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잖아요. 느리게 덧붙여오는 말에 생각하기보다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수천이, 다시 수만이 제 머리를 잡고 내리찍으려 들었다. 그 때마다 자신은 필사적으로 목에 힘을 주고 쓰러지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발버둥을 쳤지. 제 머리를 누르는 손들에겐 한낱 버러지의 발버둥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자신은 진흙탕을 뒹굴면서도 이렇게 살지는 않겠다고, 내 삶을 택하겠다고 도망쳐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이 하는 말에 휘둘리는 건 내가 약한 탓이야?”
아직 견고해지지 못한 걸까. 사람의 정 앞에 금세 마음을 열어버리고, 누군가가 내밀어주는 손을 거절할 줄도 모른다. 나 하나의 믿음이면 충분하다고 강해지기보다 누군가 내 편을 들어주길 더 바라고 있었다. 이런 저는 나약한 걸까.
그래서 강한 당신은 수천, 수만의 타인의 평가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결정한 걸까?
이마를 두드리는 가벼운 손길을 따라 눈앞의 남자가 내뱉는 말 또한 눈송이처럼 흩날리려 한다. 부러 가볍게 사라지려는 무게를 날아가지 않게 붙잡았다. 당신은 아무래도 자신의 무게를 남기고 싶어 하지 않아 보이지만 날려버리고 싶지 않았다. 당신이 보여준 한 꺼풀의 동정을, 한 뼘의 시선을, 한 마디 공감을 전부 그러모을 셈이었다.
당신과 저는 같지 않다. 그럼에도 제 목소리를 들어주었다. 그 온정을 잊지 않고자, 아니면 나름대로 들쑤신 자의 책임 같은 것이다.
“……남의 눈을 의식한 결과는 아니랍니다.”
“하긴. 하나도 안 듣고 의식 안 할 것 같아. 그럼 디셈버 자신이 보기 싫은 걸 안 보려는 것뿐이려나.”
‘선택’할 수 있는 위치니까.
그렇다면 당신도 기구한 이야기다. 수천, 수만의 생각도 무용하다고 여길 수 있는 당신에게 유일, 간섭할 수 있는 상대가 생겨버렸던 것도, 그 상대가 살아달라는 족쇄와 같은 말을 남겨버리고 떠난 것도. 마치 꿈속을 다녀온 듯 옅은 안개 너머의 기억 속에서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설핏 보이던 당신의 말의 무게를 떠올린다.
뭐, 이거야말로 제가 간섭할 영역이 아니다. 쉿 하고 다가오던 손가락을 떠올리며 쉿, 따라 읊조리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