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고백을 했다고 들었다. 아무래도 작은 마을이다 보니 이런 소문은 발 없는 말처럼 빨리 돌아서,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그 소식을 귀에 전해 들었다.
고백, 사랑 고백……. 상대에게 연심을 품고 앞으로 함께하자고 말하는 그 조심스러운 속삭임. 굉장한 용기라고 생각했다.
저는 갖지 못하는 용기였다. 그래서 밤의 장막에 숨어 혼자 한숨을 내쉬는 그의 옆에 힘이라도 내라고 술병 하나를 선물했을 뿐인데,
“에헤헤~”
“역시 그만 가는 게 낫겠구나.”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성년식을 치르고 몇 번 마셔보지 않은 술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술 냄새를 풍길 수도 없거니와, 주위에서 딱히 함께 마실 상대가 없어서─아주머니 아저씨들과 마셨다간 살아남을 수가 없다─어쩌다 한 번 혼자서 자작을 하고 말았다. 그럴 때마다 좀 더 마시고 싶은데, 라는 마음과 내일을 위해 참자는 마음이 섞여 끝 맛을 그저 아쉽게 하였다.
그러다 이렇게 아무리 마셔도 흔들림 없는 상대가 있던 덕일까. 그를 따라 홀짝이다 보니 정신을 차렸을 때는 세상이 핑 돌고 있었다. 일렁이는 시야 너머로 걱정스러운 그의 표정이 보인다. 저를 걱정하는 시선은 무척 상냥하고, 어딘지 아까의 그늘이 옅어진 것 같아, 그게 기뻤다.
“업히거라.”
이 말은 또 얼마 만에 들었는지. 어릴 적, 아버지 널따란 등에 올라타던 그 흐릿한 기억 이후일까. 머뭇거리는 제 앞에 허리를 숙이는 모습을 보고 마지못해 몸을 기대자 그는 거뜬하게 저를 업어주었다. 그 등이 퍽 든든해 저도 모르게 미소를 그린 채 그에게 기대었다.
그는 예전부터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지. 제가 찾아 물은 것도 맞지만 물어볼 때면 때론 그리운 얼굴을, 때론 슬픈 얼굴을 하고 들려주었다. 가족의 이야기, 어릴 적의 이야기, 일 이야기, 그리고 또 연인의 이야기. 한 때는 그가 과거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할 줄로만 알았다. 끔찍한 일을 겪고, 아직도 그 검은 숲에서 발길을 떼지 못하는 그가 걱정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는 과거의 일을 떠올리며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잿더미 속에서 행복한 기억을 찾아냈다. 그 중 연인의 이야기는 특히나 애틋하면서도 사랑스러워, 듣고 있는 제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슬픔에서 일어나는 사람이다. 또한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어제도, 오늘도.
그러니 그는 앞으로도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내가 리리의 첫 벗이 되는 건가?”
“네에, 자부심을 가지셔도 좋답니다. 제 첫 술친구?”
행복한 사람을 보는 것이 좋다. 제 주위의 사람이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 행복에 전염되듯, 따라 웃을 수가 있으니까. 제 욕심처럼, 강요라도 하듯 매번 그렇게 행복해지시라 말하였지만 그 하나하나가 그녀의 축복이고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는 필히 그녀가 더 걱정하지 않아도 행복할 것이다. 스스로 행복을 찾아낼 것이다.
그가 선물로 준 머리 장식을 땋은 머리카락 위로 조심스레 꽂아본다. 나뭇잎과 꽃이 섬세하게 모여 있는 장식은 언뜻 보아도 퍽 귀한 것이었지만, 그녀에게 준다고 말하는 그의 눈빛이 온화하였기에 묵묵히 받았다.
“…… …‥잘 어울리는구나. 어여쁘다.”
다정한 손길에 희게 미소 지으며 그를 바라본다.
“귀한 선물 감사합니다. 소중히 하겠습니다.”
따스함을 품은 눈동자는 보고 있으면 안심이 되었다. 소중한 벗의 앞날이 더 이상 괴롭지 않길, 그 눈동자에 걸맞은 따스한 나날이 계속되길. 그런 작은 기원을 품으며.
───어쩌다 그냥 벗도 아니고 주우(酒友)가 생긴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벗과 술은 오래 될수록, 깊을수록 좋다 하니 좋은 게 좋은 것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