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하루 종일 펜던트를 찾느라 시간을 다 보내버렸다. 떨어트린 걸 새가 물어갔던 건지 둥지 위에서 기어코 찾던 걸 발견한 챠콜은 휴우, 가슴을 쓸어내리며 펜던트를 뽀득뽀득 닦아 품안에 갈무리하였다. 어느새 하늘은 새까맣게 물들어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나무의 가장 꼭대기까지 올라 챠콜은 두 팔을 넓게 펼치고 폐까지 얼어붙을 것 같은 찬 공기를 후읍 들이마셨다.
사막의 밤도 깜짝 놀랄 만큼 추웠지만 이곳과는 공기가 다른 기분이다. 숨을 쉴 때마다 얼음을 깨무는 듯한 공기가 여전히 조금 낯설었다.
“진짜 온 거구나. 아카데미.”
후만이 보면 놀라겠다. 까칠까칠한 수염이 난 채로 크게 웃던 그의 얼굴을 떠올리며 챠콜은 따라서 혼자 큰 소리로 웃었다.
* *
세상에 눈을 떴을 때부터 아이는 이미 혼자였다. 하지만 혼자서 태어난 세상은 걱정할 만큼 나쁘지 않았다. 글래디스 남부의 유흥가와 맞닿은 빈민가, 아름다운 향락지구의 어두운 뒤편에서 아이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의 십시일반 같은 정으로 이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챠콜, 잿빛 머리의 챠콜, 다들 그렇게 불렀기에 그게 이름이 되었다. 떠먹여주는 처지에서 조금 자란 아이는 빵빵한 주머니를 차고 홍등가로 걸어가는 주정뱅이를 털거나 새벽 즈음 뒷문으로 버려지는 음식찌꺼기들을 주워가며 삶을 이어나갔다. 저와 비슷한 처지인 아이들은 널리고 널려서 이런 생활이 불행하다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가끔 비가 와서 허탕을 치거나 손을 잘못 놀려 얻어맞고 돌아오는 날이면 가엾게 여긴 아줌마나 아저씨가 먹을 걸 나눠주기도 했다. 조금만 더 자라면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해봐야지. 아이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힘도 셌고 몸이 재빨랐고 지금도 심부름 같은 걸로 풋삯을 벌고 있었으니 곧 더 이상 쓰레기 같은 걸 먹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가끔 홍등가의 아름다운 여인들이 손짓으로 과자를 쥐어주며 들려준 이야기로는 배가 돈을 잘 번다고 했다. 배를 타고 나가서 부자가 될 거야. 돈을 많이 벌면 린지 아줌마에게 생고기 햄을 선물해줘야지. 그게 아이의 꿈이었다.
아마 정기적으로 도는 국병의 순찰만 아니었어도 아이는 쭉 그렇게 자랐을 것이다.
“너……, 부모님은?”
“몰라.”
“…‥그렇군. 잠시 따라오겠니?”
무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병사에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친 게 잘못이었다. 나브람치고는 범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는 아이를 의아하게 여긴 한 병사로 인해 아이는 태어나 4년 만에 제가 모두와 ‘똑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모두에게 칭찬을 받았다. 챠콜은 힘이 세네. 혼자서 다른 아이의 두 배는 들어. 머리색도 아주 예쁘네. 꼭 염색한 천 같아. 또래 아이들에게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챠콜은 정말 높이 뛰어올라. 달리기도 빨라. 대단해. 대단한 챠콜. 우리 대장은 너야.
그런데 오늘은 모두에게 미움을 샀다. 사일란이었다며? 어쩐지 괴물 같은 힘이라고 생각했어. 기분 나쁜 머리색이야. 너희 때문에 괴물이 늘어났어. 이 괴물!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따돌려졌다.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우리가 배고픈 건 다 챠콜 때문이래. 챠콜은 대단한 게 아냐, 이상한 거야. 우리랑 달라. 우리랑 틀려.
이제껏 당연하게 여겼던 세상은 사실 간단하게 무너져버릴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 가르쳐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철저하게 외면당했고 없는 존재 취급을 당했고 모든 화풀이의 대상이 되었다.
아프지 않은 몸이란 게 축복이었는지 아니었는지 아이는 아직도 답을 내릴 수 없다.
「네가 나쁜 게 아냐. 사일란은 잘못이 없다.」
그렇게 말해준 건 아이를 거두어준 용병이 유일했다. 아이는 겨우 그의 손을 붙잡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뒤로 남들 앞에서 제 목을 보인 적은 한 번도 없다. ……겁을 먹어버려서.
동쪽 사막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것도 사일란의 탓, 몬스터가 흉포해진 것도 사일란의 탓, 농사를 망친 것도 사일란의 탓, 비가 오지 않는 것도 사일란의 탓, 오늘 내가 도박에 실패한 것도 사일란의 탓, 내일 네가 넘어지는 것도 사일란의 탓. 쉴 새 없이 들은 이야기다.
그 말들을 곧이곧대로 믿는 건 아니다. 챠콜은 스스로에게 그렇게 대단한 힘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누구 탓을 하는 거야. 뭘 멋대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어.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니까. 오히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억울하고 원통해서 답답한 속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런 한 편으론 저도 모르게 위축되었다. 아무리 제가 아니라고 길길이 날뛰어도 한 명에게 부정당하고, 두 명에게 부정당하고, 백 명, 천 명, 숫자 앞에선 장사도 당해낼 수 없었다. 그래서 챠콜은 숨기는 걸 택했다. 그게 현명한 거라고, 후만도 긍정해주었다.
그렇게 이어진 두 번째 삶은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았다. 후만은 서툴렀지만 자상했고 챠콜에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사막의 바위 위에 올라서 있는 동안은 자신이 나브람이든 누든 사일란이든 상관없었다. 하지만 그 두 번째 삶도 10년을 간신히 채우고 끝나버렸다.
후만은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펜던트와 같이 실베니아에 가라고 해주었다.
「에슬리, 아카데미에 가라. 가서 사람이 되어라. 겨우 나 한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은 네 편을 만들어.」
굽이굽이 높다란 산맥을 두 번 넘어 서쪽으로 향하면 나오는 학교. 그 학교는 신분에 상관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누구든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도. 사실 챠콜은 그가 정말로 전하려고 했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그가 걱정하지 않도록 언제나처럼 활짝 웃으며 가슴을 팡팡 두드렸다.
「알았어!」
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 *
《천 명이 내 탓이라고 하면 만 명의 내 편을 만들면 그만이잖아?》
───호언장담한 그 말처럼, 유일한 제 편이 사라지고도 다시 만 명의 제 편을 만들고자 왔다. 하지만 막상 도착한 곳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왜 일하고 있는지 모를 교관들과 이상한 친구들을 떠올리며 챠콜은 잠시 제 이마를 찰싹 때렸다.
“좀 더 힘내야지. 그러려고 온 거니까.”
차가운 바람이 목덜미를 스치자 검은 옷감을 더 당겨 올렸다. 모두에게 인정받는 자리에 오를 때까지 이 표식을 드러낼 생각은 없다. 아직, 제 편이 더 많아질 때까지 조금만 더, 내가 이걸 보여도 괜찮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