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아단
“자장가 부를 줄 알아요?”
전날 네가 불러준 자장가는 가사가 기억나지 않았다. 작고 잔잔하고, 듣기 좋은 소리였다는 인상만이 남았는데 본래는 어떤 음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어딘지 귀에 남도록 독특해 아가야, 그 한 마디 가사가 퍽 이질적이었다.
“……들어보기만 했는데, 부르면 잠이 더 잘 올까?”
마지막으로 들어본 게 바로 어제. 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인생의 반을 넘게 되감아야 한다. 어제의 너 덕분에 추억이 떠올라 혼자 가사를 헤아려본 것만이 다행일까. 낮잠을 재워주던 선생님의 손이나 부드러운 목소리, 따뜻한 오후의 햇살 아래 눈 감았던 기억을 되짚으며 누운 네 위에 토닥토닥, 손바닥을 두드렸다. 그날엔 아무런 걱정없이 평화롭기만 했는데 이곳은 햇살의 기억을 안기에는 어둡고 습하기만 하다. 눅눅한 물내음 우울한 체취. 그리고 이어지는 눅눅한 목소리.
멜로디를 따라가는 서툰 목소리였다. 평소에도 목소리에 감정 같은 건 실을 줄 모르니 노래라고 그럴까 싶었지만 숙면을 돕기에 썩 도움이 되는지도 의아했다. 그래도 너는 잘 잤다. 애초에 자장가가 필요해서 시킨 것도 아니었겠지. 여기가 어디라고 그새 어디든 상관없이 잠든 얼굴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두드리던 손의 움직임을 멈췄다. 손바닥 아래로 규칙적인 고동이 들려왔다. 안심한다.
캄캄하고 어두운 동공을 한 바퀴 둘러본다. 하나, 둘, 셋, 넷……. 머리를 헤아리고 익숙한 얼굴들을 찾았다. 오늘 이 자리에 모두가 살아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첫 출전인데 전부 살아있네요? 다들 실력 굉장하네…….」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이 지극히 같은 감상이었다. 자칫하면 누군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앞으로 몇 번이나 겪어야겠지. 계속되겠지. 이런 순간들에 익숙해져가겠지. 그렇게 해서 우리의 마음도 깎여나가겠지.
어떤 책이었더라. 사람의 마음이란 태어날 때 세모난 모양인데, 살아가면서 그 마음이 자극을 따라 깎이고 깎이다 보면 이윽고 둥글게 되어 어떤 일에도 모나게 찔리지 않고 무던히 넘어가게 된다고 했다. 익숙해진다는 건 그랬다.
「뾰족한 게 사라지면 좋은 거 아닌가요. 어디에나 더 잘 적응할 수 있는 건데.」
──스스로만 지키기에도 힘든 세상이잖아요.
익숙함이 필요해질지도 몰랐다. 아무렇지 않은 무던함, 고통도 슬픔도 잘 견뎌내고 스스로를 지키는 일. 하지만 이곳에 와서, 라리사 소워비는…… 아무 맛도 나지 않던 백지의 인간은 색이 입혀지는 행복이라는 걸 조금 알게 되었다. 살아가는 건 쉽다. 그저 호흡하면 그만이다. 잘 살아가는 건 쉽지 않다. 각자가 지닌 ‘잘’의 기준이 달라서, 그래도 사람은 누구나 어차피 살아가야만 한다면 잘 살고 싶을 게 틀림없어서.
네가 세운 ‘잘’의 기준은 아마도 잘 먹고, 잘 자고, 적당히 필요한 만큼만 하고, 가볍게 하지만 너무 깊지 않게 그 무던함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렇게 지켜봤다. 근 6개월, 네 거리는 늘 그 바깥 메마르고 건조한 땅을 연상시키듯 가까워지는 법이 없었는데. 그런데 요 며칠, 그저 허물없이 굴던 경계를 지나 조금 더, 닿아오려는 모습이 신기해서.
둥글어진 부분에 살이 붙을까. 네 마음을 찌를만한 뾰족한 것이 갈고 닦이게 될까. 웃음과 울음이 싹트게 될까.
같은 노래를 몇 번이나 반복해 나지막하게 불렀다. 알고 있는 가사는 짧고 그렇지만 입을 다물면, 침묵이 길어서 혼자 누가 듣는지 모를 자장가를 흥얼거리다 겨우 멈췄다. 누구 옆에 있으면 따뜻해서 잠이 잘 온다고 했다. 잠든 얼굴이 제법 가지런했다. 독특한 눈색이 감기면 너는 이 어두운 공간에 동화될 것 같았다. 흐릿해서 잡히지 않을 것 같아. 이제껏 혼자 누워 잠들지 못한 적이 없지만 잘 자는 네 옆에 몸을 누인다. 내 미지근한 체온과 다르게 드는 온기가 네가 여기 있음을 가르쳐주었다.
잠이 잘 올 것도 같았다.
“잘 자.”
참 다정하던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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