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라오사 초이
“너는 어떻게 죽을 거지.”
검은 시선이 쌀쌀맞게 떨어졌다. 떨어지는 시선을 좇아 의식이 구렁으로 굴러떨어진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고 산다. 모두, 우리 캐리어들은. 어떻게 죽을지를 고민해야 했다.
「사람으로 죽을지, 오드로 죽을지.」
미카엘라 데어와 나누었던 대화가 머리를 스쳤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사람으로 죽고 싶어.」 대답했다. 죽을 때까지 나로 있고 싶어. 오드가 되어버렸다가는 내가 아니잖아. 그럼 지금도 사람일까?
「우리는 경계선상에 있는 거지. 어느 관점에서 보냐에 따라 오드가 되고, 인간이 되는 것처럼.」
마누카 롤스턴은 그렇게 말했다. 침식, 동화. 시소처럼 저울처럼 이쪽저쪽으로 움직이는 걸음걸이, 이도 저도 아닌. 그러나 결정은 우리가 하지 않는다. 목에 걸린 그것이 우리도 모르는 우리를 수치화해. 0단계 양호, 5단계 경고, 8단계 위험. 10단계…… 사살하시겠습니까? [y/n] 마지막 순간까지 선택지는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밖에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다 이거야?
결정은 우리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정은 내가 할 수 있다. 그러니 아니야. 내가 스스로를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 거야. 그야 들었다. 겪기도 했다. ‘아무것도 하지 마.’, ‘가만히 있어.’, ‘너는 존재 자체로 위험해. 누구와도 닿아선 안 돼.’ 남이 그렇게 말한다고 넙죽 들을 거냐고? 하지만 그게 사실이지 않아. 너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단 뜻이야?
──물 밖의 타인을 기대하는 그 태도를.
바다는 끝이 없다고 하는데 풀장은 너무 좁았다. 가상의 바다여도 한번 연병장을 채우는 넓이를 느끼고 나자 더욱 좁게 느껴졌다. 세계는 알면 알수록 좁아져. 그래서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은 것도 같아. 「누가 말해주는 게 뭐가 중요해. 내가 사람이 아닌 적이 없는데.」 목소리가 수조를 울렸다. 물 밖의 타인을 기대해? 아니야. 사람들이 긍정해주거나 인정해주길 바람이 아니다. 나는 그저, 감염된 그날부터 내가 사람이 아니게 된 걸 알뿐이야.
“눈물을 흘리는데…… 그게 검어서, 붙잡은 팔이 이상하게 변해가는데, 벗어날 수 없었어. 총에 맞았어. 새까만 피가. 그 피를 뒤집어썼더니…… 모두, 변했어. 모두 돌아갈 수 없게 됐어.”
그걸 어떻게 사람이라고 하겠어. 그게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내가 사람이겠어. 누가 말하는지는 기실 중요치 않았다. 라리사 소워비는 9살부터 21살까지 12년을 격리 시설에 있었다. 격리 시설 안의 아무 책이나 뽑아 책장을 넘기는 게 취미였다. 읽는다고 다 이해하는 건 아니다. 기억력도 썩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몇 가지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었는데 이를테면 이런 이야기다.
【존재란 무엇인가.】, 혹은 【무엇이 존재하는가.】
생각하기에 존재하는가, 존재하기에 생각하는가. 인식하지 않아도 존재하는가, 인식하였을 때 비로소 거기 있는가. 진실은 어디에 기반하는가.
누구도 너를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을 때 너는 사람으로 존재해?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를 정의한다면 네 있을 곳은 어디야? 돌아가지 않아.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쓸쓸한 것만 같은 건 나의 인식일까. 너의 진실일까.
따라붙는 시선은 호시탐탐 건져 올려내고 싶은 듯이 보였다. 시선만으로도 낚싯바늘에 걸린 듯 떠오를 것 같았다. 모른 척하고 팔다리를 움직여 헤엄친다. 팔다리보다 긴 머리카락이 수조를 채웠다. 징그럽다, 괴상하다. 나는 나를 괴물로 여겨. 누가 말해서가 아니야. 내가 말했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아. 돌아갈 곳이 없어. 아마도 나는 너와 다르겠지. 같지 않겠지.
“그런 적 없어? 몸의 반쪽이, 까맣게 변할 때. 부풀어 오를 때. 사람들이 나를 무서워할 때, 내가 무서울 때. 누구와도 접촉하지 못하도록 갇힐 때, 그런데도 혹시…… 내가 잘못해서, 다른 누군가를 감염시키면? 어쩌지? 하고 겁이 날 때.”
그런 적 없어? 아니면 그 모든 걸 안고도 너는, 나는 인간이라고 생각해? 무엇이 너를 인간으로 남도록 붙잡아줘? 궁금해. 그렇게까지 네가 인간을 고집하는 까닭은, 너를 인간으로 남게 하는 힘은.
“알려줘.”
어깨가 잡혀 끌어 올려졌다. 세우려 하면 억지로 선다. 달라붙은 앞머리를 걷으며 고개를 들었다. 여기는 물 밖. 제대로 숨을 쉬어. 구렁 같은 시선을 보고 의식까지 끌어 올려졌다. 당연한 말을 뱉었다.
“나는 물속에서 숨 쉬지 못해.”
물고기가 아닌걸. 그걸 알면서도 아가미가 생기길 바라는 것처럼 물속에서 호흡할 수 있는 것처럼 살아갈 곳은 물 아래라고 혹은 죽을 곳이 거기라고 발버둥 쳐. 가라앉는 건 혼자가 되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외롭지는 않냐고. 외롭겠지. 쓸쓸할 거야. 그런데도 자꾸만 나를 부르는 무언가가 저 심해에 있었다. 거부할 수 없었다.
“그래도 가라앉으려고, 했어.”
가족도 친구도 모두 죽었다. 지내던 시설보다 훈련소가 좋았다. 지금 가진 모든 것이 최선의 것이다. 이곳을 소중히 여긴다. 이곳에서라면, 닮은 우리 사이에서라면 인간이어도 좋았다. 그것이 다수나 보편이나 평균이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뿌리 깊게 박힌 이미지가 나를 그 아래로 잡아당겨서.
마누카 롤스턴의 말이 맞다. 우리는 경계선상에 있다. 나는 괴물이지만 정말 괴물로 죽고 싶지는 않았다. 죽을 땐 사람이고 싶었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나는 사람일까? 그것은 또 온전히 그렇지 않아서, 통조림 속의 삶은 콩도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너는 온전하지 못한 나도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안에 상하고 병든 콩이 있어 그 한 알로 인해 다른 콩까지 먹지 못하게 만든다면, 애당초 그 상하고 병든 콩은 음식으로서의 효용 가치를 잃어서 먹히지 못하고 버려진다면 그것은 역시 음식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나도 있는 것이다.
──잠시 느낀 바다는 꼭 거인이 호흡하는 것만 같았다. 크게 밀려들고 소리 없이 빠진다. 물결에 정처 없이 떠돌면 그게 꼭 좋을 것만 같았다. 어떤 상황이든 두 발 단단히 박아넣고 굳건히 설 너에게는 성가시기만 할지도 모르겠지만, 너무 깊은 곳까지 잠겨 네 손도 닿지 않을지 몰랐지만.
“……죽을 땐 사람으로 죽을게.”
시키지도 않은 답을 하며 눈꼬리를 내리깔았다. 파도 소리가 들렸다.
약 2주간의 1챕터 러닝기간 동안 맨 처음 타래를 마지막까지 대화한...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오너님이 캐릭터를 굉장히 무심한 듯 사려깊고 딱뚝콱한데 다정하게 굴리면서 오너님 본인도 대화가 끊기지 않게 꾸준히 짧은 답이어도 재치있게 답해주신 덕에 즐거운 경험이었네요.
둘이 대담한 것도 좋았어.
'𝐓𝐇𝐄 𝐂𝐔𝐑𝐄 : 존재의 증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07) 훈련 No.7 제압 (0) | 2022.08.24 |
---|---|
06) 훈련 No.6 응급처치 (0) | 2022.08.24 |
04) 훈련 No.5 무아 (0) | 2022.08.24 |
03) 훈련 No.4 선택 (0) | 2022.08.24 |
2) 훈련 No.2 근성 (0) | 2022.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