왁자지껄한 목소리들은 어딘지 현실감이 없었다. 예전에 뒤적거리던 백과사전의 페이지에 고대의 문명이라며 텔레비전을 소개하던 것이 떠올랐다. 네모난 상자 안에서 사람들이 움직이고 말하던 기계라고 했던가? 꼭 텔레비전을 눈앞에 둔 것 같다. 혹은 연극.무대는 지금 이 기숙사 안이고 배우는 그를 제외한 모두다.
어느 쪽이든 그가 저 안에 녹아드는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야, 왜냐하면, 그는,
………낙오되었으니까. 더 이상 친구들과 함께 걸어갈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이런 풍경은 있을 수 없었다.
“노아야?”
“못 정하겠어?”
“어라. 표정이 안 좋은 것 같아요.”
“괜찮아…? 물 갖다 줄까?”
이상한 꿈이다. 아니면 아주 지독한, 악몽이다. 그를 향해 모아지는 시선에 본능적으로 앉은 자리에서 뒷걸음질을 쳤다. 도망치고 싶었다. 이곳은 그가 있을 자리가 아니었다.
“노아야.”
그런 그의, 무릎에 오른 채 식은땀이 배던 손 위를 커다란 손이 덮어왔다. 흠칫하고 놀라 시선을 들자 익숙한, 동시에 어딘지 낯선 눈과 마주쳤다. 잡힌 손에 온기가 전해진다.단단한 감촉과 온기가, 그를 향해오는 똑바른 시선이, 한 발짝 너머에서 움직이지 못하던 그를 단숨에 ‘이쪽’으로 끌어당겨주었다.
붙잡아오는 강한 손아귀가 머나먼 기억과 다르지 않아 구명줄처럼 그 손을 맞잡았다. 맞잡아오는 감촉에 상대가 슬 눈 꼬리를 가늘게 찢으며 웃는다.
겨우 그 한 번의 동작으로 무대 위와 무대 아래라는 간극이 메워졌다. 주욱하고 보이지 않던 장막이 찢어지자 폐호흡을 처음 시작한 물고기마냥 다급하게 산소를 찾아 허덕였다.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지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억눌린 목소리를 간신히 쥐어짜낸다.
“어느 쪽이든, 좋아. ……모두와 함께 갈 수 있으면.”
“노아라면 그렇게 말할 것 같았어.”
“다 같이 가는 게 당연하잖아.”
“조난조의 오명을 씻어야지.”
그에겐 과분한 자리였다. 그럼에도 그가 끼어든 무대는 망가지는 일이 없었다.
또 다른 손이 상냥하게 어깨를 두드려온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온화한 눈동자가 괜찮아? 하고 묻는다. 그 손이, 얼굴이, 기억보다 자라 있어서 다시 옅은 위화감을 느꼈다.
제 위화감을 상대는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땋아 내린 머리끝을 뒤로 넘기며 눈을 휘었다. 또 호수네. 한 번쯤은 다른 곳도 괜찮은데. 여유로운 목소리에 산이라거나? 하고 묻자 그건 아니지. 하고 빠른 대답이 돌아왔다. 저도 모르게 웃음소리를 내자 아, 겨우 웃었네. 하고 손이 온기를 나눠준다. 그 온기에 기대 머리를 기울이자 제자리를 찾은 듯 마음이 편안해졌다.
언젠가 공방에 방문했을 때 받아왔다고 하는 자기로 된 찻잔에 맑은 찻물이 차오른다. 다들 자기 잔을 옆에 둔 채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바다는 언제 갈 수 있는 거람. 이러다 못 간 채 졸업해버리겠어.”
“나중에 우리끼리라도 가본다거나?”
“졸업여행이에요? 좋아요!”
“그러다 또 조난……”
“으, 불길한 소리 하지 마.”
“우리끼리 가는 거면 조난도 아니지.”
“그럼 실종인가?”
“크흠…….”
“우리 그만 이 화제에서 벗어날까?”
“찬성….”
그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찡그리거나 웃거나 표정이 바뀌는 친구들을 원의 가장자리에 앉아 멍하니 지켜보았다. 대화에 끼어들지는 않았지만 그는 여기에 있었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하다가도 간간이 그에게 시선을 던지며 웃었고 의견을 묻기도 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작고 희미했지만 종종 장난스러운 그녀로 인해 생각지도 못한 큰 목소리가 터질 때도 있었다.
“이제 잘 들리죠?”
“이건 너무 커…….”
이런 점은 예전과 꼭 닮아서, 그 때로 돌아간 듯한 기분에 휘감겼다. 일렁거리던 위화감이 서서히 가라앉는다. 그렇지. 제 자리는 늘 여기였다. 모두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
‘듣고 있어.’
닿고 있어.
겨우 안도하고는 모두의 목소리에 맞춰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렇구나. 듣고 있어. 계속.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어느새 모두 함께 졸업 후의 계획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은 이미 언젠가의 어린 아이가 아니었다. 당연한가. 곧 있으면 모두 성인이 될 테니까.
문득 훅 자란 아이들을 둘러보다 제 손을 본다. 어라? 손이, 그 때 갈색의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물결치며 뒤에서 와락하고 무게가 느껴졌다. 껴안아오는 온기에 어깨를 움츠리자 키득키득 웃음소리가 들린다. 노아도 바다 갈 거지? 이미 확정된 듯한 말투에 슬금슬금 입 꼬리를 올리고 응, 하고 답을 했다.
“다들 재미없는 이야기 하고 있어.”
그보다는 바다에서 뭘 하고 놀지 정하는 게 당연히 더 즐겁잖아? 젖살이 빠진 얼굴은 그녀가 어른에 한 발 더 가까워졌음을 내보였지만 말투는 변함없이 천진난만하고 때로는 짓궂었다. 아니면 바다 얘긴 하고 싶지 않은가봐? 누군가를 노린 소녀의 말투에 당사자는 그저 웃음으로 무마했다.
오히려 가만히 있다가 혼자 찔린 건 그 옆의 볼멘 얼굴을 하고 있던 아이였다.
“빠지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냐.”
“또 빠진다고?”
“안 빠진다고!”
투덜거리는 목소리에 딴죽을 걸고넘어진 건 누구였을까. 버럭하고 들린 큰 소리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자 그가 눈 색처럼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시선을 피한다.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필사적인 기색에 높고 낮은 웃음소리가 여기저기 새어나온다. 웃는 거 누구야! 또 금세 성난 목소리가 터졌지만 목소리와 달리 얼굴에 그늘은 보이지 않았다.
잘 자고 있는 거야? 저도 모르게 눈동자를 굴리며 그를 보자,
“응? 노아야 왜 그래?”
그는 구김살 없는 표정으로 웃어주었다. 그게 몹시도, 안심이 되었다.
“──전 가업을 이어받을 계획이에요.”
“나도, 비슷한 쪽일까.”
“노아도 공방을 열고 싶다고 했지?”
“과연 난조라고 해야 하나. 다들 그런 쪽으로 가네.”
“난 아닌데.”
“나도.”
“나도 아니에요.”
“아, 그, 그래…….”
이야기는 다시 졸업 후로 돌아와 있었다. 각자 자기 몫의 찻잔을 홀짝이며 옆 반의 누구는 어떻다더라, 들은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하고 졸업한 선배는 어땠다더라, 출처를 모를 소문을 떠들기도 했다. 벌써 졸업이라니, 좀 믿기지가 않아. 누군가 꺼낸 말에 그렇지?나도 동감이야. 모두 한 마음이 되어 고개를 주억이기도 했다.
우린 영영 어른이 되지 않을 줄 알았어.
기분이 이상하지. 이렇게 모두 모여서, 미래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
따뜻하게 피어오르는 잔의 향기를 맡으며 아이들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이렇게 자랐구나. 감탄하기도 하고 여전해. 웃음 짓기도 했다. 영영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친구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애틋해서, 지금의 이 풍경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다.
───어째서 영영 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더라?
“아.”
“응?”
“……조금, 만들고 싶은 게 떠올라서.”
“어떤 거?”
그녀가 스케치북을 가지고 옆 자리로 찾아온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로 구상한 것에 대해 떠드는 건 익숙한 일이었다. 그는 머릿속에 번뜩 스친 것을 서툰 설명으로 풀어냈다. 엉성한 설명이었지만 그녀는 이해한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졸업하기 전에 기념이 될 만한 걸 만들고 싶었어. 좋은 생각 같아.”
“네. 시도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친구들의 동조에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무사히 완성한다면 모두는 어떤 얼굴을 할까? 상상하면 벌써부터 손을 움직이고 싶어졌다.
무슨 이야기인데 속닥거려? 궁금한 표정을 하는 친구들에게는 쉿, 아직 비밀이야. 하고 답지 않게 배짱을 부려보았다. 너무하네. 우리만 따돌리기? 그 말에는 살짝 어깨를 움츠렸지만 머지않아 모두에게도 말하기로 하고 조금만 참기로 했다.
우리에겐 아직 시간이 남아있으니까.
그의 말에 친구들은 모두 맞아. 하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한참을 떠들다가 문득 지쳐서 다시 찻잔을 찾았다. 찻잔은 변함없이 따뜻했고 좋은 향이 나고 있었다.
───어라?
……어째서 식지 않은 걸까. 사라진 줄 알았던 위화감이 마른 진흙의 테두리가 부서지듯 아주 조그맣게, 버석하고 소리를 냈다.
싫어.
깨닫고 싶지 않아.
옆자리를 더듬자 누군가의 손이 잡힌다. 아직 따뜻한 그 손을 힘껏 움켜쥐었다. ……움켜쥐려 했다.
【꿈은 어땠어?】
그러나 텅 빈 손이었다.
* *
“모두와 함께 어른이 되는 꿈을 꾸었어.”
행복한 꿈이었어?
“악몽이었어. 가질 수 없는 미래를 보여주는 이 꿈을, 악몽 외에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 없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