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리스 라이프니츠
반짝이는 샹들리에의 조명, 부드럽게 깔린 카펫, 나른하게 흐르는 음악소리에 숨어 삼삼오오 무리를 이루고 사람들이 속삭인다. 오늘의 날씨나 유행하는 복식부터 시작해서 최근의 불안한 정세와 자꾸만 충돌하는 두 세력에 대한 것까지.
바깥에서 보면 휘황찬란한 동경 속의 세계이나 안을 열어보면 포장만 못한 풍경이다. 누군가는 바깥에서 구걸을 하고 배를 곪는 일이 차라리 이곳보다 낫다던가. 돌고 도는 왈츠의 행렬, 셀 수 없이 많은 다리의 일사분란한 움직임을 응시하고 있자니 현기증이 날 것도 같았다.
“여기 있네, 춤은 안 추고?”
네가 말 걸어주기 전까지 완벽히 벽의 꽃으로 남을 요량이었다. 내밀어진 손을 잡자 주위가 조금 선명해졌다. 네가 가진 색이었을까.
“당신이 제게 주목해준다면 못 이기는 척 시선을 받아볼 수도 있고요?”
홀의 중앙으로 걸어 나가며 붕 뜬 감각을 이기지 못했다. 몇 년 전이었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섰을 테지만 그것은 더는 제 의무와 책임이 아니었다. 적자가 태어나고 가문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본디 겉으로 보나 안으로 보나 소란한 곳은 아니었기에 눈에 띄는 변화는 아니었으나, 누군가가 보면 자유로워졌다고 하고 누군가가 보면 가치를 잃었다고 할 변화가 있었다.
해야 할 것이 사라졌다. 하고 싶은 것은 없음에도. 곯마른 가지였다.
──태어나면서부터 당연한 책무를 부여 받고 그에 맞춰진 삶을 살아왔다. 글을 배우기 전에 교리를 외우고 수를 헤아리기 전에 시간 보는 법을 배웠다. 때에 맞춰 기도하고 고사리 손으로 몸도 마음도 인베스에게 바치겠노라 의미 모를 말을 따랐다. 거기에 어떤 감흥도 느끼지 못했다. 즐거움도, 감동도, 기쁨과 슬픔도. 감정이란 사치였고 불필요한 사고였다. 침묵하라. 그리고 씻어내라. 그것은 마음을 혼탁하게 할 뿐이다. 그렇게 배웠기에.
내게는 절대적인 말, 그 이상도 이하도 되지 않은 이야기가 너는 멋진 동화처럼 느껴졌다 말했다. 처음으로, 그렇게 읽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부러웠을까. 또 궁금했을까.
네 근처에선 언제나 청량한 향이 흘렀다. 곁에 있으면 마른 가지에 물 부어지는 기분이었다. 네가 말하는 즐거움을 아무렇지 않게 누릴 수 있는 날이 내게도 올까. ──적어도 오늘 이 날, 네 덕에 일부를 쥐었다.
“받아주시겠어요?”
무도회가 끝나고 축제의 마지막 행사를 앞두어 고요해진 사위, 이틀간이 꿈결 같았다 추억하며 몇 번이고 에스코트 해준 네 손목으로 실을 엮은 팔찌를 걸어주었다. 중간중간 자색의 라벤더 무늬가 들어간 실팔찌는 축제를 기념하기 위한 가벼운 것에 지나지 않았으나, 네게 기억할만한 것을 남겨주고 싶었다. 네가 해준 것처럼.
이 땅의 영광과 평화를 수호하고자 하는 약속, 그 길이 너의 길과 닮았다고 말했지. 찾아올 미래에 너는 지금처럼 올곧게 네 미래를 향하고 있을까?
“7년 후의 오늘, 이렇게 재회할 수 있을까요? 약속의 날에 오늘처럼 라이프니츠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그 때 또 한 번 저와 즐거움을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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