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스터 : 피치럼블 73

070) 11.01. 치키타 구구 AU

-이치이 귀하더보기 序章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산길을 걷다 보면 호랑이가 튀어나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떠들던 그 시절, 인간은 생태계의 최강자 위치를 차지하지 못한 채 호환마마와 요괴, 전쟁, 여러 무서운 것들 사이에서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었다. 그 당시의 인간은 호랑이든 요괴든 인간이 아닌 것들이 자꾸 인간을 괴롭힌다고 원성을 높였지만 사실 누구보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은 아직 모르는 듯 했다. 어리석기도 하지. 그러니 인간이다.피비린내 한복판에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를 한 여자가 사뿐히 나타났다. 반투명하게 짠 옷감이 날개처럼 살랑거렸고 높이 묶은 머리카락은 나이 들어 희게 샌 것과는 다른 생생한 옥색 도는 백발로, 옷자락과 함께 나풀거리니 배경을 떼어놓고 보면 제 앞마당으..

069) 10.31. 마이페이스 빨강 망토와 휘말리는 한밤의 늑대

-이치이 귀하더보기 *할로윈이니 삼하인이니 하는 날의 기원을 찾자면 제 고향 마을과는 하등 관계가 없었으나 축제라고 하는 것은 원래 기원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럼 무엇이 중요하느냐.축제란 흥겨운 것이고, 축제란 돈이 된다는 것이다. 자본! 모든 역사와 기원을 깡그리 무시하는 21세기의 논리가 빛을 발한다.이런 날은 특히 가장의 주머니가 가벼워졌고 소중한 상대가 있을수록 가벼워졌다. 그야 길만 걸어도 음악이 들리고 꽃가루를 뿌리는데 그 재롱을 봐서라도 값을 치러야지. 자본주의의 마녀는 이 날을 놓치지 않았다.그 개똥 논리에 넘어가기에 남자는 현실주의자였고 동시에 원리원칙에 의거한 이상주의자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그가 생각하는 ‘정석의 할로윈’, 혹은 ‘이상적인 할로윈’ 그 어디에도 눈앞에 있는 국적 불명..

068) 10.10. 그 숲에는 호박 귀신이 산다

이치란으로 [검은 저택의 초대] 테마로 할로윈 합작을 했어요. 더보기 ※ 유아의 사망, 아이를 잃은 부부의 우울한 묘사가 등장합니다. 긴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움트자 여자는 옷을 짓기 시작했다. 그 동네에는 남자아이는 3살, 5살에 여자아이는 3살, 7살에 한번씩 행복과 건강을 바라는 제사 풍습이 있었는데 올해, 아이가 7살 되는 해였던 것이다. 지금부터 짓기 시작하면 가을에 맞출 수 있을까. 팔방미인으로 불리는 여자였지만 바느질에는 영 재주가 없었다. 그래도 예쁜 옷을 지어주고 싶다는 일념으로 아주 오랜만에 제 발로 방을 나왔다.장에 나가 옷감을 골랐다. 모두가 여자를 쳐다보았지만 시선을 개의치 않았다. 누구든 나갔다 하면 인사를 하고 눈이 마주쳤다 하면 웃던 지난날과는 사뭇 다른 태도였으나 손가락질할..

067) 07.20. 호우好雨

with.이치이여름숲합작 에 참가했습니다~더보기  우기를 앞둔 숲의 날씨는 변덕스러웠다. 맑은 것 같다가도 먹구름이 모이기까지 수 분 걸리지 않았다. 이럴 때 과학이라든지 문명이라든지가 발달하는 대가로 자연의 감을 잃어버린 인간들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다. 모르는 거다. 곧 자연이 물폭탄을 떨어트릴 것을.도리어 기민한 건 포켓몬 쪽이다. 코로, 더듬이로 먼저 대기 중의 습도가 올라가는 걸 눈치챈 포켓몬들이 트레이너를 잡거나 밀거나 해야 겨우 트레이너도 “왜 그래?” 한 마디 남기며 포켓몬의 인도를 따랐다. 그렇게 몇 걸음, 막 잎사귀 무성한 나무 그늘에 닿자마자 천둥이 쳤다. 산울림이 가시기도 전에 눈앞이 번쩍했고 그 뒤를 빗줄기가 쏜살같이 쫓아왔다.쏴아아─, 시원한 소낙비였다.“아이쿠. 모모, 이리 ..

065) 01.29. if

이치이 귀하 더보기 고작해야 20년 살아온 짧은 인생이면서 여자는 때때로 인간사에 통달한 것처럼 굴 때가 있었다. 그야 인생 경험이 저 앞의 동갑내기 청년보다 깊다는 장담은 못 해도 넓다는 장담만은 할 수 있으니 가슴을 내밀고 으스댈 정도는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한 가지, 몇 번인가의 경험을 통해 내린 만능은 아닌 인간 마음의 법칙이 있다면 바로, 인간은 자신이 받고 싶은 걸 남에게 해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그게 무슨 욕구의 표출이고 어디에 근간하고 있는지를 연구한다면 직종이 바뀌겠지. 거기까지 인간 본성을 탐구할 생각은 없었다. 저 마음이 어느 상황에나 적용되는 만능키가 아닌 것도 알았다. 인간의 마음과 행동이란 것은 얼마나 복잡한가. 같은 행동을 취하더라도 어제와 오늘의 의..

064) 12.23. 一華

ㅡ이치이 귀하 더보기 ─이치이 귀하 01. 시작점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그곳에는 위기회피도 되지 못한 도망태세의 닮은꼴이 둘 있었다.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도망치는 게 어디 우리만의 특성일까. 회피란 인간 본능의 자기방어기제나 같다. 그러니까 분명 우리만 도망가는 게 아닐 거라는 저열한 변명을 하는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 서로가 꽁지를 말고 내빼는 도망을 봐버리고 말았으니 그때부터 닮은꼴의 도망태세라고 인식해버린 것도 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여자가 조금 억울하다고 그래도 내가 너보다는 낫지 않냐고 항변하는 데에는 정확히 이쪽에서 그의 도망을 목격한 것이 한두 번도 아니었거니와 심지어 맨 첫 순간의 그는 자기 생명이 위험할 때나 발동하는 꼬시레의 특성도 아니고 아프든 간지럽든 상관..

063) 12.20. 활개를 펴다

ㅡ녹새 귀하 더보기 차가운 공기를 맞으며 여자는 아침부터 도원림 깊숙한 곳을 산책 중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어떤 포켓몬이 있는지도 주로 도감을 통해 확인했던가. 여기까지 올라오는 일도 쉽지 않을 텐데 이참에 구경 좀 해야지 싶었다. 포포, 봐봐. 여기는 정말 강한 포켓몬들이 많아. 모아마을 오아시스의 일짱을 담당하던 조그마한 하느라기에게 속삭이다가 목적지 도착이다. 도원림 안쪽의 대숲이었다. “오랜만에 솜씨 좀 발휘해 볼까.” 죽통밥이 먹고 싶다는 귀여운 부탁에 의욕이 났다. 맛있게 먹어주는 얼굴은 볼 때마다 뿌듯한 게 그렇게 크지도 않았던 직업의식을 키워주는 보람이 되는데다, 리그에 오르기로 결심한 이후부터는 내내 리그란 무엇이고 제 두려움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올라도 되는 것인지 가서 잘 할 수..

062) 12.15. 태산이太山移

ㅡ리그 입성 로그 더보기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잎 나부끼는 소리가 들리는 늘봄의 어느 코트 위, 짐리더 대 챌린저의 위치를 넘어서 그저 한 사람의 트레이너로서 마주했다. “조언을 들려줘. 인생의 스승님!” “……하! 인생의 스승이라니, 낯간지런 소릴 다 듣겠군 그래!” 낯간지러운 말이라고 답하면서도 진달래는 썩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제게 지겹게 도전하고 깨지고, 종국에는 코트 위에 올라서서 무책임하게 기권이나 선언하던 녀석이 리그에 오르도록 성장하는 것에 그도 감회가 깊어진 것일까. 그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이미 거기까지 도달했다면 네가 가장 잘 알 거라고 생각하는데. ──오로지 한 가지! 심플하게 생각하자고. ‘이왕 시작한 거, 최고가 되자!’” “그야말로 달래 씨다운 말이로구만. 그런 대답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