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챕 개인로그
【※ 금일 훈련은 훈련생들에게 미리 고지되지 않습니다.】
어제와 같다. 팔락거리고 한 장 붙은 종이를 본 순간부터 라리사는 그다지 훈련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어제는 결국 훈련에 실패하지 않았던가. 아직도 그 상냥하던 안내음성이 떠오른다.
「훈련생이 생각하는 올바른 판단이란 무엇인가요? 훈련의 성공, 실패 여부는 그것으로 결정되어집니다.」
중요한 건 스스로가 믿는 ‘올바른 판단’, 그것만 바로 선다면 어떤 결과든 괜찮다. 하지만,
「모르겠어요…….」
몇 번을 다시 도전하더라도 올바른 것이란 무엇인지 찾을 수 없었다. 정말 그 안에서 올바른 것을 찾는다면, 바라는 답이 있다면, ──처음부터 감염자가 없는 것. 그뿐이다. 감염이란 건 정말이지 속상한 일밖에 주지 않으니.
사이렌이 울렸다. 대피 명령이 떨어졌다.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지하벙커로 향하려는 순간, 정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냐를 데려가야 해. 에단도, 아스터도. 두고 갈 수 없어. 우선순위도 몰라? 지금 중요한 게 그게 아니잖아. 누가 말한다 한들 구멍 난 머리에 마카로니를 꽂듯 슥 들어왔다 빠져나갈 뿐이지. 중요한 건 또 헤어지지 않는 것.
「라리사!! 어디 가?」
「늦습니다. 라리사 어디 가요……. 이리 와요!」
「안 가고 뭐해. 빨리 가.」
또 헤어지지 않는 것. 그렇게 바랐던 마음이 순식간에 물거품처럼 사그라진다. 미안해. 갈게. 버리는 것도 간단하다. 손쉽다. 필요하다면, 반대로 불필요하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이름조차 잊어버리고 말겠지. 몇 번이고 그래왔으니까. 헤어진 친구들, 오지 않게 된 편지. 잃어버린 가족사진, 이젠 이름도 알지 못해. 잠시나마 만났던 시설의 친구들도 그렇게 오래 함께 있지는 못했다. 그러면 슬퍼하거나 아쉬워하고 미련을 갖기도 한계가 있어서, 금세 포기하고 놓아버리는 법을 배워서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죽만을 삼시세끼 먹는 것과 비슷하게 아이의 세계는 백지로 변해 갔고 그게 익숙했다.
순식간에 관심을 잃고 지하 벙커에 가 자리를 찾았다. 이대로 돌아가면 기억하겠지. 돌아가지 못하면 잊겠지. 잃어버리고 만다면 기억도 하지 않는 편이 좋아. 2층 침대에 다리를 내리고 새 인형을 만지작거렸다. 그 포근한 감촉 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베개 들고 서있을게요…. 기다리고 있어야지…….」
훈련은 내키지 않았지만 들어가야 했다. 빠졌다가 자질을 의심받고 싶지 않았다. 기다리는 곳이 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돌아갈 곳이 있다.
「다녀올게. 잘 돌아올 거야.」
몇 번이나 그런 말을 했을까. 어딘가로 돌아온다는 것도 누군가 기다린다는 것도 낯선데, 싫지 않아서. 좀 더 기대하고 싶어서. 잘하고 싶어서. 이곳에서 잘해내 인정받고 싶어서, 훈련실에 들어갔다.
【라리사 소워비, 훈련 개시.】
들어가자마자 가스가 살포되었다. 금세 이것이 환각 가스임을 알아차렸다. 굳이 홀로그램만이 아니라 환각 가스를 쓴다고? 무엇을 보여주려고? 숨을 참고 싶었지만, 어차피 그런 식으로 회피할 수 없을 것을 알고 차라리 삼켰다. 그리고 기다렸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 순간, 오드의 위로 익숙한 실루엣이 겹쳐지기 시작했다. ……누구? 움직임이 우뚝 멎는다.
【눈앞의 오드를 사살하시오.】
【사살 성공 시 미션이 종료됩니다.】
어제와 다르게 감정 없는 목소리가 훈련실에 울려 퍼졌다. 그 사이에도 오드는 착실하게 ‘익숙한 얼굴’을 조형해나갔다.
“얘…, 아가…….”
이런 얼굴이었던가. 아니, 눈을 똑바로 뜨면 결국 오드에 지나지 않음을 안다. 무엇보다 라리사의 기억이 불분명한 탓인지 환각에서조차 상대의 얼굴은 선명하지 못했다. 헌데 선명하지 않은 그 얼굴이 도리어 향수를 불렀다. 빛바랜 기억 속에서 선생님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면서,
“우리 아가는 포옹을 좋아했지…? 선생님을 꼭 안아주지 않을래?”
여긴 너무 외롭고 추워. 혼자서는 쓸쓸해서, 네가 안아주지 않으면 선생님은 너무 속상할 거야.
온화한 미소를 지으면서 울고 있어서.
“선생님이랑 같이 가지 않을래? ……아가, ……????????.”
그 얼굴이 점차 일그러지기 시작하면 동화 속의 바다마녀처럼 표독스럽거나 끔찍하거나 괴롭거나 무섭거나, 그렇게 덮쳐오는 두 팔을 벗어날 수가 없어서 오드의 품에 꽁꽁 갇히고 만다. 소형 오드는 하필이면 사람과 흡사한 크기여서 기이하게 팔만 자라나 넝쿨처럼 옭아매면 제법 괴롭기도 했으나, 그뿐이었다.
선생님은 죽었어. 바로 눈앞에서 봤어. 이런 것으로 동요하지 않아.
어릴 땐 벗어나지 못했던 그 팔을 스스로 뿌리치는 건 상당히 기묘한 느낌이었다. 기억나지 않는 선생님의 얼굴을 외면하고 머리카락이 자라나 오드의 목을 꺾으려 들었다. 우두둑, 하고 오드에게도 관절이 있는지 의심스러운 소리가 들리며 스며들던 입자가 점차 흩어지려 한다. 사살하라. 그 명령을 충실히 따랐다고, 촉수 끝에 마지막 힘을 가하려는 그때였다.
“……리사.”
“아.”
“라…, …사. 나, 힘, 들어. 숨막혀.”
라리사, 라리사. 나, 무서워. 으아앙.
순식간에 힘이 툭 풀린다. 잊어버린 줄 알았던 얼굴이 거기 있었다. 아냐, 나의 단짝 친구. 환상 속의 친구는 9살 모습 그대로였다. 자란 모습을 본 적 없으니 상상할 수도 없던 걸까. 네 앞에 선 나는 너를 두고 어느새 15년을 훌쩍 앞서갔는데 너는 아직도 그 시간에 고여 있어. 의식이 환상을 인식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주저하며 멈춘다. 오드는 그 틈을 노렸다.
푹, 하고 오드의 끝이 날카롭게 꽂힌다. 투둑 떨어지는 건 선명한 붉은 피. 내 피는 아직 붉었구나. 오드처럼 검지 않았어. 멍한 감상을 이었다. 환상 너머의 적은 소중한 단짝의 얼굴을 하고 그를 부르고 있었다. 이리와, 이쪽으로 와. 같이 가자. 이번에도 날 안아주지 않을 거니?
“아냐. ……아나스타샤. 나, 있지. ……그 때 일, ……사과하고 싶어서.”
이해해달라고 말하고 싶었어. 하지만, 너도 분명 싫어할 줄 알았어. 내가 무서웠어. 그래도, 그러지 말 걸 그랬나봐. 송곳 같은 끝이 속을 긁어낸다. 벌려진 안으로 검은 입자가 파고들었다. 침식률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감정의 동요를 짙게 받았다. 비틀거리고 휘청거리고, 그렇게 훈련을 해도 나아지지 않아. 아니, 그렇게 단기간에 효과를 보기는 무리라니까. 잠깐, 찌푸린 눈을 하고 상대를 다시 본다. 단짝은 심해와 같은 그림자를 뻗으며 손짓했다. 이리와, 라리사. 우리 약속했잖아.
“약속, 했어. 기억하고 있어. ……그러니까.”
갈 때까지 기다려.
몸을 파고 든 송곳 같은 끝으로 독을 침투시켰다. 오드의 팔이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하고 몸 전체가 흐물흐물해졌다. 단짝의 얼굴도 괴물처럼 일그러졌다. 그 낯을 앞에 두고 라리사는 고통만을 견뎌내며 이번에야말로, 뼈가 녹아 흐물흐물해진 목을 비틀었다.
바닥을 구르는 오드의 머리는 어느새 새까맣게 돌아와 있었다. 동시에 훈련실의 조명이 밝아진다.
【라리사 소워비, 훈련 종료.】
괴물을 죽인 내 힘은 괴물의 것일까.
친구를 죽인 나는 괴물에 한걸음 더 다가갔을까.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어디로? ──아, 그래도 돌아가야지. 움직여야지.
'𝐓𝐇𝐄 𝐂𝐔𝐑𝐄 : 존재의 증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 늘 이별을 준비하고 있어. (0) | 2022.08.25 |
---|---|
11) 바다에 잠기는 꿈 (0) | 2022.08.25 |
09) 훈련 No.9 결단 (0) | 2022.08.25 |
08) 훈련 No.8 면담 (0) | 2022.08.24 |
07) 훈련 No.7 제압 (0) | 2022.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