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챕 개인로그
시야: 홀로그램 크리처(중형), 민간인 안드로이드
“사방에 의식이 없는 민간인이 쓰러져 있습니다. 중형 오드가 기물을 부수며 다가옵니다. 본인의 판단에 따라 크리처 처리와 민간인 구조 중 하나를 이행하십시오.”
-훈련 목표: 크리처 처치/민간인 구조.
어제는 뭐였더라. 아, 그래. ‘협동’. 처음으로 짝을 짜서 대인전을 했던 바로 다음날이었다. 페어가 부상을 입었을 때, ‘협동’해서 오드를 해치워라.
그 때는 어떻게 했더라. 우뚝 서서 고민했다. 안드로이드는 그에게 지시를 내려주지 않았다. 실제 이뮤니터였다면 말해주었을 텐데.
‘리리라면…… 날 보호해, 하고 말했을까. 챠챠는? 싸울 수 있다고. 킬러는……’
무슨 지시를 내려줄까. 동료 이뮤니터의 얼굴들을 하나하나 넘기며 상상한다. 가정하고 비교하고 조건을 따진다. 그러다 아──, 전부 내 상상일 뿐인데 무슨 의미가 있어. 아무도 말해주지 않아. 애당초 ‘협동’의 범위부터가 난처했다. 팔을 쓸 수 없다면 혈청을 공급할 수 없을까. 목을 다쳐 말할 수 없으면, 구호를 외쳐주지 않아. 다리를 움직일 수 없어 어떤 지원도 불가능하다면. 나는 너를 지키고 후미로 빠져야 할까. 너를 두고 오드에게 달려들까.
지시를 내려줘.
그 점에서 오늘 훈련은 훨씬 간단했다. 주제는 선택이었으나 라리사에게는 처음부터 하나의 선택지밖에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로빌과 떠들던 사다리가 부디 그의 선택에는 도움이 되었길.
“크리처를 처치한다.”
명령이 민간인 구조라면 그쪽을 따르겠지만……. 이번만큼은 판단할 것도 없는 문제였다. 판단이 아니라 학습의 결과다. 라리사는 후자를 선택할 수 없다.
사방에 쓰러진 민간인들에게 최대한 닿지 않도록 주의하며 머리카락을 뻗었다. 중형급의 오드를 휘감기 위해서는 조금 더 힘을 내야 했다. 제일 먼저 휘두를 수 있는 부위-이를 테면 팔-을 옭아매고 그대로 오드의 머리 위를 뛰어 넘어 등 뒤에서 제압한다. 그 자리에 오드가 우뚝 멈추면 그때부터는 거미가 독을 주입해 식사를 하듯이 천천히, 옭아맨 촉수 끝에서부터 독을 투입해 오드를 녹였다.
오드의 움직임이 천천히 잦아든다. 안정적인 성과다. 민간인에게는 한 명도 닿지 않았다. 괜찮아, 안전해. ‘나’는 안전해. 이대로 오드가 완전침묵 할 때까지…… 아, 얽힌 머리카락 사이로 마지막 발악처럼 오드가 발을 굴렸다. 커버하지 못한 찰나, 그 발길질에 주먹만한 바위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쏘아졌다. 촉수 하나가 빠르게 뒤쫓는다. 포탄처럼 쏘아진 그것을 찌르는 순간…… 뚝, 하고 촉수의 타액이 민간인의 머리 위로,
툭,
하고
방울져 떨어지는 검은 타르, 물소리, 울음소리, 축축이 적셔가던 어깨, 뜨거운 호흡, 눈물, 엉망이 된 뺨, 놓아주지 않던 손, 옭아매던 손, 그 손, 손, 손…….
「선생님은, ……아가. 서, 선생님은……,」
「감사해요. ……위안을 얻었어요.」
“아. 아아…….”
안 돼. 너까지 괴물이 되고 말아.
──미안해.
「저는 면역자인걸요. 닿아도 감염되지 않아요.」
꿈결 같았던 소리가 물거품이 터지듯 펑, 터지고 말았다. 훈련 종료.
“마지막에 마무리가 조금 부족했군요, 소워비 군. 훈련실의 불이 모두 켜지기 전까지 오드는 완전히 쓰러진 게 아니니 방심하지 않도록 합시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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