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어요, 라이지방에! 우와아. 우와아. 이렇게 멀리까지 나와 본 건 처음이에요. 운하시티나 선단시티까지만 가는 것도 아빠랑 같이 가지 않으면 쉽게 허락해주지 않았는데.
라이지방의 트레이너 캠프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 아빠가 짓던 표정이 아주 선명해요. 그 표정은 걱정이나 염려가 아니라……,
내가 괜한 말을 꺼낸 줄 알았어요. 허락해주지 않을 줄 알았고요. 하지만 아빠는 내 머리를 마구잡이로 쓰다듬어주며
「그래. 너도 이제 모험을 떠날 나이가 되었구나.」
선뜻 허락을 해주었어요.
아빠가 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갈……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럼 가출이라도 하려고 했지만. 어쩌면 아빠는 그걸 알고 미리 선수 쳐서 허락해준 걸지도 몰라요.
라이지방으로 떠나기 전에 필요한 물건을 사자고 장막백화점까지 다녀오기도 하고, 거기서 사준 새 신발은 아주 편하고 튼튼하고, 눈길에서도 미끄러지지 않을 거라고 했어요.
혹시 라이지방은 요리가 입에 안 맞을 수도 있다고 조미료 같은 것도 챙겨주려고 유난이었는데 난 뭐든 잘 먹으니까 괜찮다고 짐을 줄이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아, 이곳의 음식은 정말로 다 맛있어요! 캠프에서 요리를 잘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덕분에 먹는 걸로 힘들진 않을 것 같아요.
캠프 사람들도 무척 좋은 사람들 같아요. 고스트 포켓몬 친구들이 있어서 조금, ──아아주 조금, 놀라긴 했지만. 고, 고오스랑 인사도 하고 마, 만져보기도, 했는걸요! ……잘했어, 디모넵. 넌 아주 멋졌어.
엄청 다양한 지방의 사람들이 있고 나잇대도 각양각색인 것 같았어요. 엄마보다도 나이가 많은 친구를 사귀기도 했어요. 조금, 긴장했지만 멋진 말을 해주셔서 잊지 않고 기억해두려고요.
그런데 정말 연예인까지 올 줄이야. 카메라를 들고 1인 방송을 하는 것 같은 사람도 있었는데…… 다들 멋진 트레이너만이 목적은 아닌 걸까요. 물론 나도 동기가 조금 불순할 수도 있지만.
아, 동향 사람들도 만났어요. 같은 마을 친구는 물론이고 다른 마을 사람들도 보여서 조금 반가웠어요. 꽃향기마을에 있을 땐 옆 마을만 가도 남의 동네 같았는데 멀리 라이지방까지 오니까 옆마을 정도면 다 동네 친구 같지 뭐예요.
우와아. 그러고 보니 아직 인사 못한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아. 한 반이나 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가까이에 있는 사람 얼굴 익히기도 바쁜 것 같아요. 그렇지만 곰곰이 지켜보면 다들 자신만의 색이 있어서 흥미로웠어요. 포켓몬에 익숙한 사람, 포켓몬에 서툰 사람, 사람에 익숙한 사람, 사람에 서툰 사람, 다양한 사람들과 접하면서 내가 풍부해지는 것 같았어요.
하루 만에 오길 잘했다고 느꼈어요.
참, 테리는 아주 건강해요. 지금은 볼 안에서 쿨쿨 자고 있어요. 어제는 밤늦게까지 내가 새 친구 사귀는 데 쫓아다니면서 혼자 외롭지 않게 해주었는데, 오늘은 배틀까지 해버렸으니까 피곤할 만 해요.
이왕이면 벌레 포켓몬 말고 다른 포켓몬이길 바랐는데! 그야, 수풀이니까 어쩔 수 없이 벌레가 많겠지만. 으~ 헤라크로스도 그렇고 귀뚤뚜기, 개무소, 뿔충이, 피콘까지. 꽃집의 적! ……걔네가 싫은 건 아니라구요? 그냥, 우리 꽃밭이랑 온실을 지키기 위해서 지겹도록 마주보다 보니까 그거예요. 나쁜 정이 든 거예요.
그리고 벌레 포켓몬은 풀 포켓몬이랑 상성이 나쁘잖아요. 모처럼 라이지방의 첫 배틀이니 테리 기 세워주고 싶었는데.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싸우게 해버렸어요.
물론 우리 테리는 끝까지 늠름했지만요!
배틀이 끝나고 나서는 꼬옥 안아주고 보듬어주고 뽀뽀도 해주고, 내일은 아침 일찍 해가 뜨자마자 광합성을 하러 가기로 약속도 했어요. 테리는 볼에 들어가기 전에 ‘그러니까 디모넵도 일찍 자요.’ 같은 눈을 한 것 같은데. 그래도 일기는 쓰고 자야 하지 않겠어요? 이렇게 멋진 포켓리스트도 받았는걸! 꼭 적어둬야지.
하지만 테리가 없는 밤은 쓸쓸하니까 나도 일찍 자러 갈까요. 라이지방은 아주 멀고 낯선 곳이지만, 혼자가 아니라서 든든해요.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쭉 함께 자라온 내 친구, 내 형제 테리. 네가 있어서 난 늘 외롭지 않아.
“오늘도 고마워. 잘 자.”
몬스터볼 위로 한 번 더 쪽, 뽀뽀를 하자 볼 안의 테리가 잎사귀를 흔든 것 같은 기분이에요. 그러고 보니 배틀을 싫어하는 캠프 사람도 있는 것 같았는데. ……포켓몬이 다치니까. ……조금 더, 생각해보고 싶은 문제 같기도 하고.
어쨌든 그건 내일 마저 생각해보기로 해요.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니까. 그럼, 나도 이제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