𝐓𝐇𝐄 𝐂𝐔𝐑𝐄 : 존재의 증명

2) 훈련 No.2 근성

천가유 2022. 8. 24. 23:50

1챕터 개인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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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 홀로그램 크리처(중형), 훈련실 입장 전 선택한 무기

이뮤니터는 보이지 않으며, 이 이상의 괴이화 사용은 위험합니다. 지원이 도착할 때까지 오로지 무기를 이용해 크리처 오드에게 대응하십시오.”

현재 상태: 침식률 8단계

-훈련시간 30, 괴이화 사용 시 미션 실패-

 

질문이 있어.”

──너라면, 어떻게 할래?

 

오늘의 훈련 주제는 근성’, 주제도 내용도 대단히 명쾌하고 직관적이다. 어디까지 이 육체로 버틸 수 있는가. 네 끈기와 정성을 바쳐라. 끈질기게 살아남아라. 거기서 다른 맥락을 읽어낸 건 생각이 이상한 방향으로 튀어서인가.

1회차. 훈련지를 받자마자 아무 생각 없이 입실했다. 무기를 고르라 하는 것도 보지 못했다. 그야 캐리어의 무기는 이 몸이잖아. 그러나 안일했다. 정육면체의 훈련실이 암전되고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 발동되는 순간, 다리 힘이 풀리며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다.

라리사 소워비, 현재 상태 침식률 8단계

인간의 편의상 정해둔 침식률이라는 것은 50%를 넘어가면 그때부터 캐리어이기에 감당 가능했던 오염 증세가 불거지기 시작한다. 자아가 흐려지고 이능력의 출력이 불안정하다. 모든 감각이 예민해짐과 동시에…… 보다 강해진다. 오드에 가까워진다.

그때부터 캐리어는 요주의가 된다. 언제 일반 감염자와 다르지 않게 날뛸지 모르기 때문이다. 훈련은 여기에 30%를 더 얹어주었다. 시뮬레이션이라 하나 80% Over. 한 발짝만 더 움직이면 돌이킬 수 없는 후유증이 남는다. 간당간당한 경계 앞에서 눈앞이 희뿌옇게 번졌다. 기묘한 건 그 흐릿한 시야에서도 피아의 구분만은 도리어 선명해지는 것이다. 온몸의 감각이 가시처럼 뾰족하게 돋아나 머릿속에서 쉴 새 없는 경종을 울렸다. 위험해. 위험해. 위험해. 위험해.

이 이상 괴이화를 사용했다간 되돌아올 수 없을 거야. 하지만, ── 눈앞에 거대한 오드의 팔이 날아왔다. 본능처럼 머리카락들이 곤두서 그것을 막아냈다. 초커의 수치가 불안하게 치솟으며 시야가 붉어진다.

 

라리사 소워비, 미션 실패.

 

2회차. 들어가기 전에 훈련지를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침식률의 재현이 리얼해. 아직도 소름이 돋은 목덜미를 문지르며 무기를 고른다. 체술은 큐어 프로젝트에 참가하며 처음 배운 것이다. 캐리어의 신체 능력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상회한다고 하나 6개월 만에 괄목할만한 센스 같은 건 없었다. 뭘 가져가지. 일단 총인가. 다들 총을 쓰니까. 아무 생각 없이 무기를 선택하고 재입장. 작은 훈련실이 다시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바뀐다.

이뮤니터는 보이지 않습니다. 괴이화 사용은 당신의 침식률을 돌이킬 수 없도록 합니다. 버티세요.”

훈련을 마치면 정식 페어가 생긴다던가. 어떤 페어면 좋겠어요? 질문에 뭐라 답했더라. 누구든, 지시를 내려줄 사람.

질문이야. 만약 라면, 미래의 내 페어. 지금 이 상황에서 뭐라고 지시를 내릴까.

총을 들었다. 과녁은 너무나 거대해 맞히기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애당초 크리처에게 일반 무기는 통하지 않는다. 총구의 끝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 끝에 내 독소를 바르면. 그럼 조금 유효할까? 그런 연구도 진행한다고 했는데…… 이크, 눈을 뗀 순간 재차 크리처의 갈고리가 몸을 낚아 올렸다.

 

라리사 소워비, 미션 실패.

 

3회차. 이어지는 4회차. 다시 5회차. 그 사이 사격 연습도 했다. 다른 동료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너라면 어떻게 할 거야? 나는 있지, 왜 괴이화를 쓰면 안 되는지가이해가 되지 않아.

귀중한 전투 인원을 침식으로 잃지 않기 위해…… 하지만, 우리는 차피……

라리는 혼자서만 싸워야 한다고 생각해?

몇 회차더라. 한 손에는 총이 축 늘어진 채, 한 손은 초커를 문지르며 앞을 본다.

제시된 조건이 너무 적어.”

이뮤니터는 언제 와? 파트너는 나를 해독시켜줄 수 있어? 지원이 도착하면 괴이화를 써도 돼? 아니면 이대로 나는 지원군과 바톤을 바꿔 후방으로 물러나? 그럴 거라면 왜 먼저 도망가지 않아? 만약 이곳이 민가라면, 여기서 내가 막아내지 않으면 내 등 뒤의 일반인이 위험하다면, 생각이 두 발을 못 박은 듯 묶어놓았다. 답을 내리지 못하고 굼뜬 사이 오드의 이빨에 물어 뜯긴다.

요령이 좋은 누군가는 영리하게 이 문제를 해결할지 모르지. 이를 테면 오드를 민가와 다른 방향으로 유인한다든지, 민간인을 몸으로 지킨다든지…… 아니, 그래도 역시 조건이 부족하다니까.

대처할 수 있도록 훈련을 해나가는 것 아닙니까. 괴이화가 없더라도 강한 이가 되기를…….

그러나 라리사는 거기까지 머리가 돌지 않았다. 보일 수 있는 근성이 있다면 그저 한 가지,

괴이화, 쓰고도 버티면…… 안 돼?”

내가 무긴데 안 할 수가 있겠냐?

애초에 괴이화를 써선 안 된다는 조건부터 무리였다. 몇 번째일지 모를 실패. 다음 사람을 위해 그만 비키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정신이 너덜너덜해져 훈련실을 나왔다. 전적은 화려했다. 26, 26. 오늘은 말짱 꽝이야. 중얼거리며 초커를 더듬는다. 지금은, 괜찮아?

내 파트너는, 명쾌하게 지시를 내려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 버티라고 한다면 버틸 테니까, 나는 이걸 쓰지 않고 싸우는 법을 알지 못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