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델의 하루는 규칙적이다. 취침 시간, 기상 시간, 오전 일과, 오후 일과. 그 안의 사소한 내용들은 조금씩 바뀌기도 하지만 큰 틀은 언제나 변함이 없었다.
아카데미에서 지낸지 1년, 아인델의 오전 일과는 늘 훈련이다. 때로는 자율 훈련, 때로는 아카데미의 과제 수행, 종종 시간이 맞는 가이드가 있다면 손발을 맞추기도 한다. 마지막 일정은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공적인 일에 사적인 감정을 넣을 만큼, ──즉 가이딩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여 아예 가이드를 멀리하고 가이딩에 무지한 채로 있을 만큼 아인델은 어리지 않다.
사색을 지우고 홀로그램 앞에 선다. 이번 크리쳐는 마치 까맣게 타 죽은 시체와 닮아 있었다. 그러나 피부 조직이 전부 타 건드리면 바스라질 듯 연약해 보이진 않았다. 그보다는 딱정벌레와 같아. 그도 아니면 응고된 고무. 저 피부는 몹시 딱딱하겠지. 하지만 축 늘어진 몸은 속도가 빠를 것 같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상대의 파악을 끝낸 아인델은 발끝에 힘을 주었다.
“!”
고무 같은 몸으로 누워 있던 상대가 공처럼 몸을 만다. 동시에 예상보다 빠르게 몸을 튕겨 그녀에게 날아왔다. 과연 여기서 몸을 변형시킬 줄은 몰랐다. 제 실책이다.
인정하고, 아인델은 손가락을 넓게 펼쳐 달려오는 크리쳐를 막았다. 손가락 끝에서 은색의 거미줄들이 춤을 추듯 뿜어져 나온다. 본래라면 좀 더 느긋하게 그물처럼 촘촘한 막을 짜 봉쇄해버릴 생각이었지만 적의 움직임이 예상보다 빠르니 어쩔 수 없다.
‘보통 대 크리쳐 전은 혼자 싸우지 않아. 하지만 비상시에는 누구의 조력도 기대할 수 없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지.’
누군가 한 사람 더 있었다면 여유를 부릴 수 있었겠지만, 여러 가정과 시뮬레이션을 팽팽하게 돌리면서도 아인델의 손가락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검지에서 흘러나오는 실이 둥글게 만 검은 몸뚱이에서 홈을 찾는다. 그녀가 가장 섬세하게 다룰 수 있는 실이다. 검지의 실이 상대의 움직임을 일순이라도 멎게 하면 이어 나머지 손가락들이 단번에 적을 사방에서 옭아매 묶었다.
옭아매고 옭아매고 옭아매고, 강하게 조인다. 양 손가락 끝에 힘이 들어간다. 팽팽하게 당겨지는 실이 버둥거리며 벗어나려는 크리쳐와 힘겨루기를 이었다. 아인델은 크리쳐를 막을 수 있지만, 크리쳐를 해치울 수는 없다. 미션 컴플리트 표시가 뜰 때까지 버텨내야 했다.
‘……아.’
팅, 현이 끊기는 듯한 소리와 함께 새끼손가락으로 당기던 실이 끊어졌다. 동시에 매끄러운 눈썹이 살풋 좁혀든다. 약해. 정신이 흐트러졌어. 집중하지 못한 탓이야. 내가 아직 미숙한 탓. 혈관이 끊긴 듯한 아릿함과 함께 새끼손가락의 끝이 붉어진다. 그것을 무시하며 아인델은 실을 더욱 단단히 조였다. 3…, 2…, 1…….
푸쉬.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홀로그램의 적이 사라진다. 그제야 힘주어 구부러졌던 손가락의 힘을 풀었다. 하아,
“아직도 미숙하구나.”
샤워부터 다시 하고 와야지. 능력을 쓴 탓일까 머리가 지끈거리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이 기분이 마치 거짓처럼 사라질지 안다. 그러나 원하지 않는다. 땀으로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털어내며 아인델은 고집스럽게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