 줄 알았던 공작님이 사실은 더 대단하고 감히 제가 함부로 이름 부를 위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꾸 제게 이름으로 부를 것을 요구한다거나 심지어는 경칭을 떼라거나 말을 놓으라거나 그의 가솔들이 어째서 일련의 행동을 가엾은 남작 영애를 괴롭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인지 의아할 정도로 터무니없는 요구들에 시달리면서, 메이데이 위실은 에티유 로젠슈타트를 조금 더 많이 알게 되었다.
그의 버릇도, 그의 광증도, 그의 아픔도, 그의 열망도, 그를 이루는 복합적인 온도에 관하여.
얄궂게도 자기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한때 상실했던 여자는 반대로 자신이 잃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단 하나만을 잃어버린 남자의 상실감을 감히 안다고 할 수 없었다.
어째서 그가 이토록 스스로를 파괴하고 싶어 하는지, 견디지 못하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다고 사랑하는 반신이 돌아오지 못하는 걸 누구보다 알고 있으면서 왜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고 벌주지 않고는 참지 못하는 걸까.
아니, 사실 궁금한 것은 한 가지다. 이토록 스스로를 벌줌으로써 그가 진실로 얻는 것은 무엇인가.
그에게 다치지 말라거나 스스로를 소중히 해달라거나 틀에 박힌 뻔한 이야기를 해오면서도 기실 여자는 그가 제 말을 들어줄 거란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녀로서는 그를 바꿀 수 없다. 그를 바꿀 수 있는 건 오로지 그 자신뿐이다. 다만 고집스럽게 낭떠러지를 향하는 남자를 위해 ‘본관의 위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지 지금부터 그것을 고민해 보려 한다.
공작님이랑 관계 짜면서 재밌었어요. 동서남북을 대표하는 4대 공작가 < 이런 거 심금을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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