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스터 : 디 이노센트 제로

05) 01.08. 특별한 기대

천가유 2022. 4. 11. 21:56

For. 파피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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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던 게 그거야. 모두 에셸처럼 특별한 기분을 느끼면 좋겠네.”

씨익, 이를 드러내고 웃는 파피루스 님은 동경하던 모습 그대로여서, 저는 두 손을 기도하듯 맞잡은 채 그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는 데 온 힘을 다해야 했답니다.

 

약속한 이상 걱정할 일 없게 해야겠어.그는 그렇게 말했으나 사실 에셸은 조금도 그를 걱정하지 않았다.

에셸보다 겨우 3살 연상인 이 레인저는 채널을 돌리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TV 너머 인물이었다. 카메라가 도는 앞에서 그는 No라고 말하는 법이 없었고 어떤 위기와 역경을 앞에 두고도 , 로망이네!” 쾌활하게 웃고는 말처럼 가볍게 위기를 이겨내곤 했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멋졌지. 에셸이 그의 프로그램을 즐겨 보고 있으면 종종 질투인지 폄하인지, “저거 다 짜고 하는 거예요.” 라거나 카메라 꺼지면 성격이 완전 다르대요.” 그런 말을 하고 가는 이도 있었지만 에셸은 그 말들을 그다지 귀 담아 듣지 않았다. 알기 때문이다. 그의 여러 언행이 꾸며낸 것이 아니란 것을. TV 속 그는 절대적인 히어로였다.

꾸며낸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그를 TV 너머 인물로만 받아들이고 마는 건 에셸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신기한 이분법이었으나, 어쩌면 그게 아니고서는 저 믿기지 않는 서바이벌 활동들이 설명이 되지 않아서가 아닐까. 이 리본머리 아가씨는 겉보기와 다르게 대단히 현실주의자였기에.

누군가는 파피루스의 행보에 눈살을 찌푸리며 걱정을 하기도 했으나 에셸은 달랐다. 에셸 달링이 인지하는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 위에 파피루스는 이 땅에 뿌리내린 나무처럼 서 있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동경의 대상이었고 한 차원 더 들어가자면 반복적이고 재미없는 현실에 자극을 주는 비현실과 일탈의 상징인 그를, 에셸은 참 좋아했다.

──파피루스의 캠프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미 캠프에 첫발을 내딛은 순간부터 에셸은 특별함으로 물들었다. 과수원 때문이라도 자주 방문하던 누림마을이 영화촬영장만 같았고 풀숲을 걷다 보면 튀어나오는 야생포켓몬은 사실 어딘가에서 제작진이 안배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센터 뒤편을 빌려 캠프 일원과 겨뤄보던 배틀 시간은 그야말로 아드레날린 대분비의 순간!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이었고 현실감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현실감이 없었다.

22년을 살아오는 동안 몇 번인가 느꼈던 위화감의 연장이다. 바로 지난 밤, 또래의 청년이 들려준 진솔한 감상이 머리를 스쳤다.

제 나이대 사람들 사이에선 정말 동경하는 셀럽 중 한 사람이나 다름없어요.

무역풍을 등에 업고 두둥실 움직이던 이 아가씨는 이제껏 한 번도, . 이 말을 지금 꺼내기엔 이르다. 이 부분은 리테이크 할까? 에셸은 틀림없이 자신의 인생의 주인공이지만 남의 인생의 지면까지 차지하고 싶은 욕망은 없다.

다시 이어가보면 결국엔 특별함을 누리는 이야기다. 비록 이 캠프를 마칠 즈음 에셸이 원치 않은 계약을 이행하러 온실에서 온실로 자리를 옮길지, 혹은 그를 따라 새로운 진로를 발견하고 레인저로 각성할지 어쩌면 챔피언로드라도 가게 될지 세계를 방방곡곡 돌아다니게 될지는 알 수 없었으나 무엇을 택하든, 에셸 달링의 배는 행복을 싣고 움직이게 됨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기대와 확신은 언제나 그의 힘이었다.


우리 멋진 인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