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어요. 아직 밝지는 않았지만요 정확히 표현을 하자면 헌 해가 저물고 지금은 새로 시작하는 해가 떠오르길 기다리는 밤이네요. 이 밤이 지나고 나면 어쩐지 무슨 일이든 잘 풀리고 잘 해낼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과 확신에 차오르는 새해 버프 바겐세일인 거죠. 무려 3일간 특가! 같은 느낌으로요.
저도 그런 기분으로 한참을, 한참을 포켓리스트에 저장된 두 글자 이름을 바라보고 머뭇거렸어요. 이 이름을 향해 전화를 걸까 말까.
『엄마』
그 두 글자가 말이죠. 저는 세상에서 제일 어렵고 긴 것처럼 느껴져요. 예전에는 심술이 나서 엄마 대신 ‘달리아 씨’라고 저장한 적도 있었는데 그래봤자 엄마는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아서 그만뒀어요. 그보다 아빠가 발견하면 슬퍼할 테니까요.
……오늘 있잖아요. 린 씨가, 아 린 씨는 마키타 린 씨예요. 성도지방에서 온 또래 친구예요. 귀여운 모자를 쓰고 니로우를 데리고 다니는 친구인데요. 저랑 동갑인데도 굉장히 똑 부러지고 벌써 셈에 밝은 친구인데요.
린 씨가 저에게 끈끈하고 편한 친구가 되고 싶다고 해줬어요. 저는 이미 린 씨를 끈끈하고 편한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린 씨는 어디서 거리감을 느꼈던 걸까요? 그러다 아, 깨달은 거예요.
「저 디모넵이랑 이름도 편하게 부르고 서로 말도 편하게 하고 싶어서 기회보고 있었어요.」
“린, 안녕. ……린. 안녕.”
이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입이 떨어지지 않던 걸까요. 아주 어릴 적에는 한 서너 살 즈음? 그 때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 보면 어느 순간 이런 말투를 쓰게 되었던 것 같아요. 어느 순간이었느냐면,
「다녀오셨어요, 엄마!」
「오랜만이군요, 디모넵 씨.」
「…….」
──쿠웅.
깨닫고 나니까 충격적인 거 있죠. 무의식이란 아주 무서운 거예요. 어째서 엄마를 따라하게 되었던 걸까요. 따라하고 싶었던 걸까요. 닮고 싶어서? 그렇게 하면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잘 모르겠어요. 어느 게 답인지. 이미 답을 찾기엔 한참 한참 먼 길을 돌아버린 느낌이거든요. 엄마를 이해하기에도. 저를 찾기에도.
“큐웃.”
“테리.”
품안에 테리를 꼬옥 끌어안고 있으려니 테비도 머리 위에서 부리를 콕콕 움직여줬어요. 테마리는 아직 낯을 가리는 것 같았지만. ──으음, 저거 낯가리는 걸까?
“쒹. 쒹.”
나한테 잡힌 걸 인정할 수 없어서 오기부리는 건 아닐까? 그렇게 억울해할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얘들아, 나중에 새 친구를 부탁할게. 테비의 부리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리자 두 마리가 사이좋게 고개를 끄덕여주었어요.
아무튼 포켓몬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니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도 같았어요. 엄마는 포켓몬에 정신이 팔려서 집에도 안 오는데, 정작 그 포켓몬들에게 위로를 받는다고 생각하니 오묘한 기분이었지만요.
자고 일어나면 기분이 나아져 있겠죠. 그러면 아빠에게 전화해서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인사해주어야겠어요. 새 친구들을 잔뜩 사귄 이야기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