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점심도 저녁도 요리 교실이에요. 가방 안에서 주섬주섬 앞치마를 꺼내고 빵모자 대신 조리모를 쓰고 테리와 테비와 함께 조리대 앞에 서보았어요. 점심에는 다 같이 만들었지만 저녁은 아무래도 다들 탐험으로 바쁜 것 같아서 말이죠. 그리고 끝나고 와서 먹을 사람도 있을 테니까 이번엔 간단하게 내 몫이랑 쟈키 씨 몫을 만들기로 했어요.
쟈키 씨는 눈색도 머리색도 말하는 것도 재미난 사람이에요. 무척 예쁘고 또 먹보인 미뇽을 데리고 있는ー그 사이에 새 친구가 둘 더 는 것 같아요─사람인데요. 말투는 되게 퉁명스럽고 틱틱대는 것 같은데 사실은 되게 사려 깊고 상냥한 사람이에요. 엄청 툴툴대면서도 결국 엄청 달달하고 맛있는 핫초콜릿도 만들어줬거든요.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제 사소한 잡담까지도 얼마나 다 꼼꼼하게 들어주고 일일이 대꾸해주는지. 저는 너무 수다쟁이라서 아빠도 포기한 사람이었는데 쟈키 씨는 어제오늘 그걸 다 듣고 있었다니까요? 대단해라. 아닌 척 하면서도 포켓몬을 귀여워하는 점도 쟈키 씨의 좋은 점 중 하나예요. 쟈키 씨의 미뇽 말이죠. 관리를 아주 잘 받았는지 통통하고 매끌매끌하고 피부에서 윤이 나고, 사랑받고 자랐다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었어요. 테리도 쟈키 씨가 자길 귀여워해주는 걸 아니까 그렇게 배운 적도 없는 뽐내기를 막 쓰잖아요.
그래서 저랑 오래도록 어울려준 보답으로 이번에 쟈키 씨에게 식사대접을 하기로 했어요. 저번에 겨우 컵라면 하나만 먹고 가는 게 걱정되기도 했고 자기 영양분을 소홀히 하는 것 같은 말투에 저는 그만! ……으음, 괜한 참견은 아니었으려나. 하지만 모든 사람의 정은 밥 한 그릇에서 나온다고도 하잖아요. 이건 옆집 칠리네 아주머니 필리아 씨의 말이에요. 아, 필리아 씨는 누구냐면 말이죠. 마찬가지로 꽃집을 하는 이웃사촌인데 언제나 손이 커서 하지만 그 집은 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아이가 셋, 이미 아홉 식구네요. 거기에 가끔 우리 몫까지도 만들어줘서 거대한 냄비를 쓰곤 하는데 그게 얼마나 멋져 보이던지.
……핫, 이야기가 또 이상한 데로 샜네요. 그래서,
“오늘 메뉴는 뭐가 좋을까. 테리. 낮에는 얼큰한 칼국수로 했으니까 밤에는 스테미너가 풍부한 음식으로 해볼까?”
그럼 재료부터 준비해보도록 할게요. 우선 소고기는 사태 부위로 가져와 먹기 좋은 크기로 네모나게 잘라주고요. 토마토는 직접 다 까서 준비하기 힘드니까 통조림을 가져와요. 양파랑 당근, 감자,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채소를 더 넣어도 좋겠네요. 저는 여기에 감자는 자색감자로 그리고 브로콜리와 양송이버섯을 추가해서 색을 다채롭게 해볼게요.
비프스튜에는 레드와인을 넣어 색도 입히고 고기를 부드럽게 해주어야 한다는데, 마을 상점에서 요리에 쓸 거라고 했더니 딱 한 컵 주셨어요, 헤헤.
“우와아, 테리. 이거 봐. 냄새 좋다. 와인은 과일로 만든대. 알고 있어?”
우리 테리의 열매로도 담글 수 있는 걸까? 고기를 재워놓고 월계수 잎과 다진 마늘, 소금, 후추, 그리고 약간의 설탕도 넣고 이것저것 그것 해서 냄비에 넣어 푸욱 끓이기 시작했어요. 스튜란 말이죠. 모름지기 아주아주 오래 팔팔 노곤노곤 흐물흐물 해질 때까지 끓이는 거예요. 3시간이고 4시간이고 5시간이고 6시간이고, 오래 익힐수록 깊어지는 것이야말로 스튜인 거죠.
냄비를 앞에 두고 불길을 보고 있자니 어깨의 힘이 스르륵 풀리는 기분이었어요. 저는 어제 받고 남은 마시멜로 위에 감자칩을 붙여서 불에 살살 구워 먹었어요. 이렇게 하면 단짠단짠이라는 걸 아시나요? 정말 완벽한 조합이죠. 다음엔 쟈키 씨에게도 권해줘야겠어요. 그렇게 혼자 이런저런 사색에 잠기고 있으려니 냄비 안이 꽤나 졸아들었더라고요. 한 번 간을 보면,
흐음.
늘 이상하단 말이죠. 왜 내가 만든 요리는 내가 간을 볼 때마다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것 같지? 테리는 제가 만든 포핀을 별로 안 좋아해요. 제가 포켓몬 요리의 간을 볼 수야 없지만 그래도 한 귀퉁이 먹어보면 무슨 포핀을 만들어도 다 맛이 비슷비슷한 것 같더라고요. 쓰지도 달지도 맵지도 시지도 않은 밍숭맹숭한 맛.
“내 손은 마법의 손인가봐, 테리.”
테리가 또 헛소리 한다는 표정을 지었어요. 저는 에잇, 하고 못된 표정을 지은 테리의 잎사귀를 조금 떼어내 스튜의 위에 장식했어요. 이따 위에 후추라도 왕창 쳐야지. 자극적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