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아이는 언제나 똑같다. 무력하게 비명을 지르기만 한다. 때로는 아이가 되어, 때로는 이 모든 광경을 그저 지켜보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관객이 되어 그녀는 꿈을 꾼다.
「어, 머니…. 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안 돼. 싫, 어. 싫어!!!」
「네가 리리로구나. 하하, 그래. 혼자는 쓸쓸하지. 금방 보내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칼을 든 남자가 몇이나 작은 집에 밀어닥치고 어머니와 아버지와 함께 소중히 꾸민 집이 흙발로 마구 짓밟힌다. 새까만 밤이었다. 달도 제대로 뜨지 않던 그저 칠흑 같던 밤, 남자들은 이유도 말해주지 않은 채 들이닥쳐 어머니를 죽이고 아버지를 죽였다.
이제껏 날붙이란 농사를 지을 때, 혹은 요리할 때만 쓴다고 생각했다. 그 날카로운 게 사람을 향한다는 건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나날이었다. 그런 어느 밤, 불현 듯 그렇게 현실이 어린 아이를 덮쳤다.
유난히 볕이 좋았던 낮, 어머니와 함께 말렸던 포근한 이불이 축축이 젖어든다. 코끝을 찌르는 비릿한 냄새는 날붙이의 냄새인가 피의 냄새인가. 복부를 깊게 찔린 어머니는 파들파들 몸을 떨면서도 아이를 꼭 껴안아주었지. 그 위를 다시 아버지가 감싸 안아주었다. 그러나 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한 평생 검과는 인연이 없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말이 통하지 않는 무자비한 폭력 앞에서 그저 무력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거친 손이 아이의 작은 손목을 움켜쥔다. 어린 아이의 그저 부드럽고 무른 살덩이가 비틀리도록 힘껏 쥐고 그대로 아이를 대롱대롱 들어 올리며 웃던 남자의 얼굴, 그 얼굴이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던 것이 차라리 축복이었을까.
아이는 그대로 기절했다. 깨어 있을 때는 어째서 살아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버지의 오랜 친구라 들은 아저씨가 깨어난 아이를 보고 슬픈 얼굴을 했다. 리리야, 앞으로 나와 가겠느냐. 그 물음에 부모님은요? 철없는 물음 한 번 하지 못하고 아이는 고향을 등졌다.
후에 들은 이야기로는 눈엣가시였다고 했다. 배움에 귀천은 없다. 지식이야말로 빛바랠 없는 보배다. 그리 마을 사람들을 가르치던 아버지가, 나아가 현 체제에 관해서까지 말하던 아버지가, 눈엣가시여서 산적을 움직였던 거라 들었다.
그 뒤로 붙잡혔던 오른손은 손목 아래로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신경에 문제가 생겼다던가. 침을 놓던 의원이 고개를 젓는 걸 보고 그 뒤로 아이는 쓰던 손 대신 왼손을 움직였다.
늘 봄을 한가득 안은 마을에 오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 해가 지났을 때였던가. 아버지의 친구는 아버지보다도 위험한 일을 하던 사람으로, 그 때문에 언제까지 아이를 데리고 다닐 수는 없다고 했다.
「이곳이라면 안전할 거다. 너는 부디 행복하렴.」
제가 짐인 걸 아이도 모르지 않았다. 혼자 두지 마세요. 외로워요. 그 말을 그저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건강하셔야 해요.」
남길 수 있었던 건 다만 그 한 마디. 이후로는 십 년이 다 되어 가도록 행방도 알지 못한다. 어쩌다 한 번씩 편지가 오기도 했지만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는 아저씨에게 제가 먼저 편지를 보낼 수는 없어서, 그저 잘 지낸다고 무뚝뚝하게 적힌 짧은 안부에 안심하는 게 전부였다.
살려준 은혜를 입어서, 보살펴준 은혜를 입어서,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 비록 과거에 불행한 일이 있었지만 지금의 그녀는 행복하다. 입고 먹는 것에 부족함이 없고 그녀를 스승이라 따르는 귀여운 제자가 있고 이웃이 있다. 이런 작은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기에, 그녀는 욕심 부리지 않았다.
욕심 부릴 수 없었다.
──외로워.
그러니까 불쑥 드는 이런 생각은 나쁜 생각이다. 차라리 그 때 부모님과 함께 죽었더라면 좋았을까. 살아남지 않았더라면 외롭지 않았을까.
「잘 잤니, 리리야. 오늘도 날이 좋구나.」
「오늘은 또 우리 말썽쟁이 아가씨가 무슨 사고를 칠까?」
새 하루가 밝을 때마다 허전한 옆자리를 보며 눈을 뜨는, 왼손이 익숙해지는 동안에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에 목이 졸리는 듯한 기분으로 한숨을 내뱉고 흙과 풀이 젖어드는 냄새를 어렴풋이 맡으며 빗소리를 핑계 삼아 이불 속으로 다시 기어들어간다. 한 번 더 잠들면 행복한 꿈을 꿀까. 그리운 얼굴들을 만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