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키치 밀러
서러워하는 얼굴이 선명하게 잘 보였다.
“안경 안 쓰니까, 좋은데.”
좋은데, 너무 많이 보이네. 눈앞의 서러운 얼굴과 머나먼 기억속의 누군가를 저울질하는 건 너무한 일이었다. 그야 어느 쪽으로 저울이 기울지 명백하지 않은가. 조금 서늘한 두 손이 뺨을 조물거렸다. 그런 표정 짓지 마. 왜 그런 표정이야?
「원장이란 그 사람 소중해요?」
질문에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소중한가? 아마도. 소중했어. 많이 좋아했어. 아냐도 그래. 소중했어. 좋아했어. 몹시 가까웠지. 하지만 다 지나갔어. 떠나서 이제 아무도 없어. 그렇다면 아무것도 없는 그곳에 나는 왜 매달리고 있는 걸까. ──매달리는 이유를 알아야 해?
“생각이 많아지면, 몸이 무거워. 가라앉는 거랑은 다른데, 걸리는 게 많아서, 붙잡는 게 많아서, 지시에 재깍, 대응하지 못하게 돼서.”
그래서 내 생각 같은 건 필요 없었는데. 뺨을 만지던 손을 떼어냈다. 어느새 타인과 접하는 것도 자연스러워졌다. 아무것도 건드리지 말고 함부로 울지도 말고 너는 존재 자체로 위험해. 그러니 가만히 있어. 그런 날도 있었는데 이곳은 생각해도 된다는 듯 많은 금지되어 있던 것을 허락해주었다. 노란 테이프로 가로막혀 있던 여러 가지 것들이 하나, 둘 끊어져 자유로워졌다.
그러자 생각이 범람했다. 그간 억눌러두었던 무수히 많은 것들이 혼재해 뒤섞였다. 그 안에서 올바른 마음을 찾기란 굉장히 어려웠다. 나도 내 마음을 잘 알 수가 없어서 사실은 어떻게 하고 싶은지조차 불확실해서.
“해파리는…… 몸의 98%가 물로 이루어져 있대.”
아주 단순하고 알기 쉽지. 겨우 2%를 제외하고는 물밖에 없는 거야. 나도 해파리처럼 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런데 인간은, 물이 61%…, 단백질 16%, 지방 1%에 질소 3%……. 외에도 여러 다양한 성분이 섞여 있어서, 그 하나하나가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성분인 동시에 사람을 단순하게 만들기에는 복잡한 불순물만 같아서 혼란하게 해.
“여기가 마음에 들어. 있고 싶어.”
이것은 나의 마음.
“……그곳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이것도 나의 마음.
“바다가 좋아. ……아름다워. 시원하고, 소리도 좋았어. 해변을 걷는 것도 헤엄치는 것도, 다 좋아서.”
가라앉는 게 다가 아닌 것 같아. 나는 바다를 좋아하는구나. 꿈에 그리던 아름다운 추억의 장소.
“그런데…… 바다에 들어가면 자꾸만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게 돼. 그곳이 내 있을 곳 같아.”
그러나 아래에서 나를 잡아당기는 힘도 나를 사랑해서. 그 부름을 뿌리치지 못하고 고이기 위해 갔다.
숨 쉴 수 없는 저 깊은 곳까지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면서 더 외로워지기 위해 갔다. 한계까지 호흡을 멈추고 심해로 내려가면 고통스럽고 괴로운데 그것이 왜 기분 좋게도 느껴지는지.
“가지 않는다고 하면, 마음이… 괴로워. 두려워져.”
함께 가자고 울던 원장 선생님의 주박인 걸까. 나 홀로 살아남았다는 부채감의 무게인 걸까. 나를 그리워하는 그곳을 놓아버린다고 생각하면 그것만으로 공포를 느꼈다. 어겨서는 안 될 것을 어겨버린 것처럼. 한편으로는 다른 두려움도 있었다.
압박해오는 물밑 그늘에서 한걸음 떨어져 기저의 감정을 헤아린다. 매달리는 이유를 찾고 있어. 답을 해주고 싶어서. 그렇게 찾아가다 보면 이윽고 발견한 감추어졌던 불안.
너희가 좋아. 너희를 너무 좋아해서, 나는 이곳이 너무나 소중한데. 동시에 늘 이별을 준비하고 있어.
“언젠가 너와도 헤어지고 말 거야.”
어디 안 가요. 같은 자리에 매일같이 있을걸요. 너는 그렇게 말하지만, 이제까지의 내 삶은 그렇지 못해서. 좋아해서 잃어버릴 걸 두려워 손에 쥐지도 못하다니 멍텅구리 같지만 나는 그래. 홀로그램의 바다를 건너 삭막한 연구동을 지나 네 방을 들렀다가 어느덧 지하벙커까지. 그 사이 또 손에서 놓아버린 것들을 봐. 두고 온 것을 돌아보지 않으려 하다 보면 무엇을 고르는 게 올바른 판단인지조차 모르겠어. 이 불연속함 속에서 잊는 것도 기억하는 것도 어렵기만 해서.
“그래서…… 잘 모르겠어.”
미안해. 힘없는 사과가 툭, 발치에 떨어졌다.
이때 키치 덕분에 죽은 사람들에게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어요. 정작 키치는...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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