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효과,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며 수면을 도와줘요. 또 새콤함이 기분을 개게 해줄 거예요.」
찻잎을 유리병에 채워 넣고 그 옆에 메모를 같이 적는다. 직접 타주면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마음이 불안해져서 한 행동이었다.
그야 그럴 만도 하지.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같은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이 갑자기 반으로 갈라져, 서로에게 지팡이를 겨누고, 옆에 있던 사람이 쓰러져 더는 볼 수 없게 된다거나. ……아주 두렵고, 무서운 일이었다. 잠에서 깨어나도 깨지 않는 악몽에 갇힌 듯한 기분이었다. 모두가 웃는 척하며 웃지 않았다. 혹은 웃으면서 가시를 세웠다.
견디기 괴로운 분위기 속에서, 그는 그럼에도 변함없이 상냥했던 사람이다. 달라진 길을 사이에 두고도 필요로 한다고, 곁에 있어도 된다고 다정하게 말해주었다. 그의 그 말이 제 죄책감을 부추기는 한편으론 눈을 감고 모르는 척 그를 붙잡아도 된다고 마음의 다른 편에서 속삭임이 들렸다.
이러다 내일은 그에게 지팡이를 겨눠야 하면 어쩌지. 그를 상처주면 어쩌지. 그에게, ──미움 받으면 어쩌지.하는 고민.
미움 받아 마땅한 짓을 하고 있다는 건 스스로가 가장 잘 알았다. 그러니까 더 미움 받지 않으려고 애썼다. 영악한 행동이었다. 이러면 미워하지 않을까. 내치지 않을까.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질 줄 모르고 떳떳하게 굴지도 못하던 나약하고 형편없는 작은 뱀.
이런 뱀을 안아주던 상냥한 오빠 뱀.
그의 상냥함에 얼마나 의지하고, 다정함에 매달렸던지. 짤막하게 적은 메모를 접어놓고 조심스럽게 목도리 안쪽의 목걸이를 꺼냈다. 사실은 꺼내 볼 용기조차 나지 않았던 것을 겨우 마주하여 둥근 로켓을 반으로 열자 한쪽엔 자신의 탄생화를 압화가, 반대쪽엔……깨진 금작화의 압화 펜던트가 있었다. 빈 조각은 어디로 갔는지. 한참 반쪽 난 그것을 만지작거리다 로켓에 이마를 댄 채 눈을 감았다.
“내 오빠는, 말이죠. 이제 만나지 못할 곳으로… 가버렸어요.”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건 너무 어려워, 입술을 깊이 깨물며 우물거린다. 외면하고 싶고 마주하지 않으려 하던 또 다른 진실이, 악몽의 실체가 거기 있었다. 뚜껑을 닫은 목걸이를 다시 품에 넣고 대신 인형을 힘껏 껴안는다.
“나는, 기댈 사람이…… 필요했어요. 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힘내지 않아도 좋아요. 곁에 있어줄 사람이, 나를 안아줄, 사람이…….”
함께하던 티타임, 난로 앞에서 나누던 온기, 새콤달콤한 젤리, 그가 주던 많은 간식들.
“그로버 오빠를 친오빠 대신이라거나,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요. 다만 그저, 나와 함께 살고 싶다고 해준 말이 기뻤어요. 그러니까 나도, ……부끄러운, 모습이지만 그럼에도, 살아보려고. 견뎌내면, 무언가 달라질 수… 있을까 하고.”
새끼손가락, 그 이상으로 퍼지던 온기를 떠올리며 제 두 손을 간절히 맞잡는다.
“솔직히 자신은, 없어요. 무서워요. 전장이…… 내 앞에 서는 사람들이, 그 사람들에게 지팡이를 겨누는 내가, ──그래도, 부끄러운 내일, 이라도…… 맞이하려고 애쓸게요. 그러니까 부디, 그로버 오빠도 무사해주세요.”
메모와 병을 곱게 묶는다. 이건 역시 이따 직접 전해주어야지. 슬슬, 움직일 시간이었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도, 끊임없이 생각하고 마는, 악몽보다 더 깊숙한 악몽으로 걸어갈 시간. 어제를 반복할 수 없다면 밝아진 내일이라도 맞이하기 위해.
“……새벽에 다시 만나요.”
우리의 갈라진 길이 조금 더 멀어지게 되었어요. 같은 빛을 맞이하기엔 길이 많이 달랐던 모양이에요. 약속,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요. 그래도, 어떤 차인지는 가르쳐줬으니까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말아줄래요…?
내가 아직, 오빠라고 불러도 될까요.
오빠가 나를 안아준 만큼, 나도 오빠를 더 많이 안아주고 싶었는데.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이곳에서 계속 들려줄게요. 닿지 않아도 안아줄게요. 그러니까 그로버 오빠는, 그곳에서 계속 괜찮은 채 있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