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때때로 효율적인 듯 의미 없는 일을 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 억지를 부리기도 한다. 별 차이도 없는 네 글자를 두 글자로 줄이거나, 정오를 지난 시간을 두고 아침이라고 고집을 부리거나.
“그치만 좋오는 이상하잖아요~”
“좋은 오후란 표현도 있지 않니.”
아인델은 상당히 자기중심적이고 짐짓 옳은 건 저뿐이라는 듯 대단한 체 굴기도 잘 하지만 인간사회의 규율과 범주를 충실히 지키는 편에 속했다. 다시 말해 아이들 사회 속에 녹아들기 위해 비효율적이고 무의미한 일에 맞추거나 억지를 따라주거나. ───그다지 표는 나지 않더라도.
그렇지만 사비아 오스트레아투스의 말은 정말이지 어떻게 읽어내야 할지 어려웠다.
“은근슬쩍 아인델에게 좋아~라고 하고 싶었거든요.”
네가 왜 나를 좋아하지? 왜 그걸 말하고 싶지? 어째서 은근슬쩍일 필요가 있지? 아주 많은 것에 납득과 이해를 필요로 했다.
──그러나 굳이 설명해줄 필요는 없었다. 아인델을 납득시켜줄 필요도. 그럼에도 아인델을 앞에 세운 채 생각하고 말을 고르고 전하고, 그 모든 수고를 들인 것이 바로 사비아 오스트레아투스가 말하는 좋아하고 필요로 하는 것, 아주 작은, 최소한의 『관심』
그녀를 기억한다. 아인델이 기억하는 사비아의 이미지는 ‘어디에든 나타나는 아이’, ‘모두에게 친절을 베푸는 아이’, ‘상대를 감쌀 줄 아는 아이’, 세간에서 말하는 포용적인 가이드의 이미지 그 자체라 해도 좋았다.
그래서,
아인델은 그녀가 보내오는 친절이나 다정이 기껍지 않았다.
호의를 받는 것은 익숙하다. 이제껏 그녀는 사람들 사이의 중심이었고 선망 받았고 사랑받았다. 단순히 아스테반이란 그녀의 배경을 보고 온 접근이라 하더라도 주어지는 호의는 그녀 삶에 있어 당연했다.
당연했던 것이 센티넬의 낙인이 찍힘과 동시에 뒤집혔다. 아스테반이기 이전에 센티넬이 되었다. 태어나 처음 받는 시선에, 태도에 아인델은 제법 자존심이 상했다. 그러나 굽힐 필요는 없었다. 그렇다면 아스테반이 아닌, 센티넬이 아닌 나를 보게 하겠어. 나는 아라크네. 아라크네 아인델이야.
사비아의 호의는 바로 그런 아인델의 노력과 의지를 무색하게 한다. 그래서 기껍지 않았다.
여기까지가 생각의 꼬리다. 상대를 앞에 세워두고 홀로 상념에 잠기고 말았다. 무구하게 웃는 얼굴을 보고 있으면 혼자만의 생각으로 가시를 세우는 것도 마땅찮아진다. 한숨을 내쉬고 뺨에 붙은 머리카락을 가볍게 넘긴다. 따라 웃지 않은 것은 그녀가 아인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몹시 성공적이 되었구나. 네가 어째서 그렇게까지 상대의 관심을 원하는지 궁금해졌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