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쥐가 주는 음식을 먹고, 그러다 잠이 들고, 문득 일어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에 잠겨서, 친구를 찾아 손을 더듬고, 그러다 혼자 남아, 아아…… 어둠에 완전히 먹혀버리면 차라리 편해질까. 외로움에 사무치길 반복해.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자신이 산지도 죽은지도 모르는 채 그저 막연하게 손발이 전보다 자랐다는 걸 느끼던 어느 날이었다. 임금쥐로부터 명령이 내려왔다.
도깨비쥐가 인간에게 명령이라니, □■가 들었으면 기가 찼을 것 같아.
……어라. 누구더라?
잘 기억나지 않아.
사실은 기억만이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너무 오래 머문 걸까. 잘 보이지 않고, 잘 들리지 않았다. 손발에 쇳덩이가 매달린 듯 무겁고 모든 것이 흐리멍덩해.
아?
당연한가.
나는 살아있지 않으니까.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살아있다는 느낌은 뭘까……?
나는 살아있지 않아. 그 방울 소리가 멎은 날부터, 쭉.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무엇일까.
누군가,
답을 가르쳐주면 좋을 텐데.
──밤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은한에게 기댄 채 멍하니 있었다. 나무판을 손에 쥐고, 흐릿한 시선을 문지르며 나무판에 나리의 얼굴을 새겼다, 그 옆에 꽃을 새기고, 그러다 아차, 힘이 미끄러져 나무판이 부서지고 말았다. 손을 쥐었다 펴보지만 썩 힘이 들어가지 않아. 정말 쓸모없는 아이가 되고 말았구나 생각했다.
여기서까지 버려지지 않도록, 임금쥐가 시킨 일을 잘 해내야지.
나리는 기뻐 보였다. 친구들을 만나러 갈 수 있어서일까? 서울의 친구들을 만나면 나리는 돌아오지 않아? 그렇게 물어보자 그녀는 웃었다.
“아하하, 그럴 리 없잖아. 있을 곳도 여기밖에 없는데.”
“괜찮아요, 노아. 나리는 노아를 두고 어디 가지 않아요.”
은한도 그렇게 위로해주었지. 성하까지 모이고 나면, 전부야. 어디로도 가지 않는, 친구들. 세 사람은 가지 않아. 떠나지 않아.
너희는, 날 혼자 두지 않을 거지?
그래도 마음이 다 놓이진 않았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어 그저 불안한 눈으로 시선만 굴렸다.
임금쥐의 명령은 신서울 안의 발전소와 큰 건물들을 부수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대피했으니까 걱정하지 말 것, 서울 안에 괴물들이 돌아다니고 있으니 괴물은 만나면 죽일 것.
그러면, 서울에 친구들은 없어?
……섭섭해.
어딘가에 친구들이 있을 줄로만 알았다. 친구를 만나면 꼬옥 껴안아주려고 했다. 도화를 데려가면 나리가 기뻐할 거야. 도혁이도 데려 갈까? 셋밖에 없는 인왕골 친구였는데. 나리가 기뻐할 거야. 또 누굴 데려가면, 기뻐해줄까? 누굴 데려가면, 기뻐할까. 나는.
────하지만, 친구들은 나를 기억할까? 아냐,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아. 내가 기억하고 있는걸.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러니, 까……,
쥐들은 서울의 사람들에게 들키면 안 된다고 했어. 들키면 쫓겨날 거라고. 이상하지? 서울에 사람들은 모두 대피했다고, 서울엔 괴물들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 건 쥐들인데. 쥐들은 서울에 괴물들밖에 없다고 했어. 이상하지? 저 앞에 있는 건 내 친구인데.
나는 친구를 껴안으려 했어. 친구라면 나를 쫓아내지 않을 거야. 어른들에게 이르지도 않을 거야. 그런데,
이상하지?
친구가
왜
쓰러
졌,
을까¿
친구는 왜 빨갛지? 왜 끈적거리지? 어째서 피가 흘리고 있어? 친구는 아파? 어쩐지 무서운 기분이 들어. 친구는, ……친구는 어떻게 된 거야? 알아선 안 될 것만 같아. 건드려선 안 될 공백의 상자처럼,
안아주려고 했어. 소중한 친구니까 안아주고 싶었어. 왜 친구가 빨갛게 변했지? 왜 친구가 아파졌지? 나는 이유를 몰라.
……아니면 내 탓이야?
……내가 친구를 아프게했어?
【그렇네.】
【아프게 했어.】
【늘 어두운 곳에서 끌어안아서 몰랐지. 지금까지 쭈욱, 아프게 했어.】
【네가.】
“…………아.”
“…………아. 아아, 아.”
“…………아. 그, ……러, 리…………”
지금까지, 쭈욱?
친구를, 아프게 했어? 나는?
내가? 내, 가?
주저앉아,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한다. 내가, 친구를, 아프게, 죽, 였? 죽였?? 어? 믿고 싶지 않아. 뿌연 시야를 문질러 보지만 죄의 흔적이 오히려 선명하게 붉어졌다.
신력을 쓸 때의 감각을 떠올린다. 꼬옥 감싼 뒤, 그 다음엔 어떻게 됐더라? 우지끈, 했던가. 아니면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던가? 그게 전부, 전부…………?
『신력은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 특히 노아의 힘은,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 있으니까, 더 조심해야 해.』
【아무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괴물은 밤에 잡아야지.】
아냐. ……괴물을, 잡으려던 게 아니었어. 친구, 를…… ……안아주려고,
“아ㅅ, 헉.”
심장이 빠르게 뛴다. 아파서, 이대로 터질 것만 같아. 그림자가 천천히 목을 조여 오는 기분이 들었다. 숨이 막혀, 호흡을 할 수가 없어. 몸 안의 혈관 전부가 뒤집히는 것만 같았다. 마치 피부 안쪽에서 바깥쪽을 향해 바늘을 찌르듯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대로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산소가 부족해 물밖에 던져진 물고기처럼 헐떡이며 몸이 앞으로 쓰러졌다. 제 몸에 일어나는 일이 무엇인지는 한 박자 늦게 알아차렸다.
사람이 사람을 공격하면 발생하는,
《괴사기구》
…………알아차린 다음에야, 고통을 느낀 다음에야 실감을 했다.
내가 아직 살아있긴 했구나.
우습게도, 고통을 느끼고 나서야 살아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무뎌지던 손가락 끝의 감각이 구부러지면서 돌아오고, 뱃속의 창자가 화끈거리고 꼬이면서 제 몸이 아직 따뜻했다는 걸 떠올렸다. 뿌옇게 흐리던 시야에 새빨간 핏자국이 선명해져서, 그 핏자국 너머로 제가 다치게 만든 친구의 얼굴이 또렷이 보여서,
여우가 빌어준 목숨 값이 고작 이것밖에 되지 않았구나.
그렇게까지 살고자 발버둥 쳤던 건 고작 이걸 위함이었구나.
깊이,
아주 깊이 후회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때에 살고 싶단 말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삶 같은 걸 욕심내는 게 아니었는데.
이런 식으로 목숨을 부지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겨우 숨을 쉬기 위해 살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되면서, 정신이 아득해진다. 어딘가 먼 곳으로, 아주 먼 곳으로 떠나버리는 듯한 감각에 감싸여 눈을 껌뻑거렸다. 고통으로 또렷해진 감각들이 다시 둔탁하게 변한다. 동상에 걸리듯 뻣뻣하고 차가워지는 몸뚱이에 누군가 나를 안아주었으면, 욕심이 스물스물 기어올라 간신히 흐릿한 미소만 지었다.
더 이상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을 거야.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거야.
딱 한 가지만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차라리 아무도 자신을 기억해내지 못하길. 모두가 나 같은 건 잊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