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 같던 아이의 모습을 기억한다. 아카데미에 들어오고 난 뒤 아인델은 곧잘 검게 웅크린 인영을 보았다. 챙 후이위. 삐죽삐죽 짧게 뻗친 머리가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이 두려워 가시를 세우던 제 모양새와 잘 어울린다 생각했다.
겁 많고 경계심 많은, 그러면서도 사람을 싫어하진 않던 아이였다. 힐끔힐끔 사람들이 오가는 걸 살폈고 때론 자기가 먼저 입을 열기도 했다. 그러다 제가 낸 소리에 화들짝 놀라기라도 한 것처럼 마지막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애매모호하게 말꼬리를 늘렸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어?
어째서 말을 끝까지 하지 않아?
아인델은 자신의 실력에는 자기객관화가 잘 되어 있지만 태도에는 그렇지 못했다. 제 말투가 고압적이라거나 추궁하는 것 같단 자각이 없이 무구하게, 그만큼 또렷하고 깨끗한 목소리를 내곤 했다. 아이가 저의 말투에 어깨를 움찔이고 사과부터 해오는 것은 그러니 당연한 수순과 같았다.
그럼에도 챙은 도망가지 않았다. 아인델의 요구에 맞춰 문장의 마침표를 맺어주었다.
기특하지. 끙끙거리면서도 노력하는 강아지와 같은 모습에 손이 뻗어졌다. 노력에는 칭찬을, 성과에는 보상을. 그것이 그녀의 철학이었다.
‘이번엔 무엇으로 보상을 주어야 할까.’
열차 안의 시간은 지루하게 흘러갔다. 하릴없이 복도를 돌아다니다 아이들과 하잘것없는 대화를 나누는 게 전부였다. 그 하잘것없이 시작한 대화가 흥미로운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때문에 괜찮은 수확이었다.
“눈치를 볼 것 없단다. 꽃을 피워내기 위해선 토양과 햇빛, 물이 필요한 것처럼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에는 내 배경과 환경이 있어. 물론 나 자신의 능력도 있지만.”
그것을 너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하는구나. 그러나 후이위, 다른 것과 틀린 것에는 차이가 있어. 너는 틀리지 않았어. 네가 조금 더 네 자신을 받아들이고 좋으련만.
아인델은 금을 밟지 않는 일에 능숙했다. 스스로 존중받는 만큼 타인을 존중할 것. 그것이 상대의 삶의 방식이라면 제 잣대로 평가하지 말 것. 그에게 ‘나처럼 되어라.’, ‘지금보다 노력해라.’ 그 말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었다. 다만──,
“나처럼 되지 않아도 돼. 너는 네 방식이 있어. 그렇지만, 앞서도 말했듯이 네가 스스로 지금과 달라지고자 한다면, 스스로 변하고 싶다면 그런 너를 지지할 거란다.”
바로 내가,
아인델 아라크네가,
네 등을 떠밀어줄 거야.
사과하지 않기로 노력하겠다는 그 말에 아인델은 한 번 더 치켜떴던 눈꼬리를 부드럽게 누그러트렸다. 잘하고 있어. 시선이 그렇게 말하다가 이어 괴롭게 일그러지는 표정을 물끄러미 응시한다.
내가 그 이야기에 발을 들여도 될까. 가늠하듯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대화하는 상대가… 기분이 나쁘지 않았으면 해요.」
벼룩, 새, 사람, 전혀 다른 세 생물에게 닮은 점이 있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만큼의 환경에서 도약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 번 깨달은 환경의 한계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하게 만든 경험이 있다. 아마도 상처가 되었을 이야기다.
그런 네게 어떤 것을 해줄 수 있을까.
입가를 두드리며 생각에 잠긴다. 아이의 표정은 무언가 큰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일그러진 채였다. 익숙한 표정이었다. 그랬기에 네 다른 표정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네가 바라지 않으면 나는 나서지 않아.
턱을 괴던 손을 풀어 손바닥을 보인다. 아무것도 놓이지 않은 흰 손바닥을 앞으로 뻗었다.
“괴로운 경험에서 벗어나고 싶니? 그렇다면 원하는 것을 말하렴. 너의 말이 나를 움직일 거란다.”
흰 것과 검은 것 사이로 금색의 금이 있다. 금 위로 흰 것이 뻗어졌다. 선택은 검은 것에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