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함없이 평화롭고 온화한 날씨의 어느 날이었다. 아이들을 모아놓고 그녀는 웬 책을 활짝 펼쳐 설명을 하고 있었다.
서양에는 할로윈이라는 풍습이 있다고 해요. 그녀의 말에 아이들이 할로윈-? 하고 입을 모아 묻는다. 병아리가 삐약거리는 듯한 모습에 키득키득 웃으며 그녀가 네- 하고 답한다.
할로윈이란 얼마 전 구한 서양의 서적에 실린 서양인들의 명절 중 하나였다. 죽은 사람들을 기리는 날로, 그 날 하루 유령들이 몰래 현세로 올라와 인간들과 섞여 어울리는 날이라고 했던가. 이곳의 풍습으로 말하자면 섣달그믐에 하는 나례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나례가 귀신을 쫓는 것이라면 할로윈은 귀신을 불러들이는 것이 차이겠지.
“에엑, 귀신을 불러들여요? 왜요? 무서워.”
“귀신이 뭐가 무서워. 난 하나도 안 무서워!”
“헷, 거짓말. 너 어제도 밤에 오줌 싸서……”
“그, 그런 적 없거든??”
금세 이야기가 새는 아이들을 보고 리리는 탁자를 팡팡 두드려 집중시켰다.
“제사와 비슷한 거예요. 그치만 제사는 조금 딱딱하고, 의례에 가깝다면 할로윈은 축제 같은 걸까? 우리도 귀신처럼 분장을 하고 귀신들과 어울리는 놀이죠.”
“귀신처럼 분장?”
“난 도깨비가 좋아!”
“난 예쁜 귀신 할래!”
겨우 모은 주목이 또 흐트러진다. 이제 아이들을 집중시키는 건 포기하고 리리는 그저 아이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며 웃었다. 그러면 각자 하고 싶은 걸 정해서 분장을 만들기로 할까요? 그리고 할로윈 날, 집을 돌아다니면서 당과를 달라고 외치는 거예요. 이어지는 설명에 아이들은 또 귀가 번쩍 뜨였다. 당과? 당과도 받아? 그럼, 귀신들도 맛난 걸 먹고 싶을 테니까. 당과를 주고 돌려보내는 거야. 그녀의 말이 아이들의 의욕에 한층 더 불을 붙인 듯 다들 당장에라도 하고 싶다고 가만히 있질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들뜬 아이들을 보고 빙긋 웃으며 리리는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그러면 내일부터는 같이 분장할 걸 만들기로 해요. 준비해오기.”
“네-에, 선생님.”
그리고는 다 함께 몇날며칠에 걸려 분장 준비를 하였다. 아이들은 직접 바느질을 하고 가위질을 해가며 자기가 좋아하는 귀신으로 변장하였고 그녀는 아이들이 준비하는 동안 미리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부모님들에게 아이들에게 줄 과자를 부탁드렸다. 다들 흔쾌히 승낙해주고 축제에 어울려주기로 한 것이 다행이었다.
“선생님이 제일 평범해!”
“선생님은 바느질이 서툴러서 말이죠….”
“리리 선생님 얼굴이 안 보여요~!”
“어차피 귀신인걸. 얼굴 안 보여도 괜찮아요.”
“쳇. 난 선생님 얼굴이 보고 싶은데.”
처녀귀신 총각귀신 도깨비에 구미호가 섞인 와중에 그녀가 택한 건 그저 흰 천을 뒤집어 쓴 유령이었다. 아이들은 모처럼 기대했는데 실망스럽단 반응이었지만 그녀는 애써 못 들은 척을 하였다. 한 손으로 바느질 하는 게 쉬운 줄 아니. 게다가 그녀는 아이들의 부모님에게 뛰어다니며 할로윈이 무엇인지, 어떤 반응으로 대해주는 게 좋은지도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는데. 선생님의 고생은 하나도 몰라준다고 낮게 한숨을 내쉬자 아이들은 킥킥거리고 웃기 바빴다.
준비를 마치고 각자 자그마한 홍등을 하나씩 든 채 어두운 밤길을 걸어 나간다. 혼자였으면 무서워하였을 아이들도 해가 진 늦은 시간에 동무들과 있는 것이 퍽 즐거웠는지 무서운 기색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도 가끔 홍등에 비친 친구 얼굴에 화들짝 놀라기도 하는 게 귀여울까. 특히 처녀귀신 분장을 한 소화는 리리가 보아도 섬찟할 정도여서 리리는 저 아이가 나중에 크게 될 아이임을 미리 점찍어두었다.
“이리 오너라~!”
“어허. 그게 아니지.”
“당과 주세요!”
“그것도 아니지 않을까…? 얘들아.”
“당과냐 장난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건 어디서 들어왔니 대체.”
첫 집부터 아이들의 떠들썩함은 보통이 아니었다. 마을이 떠나가라 외치는 아이들 덕분에 괜히 다른 집까지 피해를 준 건 아닐까 제 발을 저려하며 리리는 이번 행사를 마치거든 다시 사과하러 돌아다녀야겠다며 몰래 진땀을 훔쳤다.
다행히 부모님들이 미리 준비를 다 해준 덕에 아이들은 장난을 칠 새도 없이 각자 챙겨온 보자기에 좋아하는 주전부리들을 가득 챙길 수 있었다. 처음엔 장난을 못 쳐서 섭섭한 것 같았지만 보자기 가득한 주전부리에 다들 화색이 되어 다음 집으로 향했다.
“자아, 이렇게 가득 줄 테니 얌전히 돌아가렴.”
“말썽피우면 안 된다?”
“귀신들도 잘 놀다가 편히 잠들겠지.”
부모님들도 은근 즐거워 보인 건 또 하나의 득일까. 지나치게 기운찬 아이들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것만 제외하면 첫 행사치고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방문할 집을 다 돈 뒤에는 마을에서 가장 큰 벚나무가 있는 곳에 모여서 얻은 것을 자랑하였다. 다 똑같이 얻어놓고 무얼 그리 득의양양하게 자랑하는지. 자기들끼리 잘 떠드는 아이들을 보며 리리는 널찍한 바위에 걸터앉아 또 다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고 힘들어라.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때였다. 겨우 쉬고 있는 그녀의 등 뒤로 누군가 어깨를 톡톡 두드려온다 싶더니 그녀처럼 흰 천으로 휘감긴 두 뭉치가 짠 나타났다. 어라, 그녀 같은 분장을 한 아이가 또 있었던가?
“당과를 줄래 장난을 칠까?”
“으음, 미안해서 어쩌지. 선생님은 당과는 하나도 안 갖고 있는데.”
아이들 몫만 챙기다 보니 제 몫은 까맣게 잊은 채였다. 누구더라, 제 비어있는 양손을 흔들며 리리는 머릿속으로 아이들을 쭉 나열해보았다. 그러나 떠오르는 아이가 없어 곤란해 하던 참이었다.
두 인영이 그녀를 꼭 끌어안아왔다.
그제야, 눈앞의 인영이 아이라기엔 지나치게 큰, 어른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안아준 품은 몹시 따뜻하고, 어딘지 그리운──
그리운……?
“왜 자기 몫은 쏙 빼놓고 다니니. 잘 챙겨야지.”
“──그, 야…… 난, 선생님인걸요.”
“그래. 잘 하고 있는 것 알고 있다.”
“……아……,”
저를 안아준 품이 누구라고 깨닫기 전에 먼저 울음이 터진다. 스스로도 깜짝 놀랄 정도로 후두둑 떨어지는 눈물에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고, 혹여나 그들이 이대로 사라질까 흰 천 뭉치를 힘껏 움켜쥐었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움켜쥔 손 너머로는 틀림없이 저와 닮은 체온이 존재하고 있어, 그게 더욱 믿기지 않아 몇 번이고 손을 허우적거렸다. 아버, 아버지. 어머니……. 어떻게, 여기? 그녀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걸까?
“늘 지켜보고 있단다.”
“넌 우리의 자랑이야.”
아아, 그렇지. 할로윈은 죽은 자가 돌아오는 날이라고 하였던가. 유령 분장을 한 이들 사이에 진짜 유령이 섞여 들어, 깜짝 놀래고 가는 즐겁고 슬픈 축제. 참으로 짧고 덧없는 하루의 기적. 벌써 돌아가려는 기색에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난다. 가지 마세요. 하지만 그 말이 막 입술을 비집고 나오기 전에 이마로 다정한 체온이 먼저 앉았다.
어째서, 얼굴도 보여주지 않아.
이제는 흐릿한 그리운 얼굴을, 보여주지도 않고. 원망이 섞인 손을 천 너머의 손이 꼭 쥐어준다. 어릴 때는 제 손이 쏙 들어갈 정도로 컸을 텐데 지금은, 어느새 엇비슷한 크기가 되어 있었다. 그 크기의 차이를 재기도 전에 천 너머가 허전하게 빈다. 아차, 안타까움에 천을 힘껏 더듬어 쥐려고 했지만 더 이상 잡히는 건 없었다.
“사랑한단다.”
두 유령은 그렇게 홀연히 사라졌다.
애타게 붙잡은 손에는 속이 빈 흰 천과, 그 아래 무더기의 당과만이 남아 있었다.
그들이 주는 선물이란 것일까. 다시금 흘러넘치는 눈물에, 아이들이 무슨 일이냐고 달려오는 중에도 차마 참아내지 못하고 그 날 리리는 펑펑 울고 말았다.
“우리 내년에도… 할까? 할로윈.”
토끼 눈이 된 선생님의 물음에 아무것도 보지 못했단 듯 아이들은 모르는 척 활짝 웃으며 답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