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광식
사람은 경험이 만든다. 경험이 바로 사람을 다르게 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말은 자신의 경험에 의거했다. 에셸과 광식은 태어난 환경이 달랐고 주어진 조건이 달랐으며 성장해온 길이 달랐다. 포켓몬이든 인간이든 다치지 좀 말라는 당신의 말은 어떤 길을 따라 나온 것일까, 코주부 안경.
아가씨의 길을 말하자면 사시사철 봄날처럼 안전하고 돌과 자갈을 골라낸 부드러운 흙길에 비유할 수 있다. 배워온 지식을 바탕으로 해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길이 있어 어딘가에는 가시밭길이, 어딘가에는 달궈진 쇠로 된 길이, 어딘가에는 꽁꽁 언 빙판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겪어본 적 없는 지식은 때론 과장되게 부풀리고 때론 한없이 축소시킨다. 그의 머리에 남은 건 빙판길도 가시밭길도 뜨거운 쇳길도 이겨내던 TV 너머 사람들의 모습뿐이다. ──이래서 역사는 성공한 자들이 쓴다고 하던가.
다행히 이 아가씨는 아둔한 성정은 아니었다. 비록 코주부 안경의 렌즈 너머가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아버지는 늘 대화를 할 때는 눈을 보고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았다. 평소의 에셸이었다면 이쯤에서 순순히 그의 충고를 듣고 말을 철회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물러나기엔 저를 마뜩찮아 하는 상대에게서 보다 내밀한 감정을 느꼈다.
철두철미하다기보다 주저하고 물러선다. 안전한 극복을 위해 대비하는 것조차 꺼리는 것 같았다. 극복에는 직면이라는 과정을 수반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극복하지 않아도 좋아. 위험은 전부 비껴가자. 비껴갈 수 없다면 차라리 발길을 돌려. 봐, 이 안락의자가 얼마나 평화롭고 아늑한지.
내게 나의 경험이 있다면, 그래서 망가진 브레이크 위에 서 있다면. 당신은 어떤 경험을 하고 철로에 올라서지조차 않는 걸까. 우리는 서로의 이면을 뒤집는다.
“무모함과 과감함을 가르는 경계란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이마를 찔러오는 손길 앞에서 에셸은 한층 더 해사한 미소를 보였다. 관성의 법칙을 아시나요? 아주 기초적인 법칙 하나를 속삭이며 후, 손가락 끝으로 입바람을 불었다. 그의 공을 움직여보고 싶었다. 무역풍을 따라 움직이는 아가씨의 버릇이다. 움직여라, 움직여. 기회를 놓치지 말고, 바람을 타고.
“아무리 바람이 분다 한들, 처음 한 발은 스스로 움직여야만 해요.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아요. 무엇도 얻을 수 없어요.”
때론 손해를 감수해서라도요.
손익보고서를 작성하다보면 뒤늦게 아차, 이마를 두드릴 때가 있다. 우리는 미래예지의 기술 같은 건 없으며 바다 날씨란 변덕스러워 만약 이 때 이랬더라면. 그렇게 지나간 과거를 곱씹고 후회하기를 매 분기 반복한다. 세상의 법칙이란 기묘해서 가끔은 뻔히 보이는 실패가 후일의 성공이 되기도 하고 100%를 확신한 성공을 비웃듯 사소한 것 하나로 뒤틀려 실패하기도 했다. 에셸은 천운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았으나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 없음은 인정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때로는 무작정 다리를 움직여보자고 생각한다. 실패와 손해를 계산하지 않고 도전해보는 게 챌린저, 이 캠프에 모인 자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닌가? 이럴 때 과감함이 필요하다고, 말과 달리 썩 과감하지 못한 사업가가 역설한다. 처음 시작은 갸라도스의 분노를 맨몸으로 받아낼 수 있느냐, 그 얼토당토지 않은 화제로부터 비롯되었으나 어느덧 화제는 한참 옮겨져 있었다.
“광식 씨는 이미 한 걸음 내딛으셨지만요. 이 캠프에 스스로 옴으로써. 그런데도 아직 등을 밀어줄 바람이 부족하다면…… 달링, 당신의 등을 떠밀어줄 손 하나를 보내드릴까요?”
장갑 낀 손이 살랑살랑 흔들린다. 셸링 포인트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대화를 하기엔 지금이 베스트 타이밍이었다.
러닝 시작하자마자 오너님이랑 가오대결 하듯이 몇 시간 간격으로 주고 받았던 로그들. 광식아 우리 친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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