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늘고 하얀 손가락 끝에서부터 파란 빛줄기가 서로의 몸을 얽어 묶는다. 마력에 예민한 자라면 그의 손가락이 자아내는 정순한 기운을 감지해낼 수 있겠지만 애석하게도 챠콜은 그저 달빛도 햇빛도 아닌 빛이 손가락 끝에서 만들어지는 걸 감탄하며 바라볼 뿐이었다.
마법이란 이렇게 예쁜 걸까? 보석이나 꽃 따위와는 다른 사람을 홀리는 힘이 있는 것 같았다. 새파란 빛줄기는 이윽고 얼음으로 빚어낸 듯한 줄기가 되었고 그 줄기에서 쏙쏙 가시가 돋아났다. 어딘지 당신 같네. 그렇게 생각하며 응시하고 있자 그가 도자기 같은 손가락을 이쪽으로 느릿하게 가져왔다.
“탄생은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문제예요. 내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탄생에 의해, 그렇게 태어나 살아가면서, 내 존재 자체도 내 의사가 아닌 타인의 의사에 따라 '잘못된 것'으로 평가하기엔, 지나치게 억울할 것 같단 생각이 들어서요.”
무언가 바스락대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시선을 돌릴 수는 없었다. 두꺼운 안경알 너머로 마치 그가 이쪽을 꿰뚫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여기서 눈을 피하면 진다고, 야생에서 다져온 감이 멋대로 기 싸움을 붙이듯 고개를 꼿꼿하게 만들었다.
“자기 자신의 생각을 우선시 하려 한다면, 결국 타인의 생각은 내 생각을 침범하지 못하는 무용한 것이 돼요. 하지만, 느끼는 그것이 스스로의 판단이고, 생각이라면, 벗어날 수 없이, 그저 거기 얽매이는 거죠.”
나긋나긋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를 따라서 챠콜은 문득 지나간 일을 떠올렸다.
『싸웠나요?』
그럴 리가. 한나는 가난하고 더러운 빈민촌 안에서도 언제나 상냥함을 잃지 않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늘 안경에 물이 튀는 것도 개의치 않고 꼬질꼬질한 아이들을 하나씩 붙잡아 그나마 깨끗한 강물에 씻겨주었다. 챠콜도 몇 번이나 그녀의 옆구리에 들려 물속에 빠지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바닥에 얼굴을 문질러지곤 했다. 씻기 싫다고 버둥거리면서도 챠콜은 그녀의 손이 얼굴을 닦아주는 게 싫지 않았다.
그러나 한나의 손도 챠콜이 목에 새기고 온 낙인만큼은 닦아내지 못했다.
「한나, 이건 왜 안 닦여?」
「……이 불길한 것!」
한나의 손자가 전염병에 죽은 건 챠콜 때문이라고 했다. 챠콜은 그런 기억이 전혀 없지만 그녀가 그렇다고 하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챠콜이 나빴고 챠콜이 잘못했다. 그렇지 않다면 상냥한 한나가 저렇게 화를 낼 리가 없었다.
「네가 나쁜 게 아냐. 사일란은 잘못이 없다.」
그렇게 말해주었던 유일한 한 사람을 만날 때까지만 해도 챠콜은 전부 제 잘못이라고 믿었다.
──사실은 지금도, 정말 제 잘못이 아닌 걸까? 의문은 지워지지 않은 채였다. ‘나’의 잘못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잘못도 아닐까? 태어난 것부터 잘못되었던 것은 아닐까? 신이 만들어낸 이 세계에서 ‘우리’만은 신의 작품이 아니다.
때문에 그들의 부정이 타당하다고 여겼다.
“억울하지. 아주아주 억울해. 억울하고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어.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냐. 내가 선택하지 않았어. 하지만, 수십, 수백, 수천의 목소리에 어떻게 귀를 막고 눈을 돌리지? 당신은 혹시 그러기 위해서 눈을 가리고 있기라도 해?”
자신의 뜻을 관철하고 싶어도 제 목소리는 사막에 굴러다니는 모래알 정도의 힘밖에 갖지 못했다. 그래서, ──관철할 힘을 갖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지만.
아까 제 귓가에 가져갔던 손은 줄기에서 꽃을 피워냈던 모양이다. 사람의 손으로밖에 만들어낼 수 없다는 푸른 꽃잎을 채 눈에 담기도 전에 손바닥 안에서 사라지는 꽃을 아쉬운 눈으로 좇으며, 다시금 고개를 올린다. 지금 들려주는 이야기는 혹시 그 자신의 것일까?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얼굴이지만 들려오는 목소리가 아주 조금 달라진 것 같다고 귀를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