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주전자에 차를 담아 책상 옆에 올린다. 그 옆에는 마찬가지로 오래된 작은 인형이 하나. 새 물건을 사는 일이 좀처럼 없는 세이라의 물건들은 대부분 이렇게 세월이 느껴지는 것들이었다. 그녀의 성격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했다.
고양이 인형을 톡톡 두드리다 빙그레 웃으며 세이라는 머그컵에 차를 따랐다. 이 머그컵은 드물게도 그녀가 가진 것 중 새로운 것에 속했다. 교생 선생님이 찾아오면서 나눠준 선물, 중에서도 친구와 교환한 것. 머그에 차를 따르자 향긋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오늘의 차는 벚꽃차였다. 그러고 보니 바깥에서도 꽃이 후두둑 떨어지고 있었지. 세이라가 이렇게 차를 준비하며 책상 앞에 앉은 것도 시험지를 작성하기 위해서였다.
초등부 B반 세탄 세이라
백지 위에 이름부터 적어 넣고 그 옆에 주제를 적는다. 〈나의 앨리스〉
주제에 맞춰 자유롭게 생각을 적는 작문 시험이었다. 문장을 적는 것이라면 세이라가 조금 자신 있어 하는 것으로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막상 첫 문장을 적으려니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의 앨리스>는 초음파 앨리스로 일반적인 사람들에겐 들리지 않는 소리를 발산할 수 있는 앨리스입니다.
너 자신에게도 들리지 않는 거야? ──네. 그녀의 앨리스는 목에 깃든 것이지 귀에 깃든 것이 아니었기에 스스로 앨리스를 사용하면서도 들리지 않았다. 앨리스를 쓰고 있다고 느끼는 건 분명 목에서 소리를 내고 있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단 것과, 앨리스의 사용이 끝났을 때 아무리 소리를 내려고 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단 패널티를 통해서.
그럼 어떤 목소리를 내는지 스스로도 모르는 거네? ──그 말도 맞았다. 노래를 부르고 있을 셈이었지만 실은 아주 엉망일 수도 있었다. 자신의 앨리스의 쓸모, 효용성 따위를 고민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과연 자신의 앨리스는 얼마나 유용할까를 생각해보기도 했었지.
제 앨리스는 감지가 가능합니다. 소리를 멀리까지 보내어 되돌아오는 시간을 감지하여 저 앞에 어떤 장애물이 있는지 알아내거나 물체의 안쪽으로 소리를 보내 내부의 결함 같은 게 있는지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아직 섬세함이 부족해서 조절이 조금 어렵지만 배를 타고 나갈 때의 레이더와 같은 역할이나 사람의 몸 안에 이상이 있을 때 검사할 수 있습니다.
적어보자면 제법 유용한 편이었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는 문제였다. 세이라는 자신의 앨리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초음파’라는 능력 쪽이 아닌 ‘앨리스’를 좋아하지 않았다.
───앨리스가 없었다면 학원에 올 이유도 없었을 테니까.
생각에 잠기다 보니 펜이 멈췄다. 어서 마저 적어야지.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라고 하였는데 보고서 같은 형식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자유롭게라고 하셨으니까 이 또한 자유에 속하겠지. 차를 한 모금 더 마신 세이라는 나머지를 이어서 적었다.
능력의 훈련에 따라서는 조금 위험하게 발현될 수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지금보다 더 고출력으로 소리를 낼 경우에는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거나 세포를 파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잘 모르겠습니다. 앨리스를 올바르게 사용하기 위해 앞으로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후원을 해주겠다는 어른들이 여럿 왔었다. 앨리스의 존재가 마뜩찮은 세이라는 모두 정중히 사양하였지만 이해할 수 없는 설명을 늘어놓던 어른들이 있던 기억이 난다. 배를 태워주겠다던 그 분은 조금 혹했었는데. 생각해보면 커다란 배의 선장님이라던 그 어른의 손이라도 잡을 걸 그랬나. 떠올리다 고개를 젓는다.
……그 뒤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적다 보니 어느덧 한 페이지가 빼곡히 채워졌다. 정작 제 생각이라고 할만한 게 얼마나 들어갔는진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세이라는 이만 마침표를 찍었다.
이런 식으로 쓰는 게 아니었던 모양인데(다른 친구들 쓴 걸 보니까) 굉장히 사무적으로 짧게 써버려서 좀 머쓱했는데 돌이켜보면 세이라가 자기 앨리스를 이만큼밖에 생각 안 해서 그런가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