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말하는 네 눈동자 너머로 진한 공허를 보았다. 한 번 삼켜들면 빠져 나오지 못할 것만 같은 그 우물 속에, 너는 어떤 것을 빠트렸어?
딸랑, 딸랑.
두 개의 방울이 부딪치며 맑은 소리를 낸다. 습관처럼 제 머리카락을 넘기며 노아는 구석에 웅크렸다. 광장이든 계단이든 교실이든 어디라도 좋다. 다른 사람들의 잡담을 듣고 있으면 마치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 들어 노아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좋아했다.
그러고 있으면 많은 이야기가 들려왔다.
“어? 이 거울… 저번에 –한테 빌린 건데…… 누구였지?”
“주인이 알아서 찾으러 오겠지.”
“그런가?”
“……우리 부모님은 연세가 굉장히 많은데 자식이 나 하나뿐이라 되게 애지중지 하신다니까. 어릴 때도 되게 예뻐하셨다고는 하는데 나는 기억이 잘 안나.”
“……아니야. 분명 더 있었다니까?”
“변명하지 말래두 내가 뒤에서 두 번째였는데. 너 뿐이었어.”
“…… …….”
들려오는 이야기는 매번 제게 기시감을 안겨 주었다.
───애매한 기억이 있다.
가령 어색하게 비는 식탁의 한 자리,
혹은 이상하게 넓은 자신의 방,
책장의 빈칸, 허전한 서랍장, 익숙하지 않은 잠자리, 그러면 혼자 자려다가도 참지 못하고 부모님의 방으로 향했다. 부모님의 품에 안기고 나서야 겨우 잠이 들 수 있었다.
“우리 노아가 신인학당에 들어가고 나서 어리광이 더 늘었구나.”
“괜찮아. 엄마아빠도 노아랑 이렇게 있으니까 너무 좋다.”
그 때마다 부모님은 자신을 힘껏 껴안고 언제까지고 토닥여주었다. 괜찮아. 우린 너만 있으면 돼. 사랑한단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기쁜 동시에 가슴 한켠이 지독하게 아려와, 이유도 모른 채 몇 번이나 울었다.
방학이 끝나고 학당에 돌아갈 시기가 되면 어머니는 거듭 당부를 하였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위험한 곳에 가선 안 되고, 혹시 신력이 늘지 않더라도 너무 초조해하지 말고. 어머니의 당부는 그저 걱정이라기엔 편집증이 느껴질 정도였고 그러면 아버지가 어머니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렸다.
“노아야. 어디서나 말을 아끼거라. 그림자를 조심하렴. ……우린 네가 몰라도 괜찮단다.”
부모님이 무엇을 그렇게 두려워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옛날이야기 속 【열어서는 안 되는 상자】처럼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직감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노아야, 사랑하는 내 동생.】
“[제 2 도서관]…….”
6학년 이상부터 들어갈 수 있는 그 곳의 문이 열린 것을 보았을 때, 평소 같으면 겁이 나 들어가지도 못할 아이가 발을 디디고 말았다. 늘어진 책장을 걸어 다니며 무슨 책을 찾고 싶었을까.
‘기억, ……애매한 기억에, 관한 내용.’
《책 같은 것보다 너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아?》
‘어째서, 생각나지 않는 걸까. 아니, 생각해낼 수, 없는 걸까.’
《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건 누구일까?》
‘…… …….’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언제일까. 어렴풋한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 언제나 웃고 있는 부모님의 얼굴이 있었다. 눈이 많이 내린 겨울, 체력이 약한 자신을 아버지가 목말을 태워 발목이 빠지는 눈길을 걸었고,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는 건 ───누구¿
“우리 반 □■ 명 아니었어?”
“뭔가 착각한 거 아냐?”
“그랬나.”
‘난조는 여덟, 난조는 여■, 난조는……’
“수학여행지, 선생님께 말하고 온 아이가 누구였더라?”
“글쎄, 뭐 누군가는 말하지 않았겠어?”
‘난조는……───, 일곱.’
어째서일까. 이렇게 울고 싶어지는 건. 녹색의 머리끈을 예쁘게 묶고 있던 그 아이는 누구였을까. 자신이 문양을 새겨준 방울을 기쁘게 흔들던 그 아이는, ───………어라. 그런 아이가, 있었던가?
찾고 싶어.
그 이상은, 말하면 안 돼.
쉿, 늑대가 찾아올 거야.
───깜빡, 깜빡. 너와 눈을 마주치고 천천히, 느릿하게 숨을 내뱉었다. 목소리는 내지 않는다. 당부는 기억하고 있었다. 제 입을 가리고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 마치 공범자인 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