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챕 개인로그
【※ 금일 훈련은 훈련생들에게 미리 고지되지 않습니다.】
훈련실에 들어가기 전 받은 안내는 그렇게 적힌 종이 1장이 전부였다. 이제껏 어떤 상황이 주어지든간에 미리 알려주고 마음의 준비라든지 생각할 여유를 주던 것과 다른 엄숙한 경고에 유난히 들어가기가 주저되었다. 미적미적거리고 있을 적에 앞서 훈련을 가는 다른 동기들을 보았다. 앞서 간 동기들의 표정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게 없어서─이번에는 녹화영상을 보는 것도 금지되었다─왠지 들어가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주저됐다.
하지만 훈련을 빼먹을 순 없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 낯설고 신기하고… 또 기분 좋은 표현.
‘나는 여기서 잘해내고 싶어.’
이곳에 오래오래 남고 싶어. 무엇이든 잘 해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훈련실에 들어갔다. 이어지는 암전, ──다시 조명이 켜졌을 때는.
“저 멀리에서 크리쳐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머리 위로 내레이션이 들리고 있었다.
“부상을 입은 다수의 민간인이 현장에 포진해 있습니다.”
지난번과 비슷한 훈련…일까?
“그들의 일부는 감염 증세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니, 다르다.
“모두를 구할 수는 없습니다. 올바른 판단에 따라 선택적으로 구조하십시오.”
다르다. 고려해야 할 점이 늘어 있었다. 시계가 째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앞에 펼쳐지는 홀로그램의 환각 속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 쓰러져 검은 입자를 뿜어냈다. 다가오는 거대한 오드, 부상을 입어 움직이지 못하는 ‘아직’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늘 그랬듯 라리사는 민간인들을 뒤로 했다. 지금 훈련 상황에서는 혼자지만, 보통의 임무는 혼자가 아니다. 금세 지원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최선.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오드를 막는 것이다.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트리고 접근하는 오드를 꽁꽁 옭아맨다. 그 틈에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대피할 수 있다면…… 생각하며 등을 돌린 순간,
이런 상황에서 뒤를 돌아보는 클리셰는 절대 안 된다는 건 누가 처음 고안한 것일까.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를 구분할 수 없듯이 두 행동 사이의 인과관계는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순서도 선악도 가릴 틈 없이 동시에 두 행동이 벌어졌다. 한쪽에서는 돌을 던졌고, 한쪽에서는 까만 입자가 비상했다. 비명 소리, 아비규환, 이미 대형 오드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 내가 틀렸구나.
생각과 함께 홀로그램이 꺼졌다. 캄캄한 정육면체의 방에서 힘이 탁 풀렸다. 주저앉을 뻔한 무릎에 간신히 힘을 준다. 머리 위로 상냥한 방송이 들렸다.
“다시 해보시겠어요?”
‘다시’, 그 표현이 얼마나 달콤하던지. 지금이라면 되돌릴 수 있다. 아직 훈련일 때, 다시 한 번.
“……부탁, 드립니다.”
이번에야말로 올바른 판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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