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으로 돌아온 에셸은 PC를 꺼내 바쁘게 타자를 두드렸다. 일요일은 배가 들어오는 날이었다. 오늘 안에 입항 후의 업무지시서를 전달하지 않으면 일의 진척이 더뎌질 것이다. 에셸이 일하는 모습이 익숙한 위키링은 스탠드 옆에서 에셸을 위한 또 하나의 조명이 되어주었다. 전자파 차단 안경을 꾹 누르며 에셸은 그런 자신의 파트너를 가볍게 콕 찔렀다.
방 바깥은 밤이 깊도록 떠들썩했다. 이 캠프는 여기서 처음 만났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모두 사이가 좋았다. 위키링, 나가서 놀고 싶진 않아요? 물음에 작은 불켜미가 날 뭘로 보냐는 듯 푸르르, 웃는다.
“저는 나가서 놀고 싶은데.”
헙, 놀란 표정을 하는 파트너를 두고 에셸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너무 잘 알았다. 그야 자기가 키운 자식을 모를 리야 있겠냐만은, 「캠프에 참여하는 동안에도 본업에 소홀하지 말 것」. 고향 땅의 캠프에 참여하는 조건 중 하나였다. 이런 조건이라도 걸지 않았다간 금세 푹 빠져버렸겠지. 포켓몬과 모험에 빠진 그를 어머니는 결코 예쁘게 보지 않았을 테고. 출발하기 전날까지도 마뜩찮은 얼굴을 하던 모친을 떠올리고 에구, 듣는 이도 없는 곳에서 에셸은 앓는 소리를 냈다.
업무지시서를 작성하는 동안에도 머리 한켠에는 요 며칠간의 수많은 자극들이 지나갔다. 캠프에 모인 각양각색의 사람들, 그들이 몰고 온 색색의 바람. 파트너와 함께 떠난 첫 탐험, 그리고 캠프 사람들과 절차탁마하는 시간.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세상에 이렇게 즐거운 일이 있다니. 이제껏 그는 얼마나 긴 시간, 손해를 봐왔던 걸까. 습관처럼 왼손이 오른손을 덮었다.
──일부러 다니지 않은 것도 아니었지만.
“이번 캠프가 잘 끝나면 다른 지방으로도 가보고 싶네요. 그렇죠?”
위키링이 말랑한 손을 들어 긍정한다. 어느 날, 그에게 먼저 찾아와준 이 작은 촛불은 에셸의 밤이 캄캄한 일 없도록 지켜주는 소중한 친구였다. 보라색으로 흔들리는 빛이 귀한 길잡이였다.
“그러고 보니……”
이 아이도 언젠가 진화하겠지? 불켜미의 진화는 무엇이었더라. 거기까지 생각하던 에셸은 PC 대신 작은 메모장을 꺼내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오팔이 진화하던 순간, 안네는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심랑 씨는 주리비얀과 앞으로 어떻게 보내게 될까. 자귀마을에 가면 옷을 갈아입는 게 좋을까. 마이아 씨에게 추천을 받아 봐도. 요리를 좋아하던 분들이 많아 보이던데, 다음엔 함께 요리하면 좋겠다. 내일의 배틀 상대는…… 꼬리에 꼬리를 물던 생각은 메모장을 꽉 채우도록 캠프 사람 한 명, 한 명에 대한 관찰일지가 되어갔다. 잉크가 툭, 튀고서야 딴 짓에 빠진 걸 깨닫고 펜 끝을 꾹 깨물었다.
학창 시절에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사춘기 소녀가 따로 없다. 이게 무슨 낭패인지.
“일이 손에 안 잡혀서 큰일이에요~”
안 되겠다. 양 볼을 챱챱 때린 에셸은 찻잎을 듬뿍 넣어 우유를 끓였다. 오늘은 기필코 철야다. 일을 마치기 전까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리.
「아무리 바빠도 철야는 하지 말고. 너는 고집불통인 면이 있으니, 또 시키지도 않은 무리를 하지 않니.」 어머니에게 메일이 와 있던 건 일을 다 마친 끝에야 알아차렸다. 읽음 표시를 지운 에셸은 워치로 이마를 꾹 누르며 답을 고민했다. 이러니 집을 나오고도 모친의 손바닥 위를 벗어날 줄 모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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