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적의 기억이다. 부모님의 손을 맞잡고 팝페라 콘서트를 간 적이 있다. 그 날의 기억은 벌써 10년 가까이 지난, 무척이나 옛된 기억이지만 그럼에도 색 바랜 사진을 책 사이에 소중히 끼워넣듯 아끼는 추억이었다.
넓은 오페라 하우스를 가득 채우던 밀도 높은 목소리, 아름답고 따스한 소리가 공간을 채워나가 마치 편안한 물속에 잠긴 듯 했다. 노래는 그저 아름답거나 편안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때론 격정적이었고 정열적이었고 슬프거나 애틋하고 목소리가 고조될 때마다 어린 마음 또한 하늘을 찌를 듯 고조되어 가수가 자아내는 선율에 일희일비를 반복했다.
아름답고 굉장한 사람. 루이스 재프먼이란 인물을 처음 알게 된 아인델의 감상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인델은 또 한 사람, 굉장한 이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어린 딸, 언뜻 보기엔 제 또래인 아이는 무대의 마지막을 어머니와 함께 장식하였다.
아이의 목소리는 여렸고 조금 미숙하기도 했지만 목소리에 깃든 감정만은 제 어머니와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하모니는 무대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굉장해.
제 또래의 아이가 굉장했다. 이미 하나의 경지를 이뤄내고 있었고 어른들 사이에 당당히 서 빛바랠 줄 몰랐다. 무척이나 굉장해. 아인델이 처음으로 인정한 또래의 경쟁자였다.
그렇지, 경쟁자였다. 분야가 달라도 좋았다. 목표가 달라도 좋았다. 자신의 자리에서 최고가 되려고 하는 그 아이를 아인델은 경쟁자로 두었다.
루이스 재프먼의 부고를 듣고 그녀의 장례식에 참석해 흰 꽃을 남기며 장례식장을 지키는 그 아이를 또 보았다. 나는 너를 지켜볼 거야. 앞으로도 계속, 너를 지켜보고 네 길을 응원할 거야.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침통함에 잠긴 아이에게 무어라도 좋으니 말을 남겼다. 그 아이가 자신을 기억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와 재회한 곳이 이곳, 발홀 아카데미만 아니었어도 아인델은 순수하게 기뻐하고 내가 너의 팬이라 말하길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인델은 그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꺼내지 않았다. 그녀가 동경하고 인정한 노랫소리가 과거의 것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아인델은 앞으로 그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어떤 모습이라도 난 다이아나 리예요.」
그녀의 말이 틀리지 않다. 그녀에게 가이드의 능력이 생겼다한들 그녀는 다이아나 리였고 새로운 것이 덧대어졌다 하더라도 본질이 달라지진 않는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녀와 제게 어떤 강제적인 틀이 덧씌워졌단 것일 테지.
아인델은 가이드가 센티넬에게 주는 절대적인 영향력이 싫었다. 단호하게 말한다. 싫었다.
다이아나의 본질이 달라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녀의 노랫소리는 더 이상 예전처럼 아인델에게 닿을 수 없었다. 변질되고 오염된다. 순수하지 못하게 된다.
아인델은 이를 비극이라 칭했다. 그리고 비극에서 멀어졌다. 다이아나에게 거리를 두었다. 그녀의 노랫소리를 좀 더 순수하게 추억하고 싶었다. 비단 그녀가 거리를 두는 가이드가 다이아나만은 아니었기에 이상할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제 거부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손을 내미는 건 아마도 다이아나만이 아닐까.
어째서 네가 내게 다가오길 멈추지 않는지 나는 잘 모르겠어.
두 손이 잡혔다. 눈앞에 필사적인 아이의 모습이 있었다.
“효율 말고 다이아나라는 사람을 향해 말을 걸어줘요. 욕심 부리는 거 맞으니까… 부탁이에요.”
부탁이란 표현을 서슴지 않는 아이가 있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고작 호칭 하나를 갖고.
“……고작 호칭 하나를 갖고, 유난스러워.”
고집을 부리는 건 누구였을까. 유난스럽게 벽을 세우던 건.
겨우 이 하나를 두고 아인델은 그녀와 사이좋게 지낼 의사가 없었다. 그런 성격이고, 그런 관계다. 다이아나를 허락함으로써 스스로에게 여지를 주고 물러지고 싶지 않았다. 이 또한 고집이다.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맞잡힌 두 손을 부드럽게 빼내었다. 손을 빼낸 것만으로 금세 또 시무룩해지는 상대가 있었다.
네 표정은 지나치게 읽기 쉬워. 느슨하게 제 팔짱을 끼며 아인델은 고개를 기울였다. 상대와 달리 제 표정은 여전 일말의 미동도 없었다.
“인간다운 것이 무엇인지는 견해가 갈릴 것 같구나. 나는 효율이란 걸 몹시 좋아하는데. 그렇지만, 의견을 나누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단다. ……이렇게 선 채로 말고. 차라도 마시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