𝐓𝐇𝐄 𝐂𝐔𝐑𝐄 : 존재의 증명

11) 바다에 잠기는 꿈

천가유 2022. 8. 25. 00:06

1챕 개인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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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도 밤도 여름도 겨울도 구분되지 않는 지하벙커에서 라리사 소워비는 긴 꿈을 꾸었다.

바다에 가고 싶어. 진짜 바다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곳은 정말이지 장대하고 아름다울 거야. 되뇌던 목소리는 누구의 것이었을까. 사실은 말하던 이조차도 진짜 바다가 무엇인지 모른 채, 주어진 이미지, 그 환상에만 빠져 있었으리라 이제와 헤아린다.

아냐아나스타샤는 뭐든 하고 싶은 게 많은 친구였다. 쥐꼬리 같은 지원, 낡은 책과 헌 옷, 장난감 하나 마땅치 않은 시설에서 아이들을 불러 모으고 작은 왕국을 세웠다. 닳고 닳은 책장을 넘기며 시설의 흙을 파헤쳐 풀을 찾았고 빛바랜 사진을 응시해 사진 너머의 풍경까지 그렸다. 어쩌다 가끔 색연필이나 크레파스라도 생기면 다같이 아이의 목소리에 맞춰 상상력을 뽐냈다. 여긴 바다가 있을 거야. 여기서 커다란 새가 나타나서, ! 처음 보는 꽃이 있어. 이층집을 짓자.

라리사는 단짝 친구와 절대 손을 놓지 않고 걷는 아이였다. 가끔은 반찬 하나를 두고 싸우기도 했고 사인펜을 얼굴에 그리고 깔깔 웃었다. 여느 아이와 같았다.

그때도 운동신경은 좋지 않았다. 함께 술래잡기를 할 때면 번번이 꼴찌를 도맡아 했는데 아이들 모두 사이가 좋아서 가끔은 모르는 척 져주기도 하고 술래를 바꿔주었다. 지금은 이름도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상냥한 친구들.

그 날도 분명 누군가 라리사 몰래 술래를 바꿔주었던 거라 생각한다. 아니면 반대로 그녀만 빼고 모두 술래였거나. 어느 쪽도 아니라면 왜, 그녀만이 선택되었겠는가.

──그것을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면.

이 자그마한 외곽 도시는 오드가 쳐들어오면 막아낼 방비는 있어도 오드로 인해 부서진 터전을 복구해주는 지원은 갖추고 있지 않았다. 방위군을 보내둔 것도 여기가 뚫리는 순간, 더 안쪽의 사람들이 피해를 입기 때문이겠지. 마지노선이었다. 덕분에 살았다. 그러나 살아남기만 했을 뿐이었다. 5차 게이트 사건이 있고 한 달도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감염자가 되어 잡혀간 원장님, 새로운 시설장의 부재, 줄어든 교사와 만날 수 없게 된 친구들, 사이에서 단짝의 손을 꼭 쥔 채 불안함에 떨던 나날 중. 원장님이 돌아왔다.

돌아온 게 아니었지. 탈출한 것이었다. 추방과 안락사, 그 기로에서.

선생님은, …… 선생님은. 얘들아……」

──죽고 싶지 않아.

혼자, 죽고 싶지 않아.

어깨를 붙잡은 손, 이마를, 뺨을 적시고 떨어지던 눈물, 겁에 질린 표정, 아니. 외로움에 질린 표정이었나. 이윽고 힘껏 끌어안던 팔. 사랑스럽게, 또 애틋하게. 포옹을 좋아했다. 아이는, 두 팔 벌려 상대를 마주 껴안았다. 그러자 흠칫 놀라던 품의 주인은 지금 저지르는 짓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일까. 일말의 죄책감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침식률이 도를 지나치며 든 발작에 지나지 않았을까.

사랑하던 선생님의 몸이 검게 물들어갔다. 입자로 화하는 그 몸이 무서웠다. 놓고 싶었다. 하지만 놓아주지 않았다. 꽁꽁 옭아맨 팔, 차갑게 식어가던 온도, 소름 끼치는 감각. 비명조차 나오지 않던 그 순간에 쏘아진 한 발의 총알, 적셔지는 검은 피.

선생님이 죽었다. 총에 맞고 쓰러졌으니 인간으로 죽은 것이리라. 피를 뒤집어쓴 아이들은 여과 없이 감염자가 되었다. 그 중 라리사만이 캐리어로 밝혀졌다. 어째서 나였을까. 모두와 헤어져야 했다. 아냐와도 손을 놓았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그 순간, 우리는 서로를 껴안아주지 못했다. 무서웠다. 불안했다. 혹시 잘못 건드려 아냐의 감염도가 올라가기라도 하면 어쩌지. 그리고 그 눈, 나를 보며 공포에 잠기던 눈. 내가 무서워? 그럼 나도 내가 무서워.

그렇게나 함께였는데. 마지막 기억이 서로에 대한 미안함이라니 최악이었지. 그 뒤로 몇 번인가 편지를 주고받았으나, 언제부터인가 편지가 오지 않게 되었을 때 누구에게도 이유를 물어볼 수 없었다.

여기는 바다 소리가 금방 들린다? 우리 나중에 크면, 바다를 보러 갈까?

술래를 넘겨줄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아, 영원히 술래가 되는 벌을 받게 되었다.


연속되지 않는 꿈결은 다음 기억으로 이어진다. 쏴아아, 하얀 포말과 함께 파도가 발치에 닿았다. 다가오는 물결에 흠칫 놀라 발걸음을 조금 더 뒤로 밀었다. 유카 교관의 말이 한 마디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압도당했다. 안 들어가고 뭐하냐. 물 좋아하잖아., 라리사가 제일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시각만이 아니라 청각에 후각, 다른 오감도 구현하였다던가. 예고도 없이 펼쳐진 눈앞의 광경에 지금 꿈을 꾸는 건가? 생각했다. 밀려드는 파도가 머릿속까지 깨끗이 지우고 간 듯 사고가 일순 멈춰버렸다. 사실 이제껏 생각하지 않고 산다는 건 다 거짓말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이보다 더 아무 생각 들지 않을 수는 없다고 후에야 곱씹었다. 모두의 시선이 어떤 기대를 안고 닿아오는 걸 알았다. 그래도 발을 움직일 수 없었다.

……무서워.”

너무 기쁠 때, 벅차오를 때, 격앙되는 감정을 스스로 주체할 줄 모를 때 사람은 그 모든 감정을 뭉뚱그려 공포라 칭한다. 빠르게 많은 생각이 지났다. 어차피 가짜야. 진짜 바다도 이럴까? 난 정말 바가 보고 싶었던 걸까. 아냐를 따라하던 건 아냐? 내가 저기 갈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어. 발을 넣었다간 나오지 못할 것 같아. 좋은데, 너무 좋은데…… 그만큼 무서워서.

등을 밀어주고 손을 당겨주던 이들이 아니었더라면 홀로그램의 기적이 끝날 때까지도 꼼짝하지 못했으리라. 한 발, 두 발, 콘크리트에 박힌 듯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차가운 물결이 발목을 휘감아 간지럽히고 부슬부슬한 자그마한 모래알이 맨발 사이사이로 파고들어 웃음이 났다. 내가 낸 소리라고 처음에는 알아차리지도 못하던 것이다.

기분 좋은 일이나, 좋아하는 걸 떠올려 보는 거야. 그럼 더 웃기 편할 텐데.

그때의 내 표정, 어땠어? 조금은 너와 닮았었을까? 달콤한 냄새가 나던 이 앞에서 조금은 부끄럽지 않을 수 있었을까. 단언컨대 고의는 아니었으나 언제부턴가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감정을 보일 상황이 줄어갔다는 쪽이 맞을까. 사건이 없으니 기복도 없다. 하루라고 하는 새하얀 도화지가 주어졌으나 색을 칠할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어서 매일매일 하얀 도화지만 쌓아가다 보니 언제부턴가 색칠하는 방법마저 잊어버렸다 하겠다. 웃긴 일도 화날 일도 없었다. 어떠한 자극에도 노출되지 않는 삶. 그 삶에── 변화가 생겼다.

어디까지 닿고 싶은데? 아무도 없는 곳?

너무 가라앉아 있는데. 올라오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입수, 잠수, 가라앉기전부 물속에서 나올 생각 없어 보이는 것들인데요.

정말 하고 싶은 건 무엇이었을까. 물속에서 기다리는 이가 누구여서 그곳에 매몰되려는 걸까.

고백이라 할 것도 없이 말하자면 이곳에 오기 전까지 깊이 생각하는 법이 없었다. 뚝뚝 끊어지는 사고, 그러고 나면 잊히는 맥락, 사라진 문장의 서두. 시작점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가장 강렬한 문자 한 토막만 남아서, 그것이 를 구성하는 요건이라고 끌어안은 채 물 위를 떠 있었다. 어디로든 흘러가다 보면 가라앉을 줄 알았다. 그곳에서 나를 부르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부표도 없이 떠돌던 위로 너희의 목소리가 깃들어서 백지의 도화지에 색을 입히고, 깊은 곳과 얕은 곳의 구분을 주고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주고 사고하게 했다. 생각하게 했다.

여기가 마음에 드시잖아요, 그냥안 가면안 돼요?

뭍에는 네가 있어. 기다리는 사람들, 돌아오라고 말해주는 이들, 한 번도 환영이란 것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 감염된 후로. 여기엔 나와 똑같은 이들이 가득해서. 이곳이라면 괜찮겠구나. 살아도 되겠구나 느꼈어.

이곳에서 잘해보고 싶었어.

그런데 물에는……

누가 있었더라.’

누군가 불러. 나를 기다려. 하지만 자세히 알려고 하진 않았어.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고찰에 들었다. 땅을 파헤치는 것과 닮아 있었다. 여기서는 가라앉을 수 없으니까 대신 지하로, 지하로 내려가는 거야. 시작은 원장 선생님. 추방을 앞두고 몰래 도망쳐 나와 원생들을 보러 왔던 그 사람. 혼자는 싫어, 외로워, 무서워. 어린아이들을 앞에 두고 어린아이처럼 울던 이는 우리와 함께 하고 싶어 했다. 혼자는 싫어, 같이 있어줘. 검은 팔의 이미지가 자꾸만 라리사를 당겼다.

다음은 소중한 단짝. 끝내 안아주지 못했던 이. 그때 한번만, 헤어지기 전에 딱 한번만 안아주었더라면 차갑고 축축한 원장선생님의 온도가 아니라 널 기억할 수 있었을까? 지금은 그 또한 저 바다 깊숙한 곳에 있었다. 우리 약속했잖아, 바다를 보러 가기로. 보러 가야지. 보내주어야지. 잊지 않아. 아스터. 격리 시설에서 만난 친구.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꿈꾼다고 했다. 가족들이 다 나를 기다려. 돌아가면 네게 꼭 소라고둥을 보내줄게. 상냥하게 말해주던 너는 왜 사라져야 했을까.

에단, 트레이, 카훔, 바넷사……. 그리움의 무게만큼 인형들이 쌓이다가 사라지기를 거듭했다. 소중한 것은 모래성과 같았고 라리사는 그것을 지켜낼 줄 몰랐다. 무너지고 부서진, 잃어버린 많은 것들이 바다에 잠겼다. 외로움이란 그곳에 고여 있다. 책임과 의무, 부채감, 끝내 너희를 잡지 못하고 아직 술래자리에 앉은 내가 해야만 하는 일. 그곳이 나를 부른다.

여기가 마음에 들어. 이곳에 있고 싶어. 하지만, 그런데……

바다에 잠기는 꿈을 꾸었다. 기다리던 무수한 외로움이 마중 나왔다. 숨이 턱 막힐 것만 같았다. 나는 물속에서 숨을 쉬지 못해. 그래서 너희를, 놓아버려? ──그래서는 안 되잖아. 나는,


파란 에피소드가 정말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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