𝐓𝐇𝐄 𝐂𝐔𝐑𝐄 : 존재의 증명

15) 앞으로 이틀

천가유 2022. 8. 25. 00:11

2챕 개인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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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문에 인식표를 갖다 대자 문이 열렸다.

어서 오세요, 소워비 씨. 그럼 오늘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619번 연구실, 몇 번인가 본 사람들이 반겨준다. 준비된 옷으로 환복하는 동안 담당자가 오늘의 계획을 설명해주었다. 제작될 탄환이 몇 개이고 그 안에 어떻게 담길 것이며 하는 등의.

이번에 제작될 탄환은 전부 ‘2차 게이트 탐사 작전에 쓰일 거라고 했죠? 대단하네요.”

. 그러니까, 만들 수 있는 한 많이. 가득, 해줘.”

소워비 씨의 몸이 우선이니까 무리하면 안 돼요.”

탄환도 좋지만, 당신은 게이트 너머로 갈 당사자잖아요. 연구원의 말을 적당히 한 귀로 흘리며 유니트 체어를 닮은 의자에 앉았다. 아니, 유니트 체어보다는 미용실 분위기에 가까울까. 비스듬하게 누워 머리카락들에 의식을 집중한다. 하나하나 촉수처럼 변한 그것을 링거 같은 곳에 끼우면 이쪽의 준비는 끝이었다. 캐리어의 신체를 이용해 무기를 개발한다고 해도 거창하게 말할 것 없이 대단히 직관적인 구조인 것이다. 마음대로 움직이는 머리카락들을 정해진 위치까지 옮기고 나면 연구원이 신호를 준다. 이제 라리사는 괴이화 된 신체를 녹여 독액을 흘려보내기만 하면 끝이었다.

탄환의 성능은 제법 좋다고 했다. 오드의 몸체를 녹이는 독액은 탄환이 명중만 한다면 해당 부위를 훌륭히 녹여내 캐리어가 손쓸 수 없는 위급상황에서 유용하게 쓰였다. 성분을 조사하여 대량생산할 수 있으면 무엇보다 좋을 테지만 아직 거기까지는 도달하지 못해 이 한명의 캐리어에게 의지하고 있는 판국이었지만.

이봐 친구, 그거 알아? 해파리 하나에는 자그만치 해파리 하나 분량의 독이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1명분의 캐리어에게서, 몇 개분의 탄환이.”

, 또옥. 링거를 타고 독액이 점점이 떨어진다. 침식률은 연구원이 계속 체크하고 있고 독액의 농도도 확인 중이다. 얼마 전 마누카에게 괜한 소리를 했다가 개량형 탄환을 만들기 위한 빌미를 준 것도 같았지만 그 뒤로 쏟아진 난장판 덕분에 그 일은 유야무야 지나갈 수 있었다. 그 분량의 보고서를 읽으라니, 무리야. 이해가 따라가지 못해. 안 그래도 이곳의 연구원들 역시 그 소동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아 보였다. 그러나 라리사가 할 말은 딱히 없어 입을 다물었다.

모처럼 캐리어도 얻은 자유로운 외출 허가잖아요. 바다에 안 가세요?

엄중한 감시가 따라붙는 외출이지. 그런 식으로 해서 가고 싶진 않다. 복에 겨운 이야기일지도 모르나 그만큼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기도 했다. 지금의 라리사에게는 불편하게 바다에 다녀오기보다 이곳, 그리고 이곳의 사람들이 더 좋았다.

가방, 뭐 뭐 챙겨야 할까.”

가진 짐이 많지는 않아. 인형은 가져가? 거기서 잃어버리면 어쩌지. 하긴, 내가 돌아올지도 불확실한데 인형 걱정을 하네. 인형이랑, 카메라. 다이어리, …… 순 소풍 가는 것도 아니면서 임무에 걸맞은 소지품이라곤 하나 없어. 이런 점은 나이를 먹어도 변하지 않은지도 몰랐다.

무사히 돌아오면 그때야말로 바다에 가자. 가고 싶을 때, 가고 싶은 사람과 갈 수 있으면 좋겠어.

링거액이 규칙적으로 방울져 떨어지는 소리만이 고요한 연구실을 채웠다. 기계가 움직이는 동안 지루한 시간이 흘렀다. 고요함은 싫다. 지나친 정적은 꼭 이곳에 혼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럴 때면 생각이 많아졌다. 가령 미래에 대한 생각이다.

며칠째 라리사는 같은 생각을 반복하고 있었다.

라리사, 너는 모든 상황이 우리를 버리고 캐리어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왔을 때 게이트 너머를 생각할 의향이 있어?

──그 질문은 사실 아주 오래 전부터 생각해오던 것이었다. 어쩌면 우리에게 있어서 오드라고 하는 외부의 적은 계속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과 더불어. 그래야만 우리 존재의 존속 가치가 있으니까. 그렇지 않았다간, 토사구팽兔死狗烹. 사냥을 마친 사냥개는 주인에게 잡아먹히는 길 외에 없잖아.

비관에 빠진 상상이 아니었다. 더 이상 오드가 나타날 위험이 없는 세계에서 잠재적 오드인 캐리어들을 굳이 살려둘 이유를 찾지 못했을 뿐이다. 인류의 영웅? 그간의 노고를 치하? 그렇게 다정한 세계는 처음부터 아니었지 않은가. 섣불리 상상하지 않던 이유는 아직까지 오드가 나타나지 않는 세계란 너무 먼 미래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나는 더 이상 이계의 불청객들이 인류의 터전을 짓밟고 파괴하는 꼴을 두고 봐줄 수 없다.

숙적들의 터전을 관측하고, 정체를 파악한다.

그리고 섬멸한다.

세계의 영웅이란 이런 사람을 말할까. 커맨더의 말은 그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가능성인지 떠올리게 하는 대신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헛된 기대를 안게 했다. 5년 전처럼. 물론 겨우 이번 한 번의 탐사로 무엇을 얼마나 알아올지는 알 수 없었다. 말처럼 열흘 뒤의 10차 게이트 오픈 전에 돌아올지도 장담하지 못했고,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사이 2년은 무슨 20년이 흘러도 이상할 것 없는 임무였다. 다만 수많은 불확실한 전제들 사이에서 확고한 명제가 2개 있다면,

하나는, 우리가 게이트 너머로 직접 가게 되었다는 것이며

하나는, 오드와의 전쟁이 끝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상상해야만 했다. 어쩌면 성큼 다가올지도 모를 전쟁의 종결을. 그러면…… 마지막에는 괴물인 우리만이 남겠지.

이틀 전, 감마 7팀에서 게이트에서 돌아온 '인간'을 확보했습니다.

우리가 마지막 괴물이 되겠지.

그리는 꿈이 있었다. 자유롭게 오갈 곳을 선택하는 풍경이다. 바다로 가든 산으로 가든, 사람이 많은 곳이든 한적한 곳이든 누가 정해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어떤 조건도 의식할 것 없이 원하는 길 위를 걷는 청사진이다. 언제 이렇게 사치스럽고 욕심이 늘었을까. 바람이 커질수록 반대급부처럼 미리부터 각오하는 이별도 있었다. 아무도 죽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108명은 너무 많다. 그렇다면 그 안에서 살아남을 사람을 골라야 할까.

5년 사이 자란 것 같은데, 자란 만큼 발 디딜 곳은 줄어든 것만 같았다. 누가 나를 이곳에 가두었을까. 아마도 스스로다.

내 못은 점점 줄어들고 메마르게 될 거야.’

그 안에서 나는 점점 숨을 옥죄고 말겠지.

그렇다면 절대 실패하지 않는 바다로 가고 싶어.

바벨을 향해 올라가는 친구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위로 오르는 너를 이 지상에서 지켜본다.

할 수 없어. 바닥을 보여 가는 못에 남아 타들어 죽더라도, 이 작은 세계에 남고 싶어. 세계가 나를 허락해줄 때까지 그 좁은 공간에 욱여넣어져.

──. 또옥.

물방울이 떨어져 고이는 소리가 들렸다. 다 끝났어요, 소워비 씨. 눈을 뜨면 본부의 619번 연구실. 탄환은 저희 쪽에서 마무리해서 보내드릴게요. 고생하셨어요. 이거라도 먹으라고 쥐어준 초콜릿을 입에 넣었다. 끈적거리는 단맛을 입안에서 씹으며 연구실을 나왔다. 어느새 저녁 시간이었다.

배고프다…….”

힘을 잃고 축 늘어진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돌돌 말고 라리사는 걸었다. 아래로, 또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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