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음과 함께 흰 격자무늬로 채워져 있던 공간이 발아래서부터 바뀐다. 가상 현실 홀로그램으로 환경이 뒤바뀌는 것이다. 머리끝까지 공간이 위기 상황으로 채워지면 아인델은 곧장 소리, 냄새, 눈에 의지해 현재를 파악하였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대처할 수 있도록, 이라는 이유로 늘 상황이 시작하기 전까지 사전 정보는 받을 수 없다. 그러니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가장 중요하고 우선시 할 일이지만, 이번에는 유달리 여유를 부릴 수 없었다.
10… 9… 8……, 카운트다운 소리와 함께 아인델은 민간인을 향해 두 팔을 뻗었다. 폭탄을 해체하는 건 당연히 무리, 벽에 붙은 폭탄을 무리해서 떼어내는 것도 지금 상황에선 도박이다.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것은 민간인의 안전. 그렇다면 선택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은색의 실을 민간인에게 휘감는다. 이어 당긴다. 순식간에 상대와 제 거리가 좁혀든다. 폭탄의 위험범위에서 벗어나는 건 무리였다. 그렇다면──,
스스로를 희생하기로 결정하기까지 아인델에게선 일말의 머뭇거림도 찾을 수 없었다.
제 몸으로 민간인을 감싸고 폭탄에 등을 돌린다. 동시에 등 뒤에서 카운트다운 종료와 함께 폭발음, 그리고 뜨거운 충격을 느꼈다. 몸이 허공을 붕 떠오른다. 홀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등이 타들어가는 감각, 머리카락과 옷이 불타는 기분 나쁜 냄새, 고통, 모든 것이 생생했다.
악취미야. 거기까지가 생각할 수 있는 마지막이었다. 멀어져가는 시야 너머로 홀로그램이 해제되고 흰 격자무늬의 벽이 어렴풋 보인다. 아득한 통증과 함께 아인델은 정신의 끈을 놓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