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덴
처음은 호기심이었다. 어딘가의 풍속 소설에나 실릴법한 상투적인 표현이었으나 우리 관계의 첫 단추를 꿰기에는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적절한 무게였다. 거듭 말하자면 처음은 가벼운 호기심이었다.
아카데미에 들어와 느낀 첫 감상은 그간의 제 세계는 우물 안처럼 좁았다는 것이며 두 번째 감상은 우물 밖에는 제게 없으며 앞으로도 가지지 못할 것을 가진 이들이 차고 넘친다는 것이었다. 그 중 하나가 너였다, 에덴.
광부의 아이,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자, 가진 것 없어 탐욕스럽고 그것을 숨기지도 않는 눈, 그러나 새하얀 눈. 어떻게 그 눈을 갖고 태어났나요? 솔직한 이야기를 하나 털어놓자면 1학년 때의 네 모습은 라반둘라의 이름으로 접근하기에 턱없이 가볍고 좋았다. 비굴하고 고개 숙이던 너라면 몇 마디 말로 전부 알게 될 줄 알았다.
당신이 알 리가 없습니다.
오산이었고 오만이었다.
타인과 부딪치는 것은 싫다. 쓸데없는 감정 소모도 불필요한 언쟁도 기 싸움도, 그러니 네가 순순히 굽혀주길 바랐다. 그러면 모든 문제가 원만해지지 않나요? 이러한 태도가 네 기분을 더 상하게 만들었음은 정직하게 고하자면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
인간이란 참 오묘하고 성가신 생물이기 짝이 없다. 말해주지 않는 네게 애가 탔다. 궁금해서, 알고 싶어서, 흥미로워서. 그 때엔 너와 친구라도 되고 싶었던가. 끈질기게 다가가 말을 붙이고 네게 뭐라도 은혜를 지우려 했다. 너를 제 세계에 편승시키고 싶었다. 선의는 없었느냐고 물으면 결코 그렇지 않으나, 삿된 의도는 선의를 덮기에 부족하지 않다.
「마침 당신의 이름 뜻이 나오는군요.」
「고서에서는 낙원을 가리켜 에덴이라 칭하였답니다.」
「Eden. 담으로 둘러싸인 뜰이라고 하죠.」
「선택된 자에게만 허락되는 울타리 안의 땅, 조화롭고 영원하며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
「멋진 이름을 받았네요.」
그래, 삿된 의도가 선의로 탈바꿈되진 않는다.
그럼에도 건넨 한 마디가 그 때의 네게는 어떻게 남았던지 알 수 없으나 돌고 돌아 벌써 3년째. 지금의 우리는 서로의 울타리를 두고 어디쯤에 서 있을까. 눈을 한 번 깜빡이자 공간이 바뀐다.
“명확히 ‘좋아한다’라는 말로 당신을 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이제 알 때도 되지 않으셨습니까. 아직 눈치가 없으신 건지, 혹은 제멋대로이신지.”
“나쁘지 않은 사이는 좋은 사이가 될 수 없는 걸까요. 저는 당신과 잘 지내고 싶은걸요, 에덴.”
나를 별로 싫어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으면서 그만큼 좋아하지도 않는, 차라리 미움 받는 것보다 못한 어중간한 무관심. 그렇게 될 바에야 차라리 너에게 미움 받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저의 교활한 마음을 들추듯 네 손이 뻗어졌다. 피하기에는 자존심이란 무언지 혹은 때를 놓쳤는지 상흔 가득한 손바닥이 선명히 닿았다. 상상보다는 따뜻한 손이었다.
그래서일까. 반대로 네 표정은 달처럼 찼다. 서슬 푸른 그 빛에 마냥 웃는 수밖에 없었다.
“당신이 정말 명예와 부를 원한다면 어떻게 하는 게 더 이로울지, 더 맞을지 스스로도 알면서.”
내가 네게 시련이라면 언젠가 너는 나를 훌쩍 넘어 가버리고 말까. 서로의 길이 엇갈린 듯 겹쳐지며 겹쳐지면서도 섞여들진 않았다. 이제와 첫 단추의 흔적을 좇기엔 너무 멀어졌다. 그럼에도 너와는 아주 멀어지지 않으리란 묘한 예감이 있었다. 아마도 네가…… 혐오하는 것들을 벗어던지기 위해 도리어 혐오를 쥐려 함에.
하지만, 그러한 끝에 정말 너는 낙원에 다다를까. 네가 가지고 싶은 것은 정말 그 끝에 있을까. 제 낙원이 여기 있지 않듯이.
이럴 때 보면 너와 나는 지독하게 닮아 있는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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