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말이죠. 만약에, 내가, 왕의 곁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거든, 이걸 대신 곁에 두어줄래요? ……보고 싶어서요. 당신이 약속한 따뜻한 어둠을, 어둠속에서도 나아갈 수 있는 다정한 빛을.
나약한 요구라고 생각하면 버려도 괜찮아요.」
───목걸이를 풀어 로켓을 연다. 안쪽에는 깨진 금작화의 압화 펜던트가 한쪽, 뷰글라스의 압화 펜던트가 한쪽을 채우고 있었다. 그 중 금작화 조각은 빼내어 주머니에 넣고 한쪽을 비운 로켓을 닫아 편지와 함께 봉투에 넣었다. 유서, 라기엔 애매한, 하지만 메시지가 담긴 무언가였다.
「그대는 어둠을 두려워하나요?」
눈을 마주쳐오던 그의 모습을 떠올린다. 어둔 밤 위에 하얗게 부서져 내릴 것 같은 백발, 달을 담아 유하게 휘는 눈동자, 언제나 온화한 표정이지만 이상하게도 힘이 느껴져 그 앞에선 쉽게 눈을 돌리는 것도, 그렇다고 마주하고 있는 것도 힘들었지. 응시하고 있으면 빨려들 것 같았고 피하기엔 허락받지 않은 일을 하는 것 같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결국 눈꺼풀을 닫는 척 시선을 피하길 몇 번.
「네. 어둠이, 악몽이, 자꾸만 발목을 잡아서. 나를, 삼키려 해서.」
깨어나면 잊어버린단 말은 거짓말. 사실은 전부 기억하고 있다. 너는 생각할 필요 없다. 가문을 위한 말이 되어라. 한 번도 웃는 일이 없던 할아버지와 순종적이고 착한 아이가 되라며 머리를 쓰다듬던 아버지. 그런 두 사람의 방파제가 되어 너는 네 발로 걸을 수 있는 아이라고 등을 두드려주던 오빠. 세 사람 사이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유부단하던 그녀.
균형은 오빠가 죽으며 무너졌다. 그 때부터 악몽이 시작되었다. 그녀를 잡아먹으려드는 어둠의 정체는 무엇일까. 잘못된 길을 가선 안 된다고 꾸짖는 오빠? 순종하라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무기력하고 유약한 스스로를 향한 조소? 어쩌면 그 전부.
쏟아지는 의무와 책임이 버거워 그녀는 비겁하게도, 스스로 책임지지 않는 길을 택했다.
생각하지 않는 말.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그른지 판단을 포기하고 선택은 남에게 미루고, 나를 움직이는 이에게 나 자신까지 넘겨버린 채 제 안으로 웅크린다.
스스로 가장 빛나는 곳까지 오르려는 그와는 정말로, 극단에 서 있는 것과 같았지. 빛나려는 그와 어둠에 잠기는 자신, 가장 높이 오르는 그와 가장 낮은 곳으로 가라앉는 자신. ……동경하였을까. 저 역시 그 빛에 이끌려 매료되었을까.
빛을 찾아 고개를 들면서도 그에게 이끌려가지 못했던 것은 스스로가 부족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의 곁에 서는 게 제 흠이 될까 두려워. 그리고── 그를 다 알지 못해서. 퀴디치는 즐거웠는지, 언젠가 한 번 보여 달라고 하고 싶었는데. 손의 상처는 어쩐 건지, 볼 때마다 반창고가 늘어가는 것만 같아. 허브티는 좋아할까, 밤이면 마주하면서도 한 번 대접하지 못해서.
그를 이해하고 싶었던 것 같다. 완벽하고자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몰아세우면서도 타인에게는 완전히 모질어지지 못한 사람. 여명을 두고 절망이라 말하던, 밤의 사람. 좀 더 듣고, 알고, 이해하고, 그렇게 해서 온전히…… 그를 섬길 수 있도록.
그녀의 의지로.
“나의 왕, 내 달님.”
이름을 불러주었다. 생각을 물어봐주었지. 답하지 못했다. 후회하느냐? 글쎄,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뒤로 미뤄둔 것일지도 모르지. 아무것도 듣지 않으려 했고 보지 않으려 했다. 느끼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생각을 죽이고 싶었다.
어쩌면 반대로, 생각이 너무나 많아서 무거웠던지도 모르겠다. 골몰한 나머지 움직이는 법을 잊어버려, 옴짝달싹할 수 없었던가.
이런 그녀를 두고 그는 이유가 되어주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생각, 해보려 해요. 내 악몽도, 두려움도 거둬가 대신에 빛으로 채워주겠다 말한 사람. 다른 생각은 지우고, 오직 당신만을 생각해보려 해요. 총명하고 상냥한 달님, 내 의사로, 의지로, 당신을…… 쫓도록.”
당신의 자랑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버렸던지도 모르겠다.
“……내가 욕심내는 걸 허락해줄까요.”
눈을 감으면 어둠이 있었다. 눈을 떠도 어둠이 있었다. 잠에 들면 악몽을 보았다. 잠에서 깨어나도 악몽이었다. 어둠에 잠겨들 것만 같았지. 빛에서 멀어져, 외톨이로 스러지는 미래를 보았다. 그게 저에겐 합당하다고 몰래 생각했었나.
생각했었지만, 조금 다른, 미래가…… 떠올라버렸다.
“언제나 시간이 여기서 멈춰버리길, 더 나빠지기 전에 멈춰버리길 바랐는데…… 오늘은 어서 이 무서운 시간이 끝나길, 바라요. 오늘치의 악몽이 끝나고, 달이 떠오르면 당신에게 가서, 들려주고 싶어요.”
역시 편지는 괜한 것이다. 이런 거 쓴 걸 들켰다간 실망만 더 시킬지도 몰라. 서랍을 열어 봉인한 편지 봉투를 넣어놓고 그만 계단을 오르기로 한다.
어서 이 밤이 걷히고 바닥까지 드리운 어둠에 당신의 빛이 내리쬐길. 당신의 빛이 나를 어둠에서 건져내주길.
……아파, 요. 몸도, ……마음도. 이렇게 아픈 거네요.
「다치지 말아 줘요. 이제는 내 사람이잖아, 응?」
당신의 말을 무엇 하나 지키지 못한 것 같아. 결국 나는 실망만 시킨 게 아닐까. 흠밖에 되지 못한 건 아닐까.
「더, 더 버틸 순 없었나요? 버티면 안 돼?」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정말로──, 마지막까지 당신의 자랑은 될 수 없던 말이라, ……미안해요.
「나 아직 잃기 싫어요.」
……나도요.
「그대 밤에 뜨는 달이 될게요.」
당신이라면 그래주겠죠. 믿고 있어요.
「그대의 이유가 되어주고 싶었는데.」
어둠속에서 빛나는 건 달 뿐이라고 했어요. 반짝반짝 빛나는 달님, 충분히…… 이유가 되어주었어요.
「편히, …쉬어요. 그 곳에서는.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누리면서 살아요. 어디서나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여요. 그대는 그래도 되는 사람이야. ……마지막까지, 용감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먼저 편해지려 해서 미안해요. 하나도 용감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사실은, 또 도망쳤을 뿐이에요. 더 이상 싸워도 되지 않는, 영영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그런데 이상하죠. 왜 후회가 들까요. 그 때 조금만 더, 노력했더라면. 도망치지 않았더라면, ……모두를 슬프게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나도 슬프지 않을 수 있었을까. ……너무 늦었어요.
───사실은 말이죠. 나도 당신의 힘이 되어주고 싶었어요. 당신은 강한 왕이지만, 때론 지쳐 보일 때가 있어서, 안아주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