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시작음과 함께 서 있던 공간이 홀로그램의 가상현실로 바뀐다. 이번엔 아무것도 없는 넓은 방이었다. 아무도 없기도 했다. 이번엔 뭐지? 설마 며칠 열심히 했다고 이 방에서 정신 수양이라도 하며 보내란 것은 아닐 텐데. 그러나 정말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홀로그램의 오류라기에는 공간이 해제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카메라는 변함없이 저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할 일은 하나다. 대비. 방비. 준비.
큰 것이 온다. 그 하나밖에 예상할 수 없었다. 아인델은 실뜨기를 하는 기분으로 거미줄을 쳤다. 아주 촘촘하고 넓은, 무엇이든 감싸고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거대한 그물을 짰다. 보통은 제 몸보다 조금 더 큰 수준밖에 짜지 못하지만 시간이 많아서 그랬을까. 제법 커다란 거미줄은 아인델 한 명을 꽁꽁 싸매고도 충분할 것 같았다.
언젠가 이보다 큰 것을 짜낼 수 있을까.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해내기 위해서.
능력을 쓸 때면 종종 한계에 부딪쳤다. 그 한계란 정신이 어지러워지는 광기이기도 했고 손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물리적 한계이기도 했다. 센티넬은 좀 더 대단한 게 아니었나? 그럴 때면 맥이 풀리는 기분을 느꼈다.
신화 속 아라크네는 신에게 도전하였지. 내가 신보다 뛰어날 수 있다고.
그렇다면 나는 누구보다 뛰어남을 증명해야 할까. 한다면, 지금의 나보다 뛰어나길.
쿵, 쿵, 바닥으로 진동이 전해졌다. 어느새 넓은 방이 좁게 느껴질 만큼 저를 포위해오는 크리쳐들이 있었다. 그렇구나. 이번엔 스스로의 보호다.
남을 보호하는 일보다 단순하다. 그 때까지 손가락을 움직여 만들던 거미줄을 천장으로 쏘았다. 그리고 거미줄 위로 제 몸을 올렸다. 은색으로 반짝이는 실에 힘을 실어 어떤 상황에서도 끊어지지 않고 허물어지지 않을 견고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재구성한다. 남은 건 기다리는 일이었다. 이 지겨운 훈련이 종료되고, 모두가 그녀의 우수함을 인정해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