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상춘곡 6

할로윈

변함없이 평화롭고 온화한 날씨의 어느 날이었다. 아이들을 모아놓고 그녀는 웬 책을 활짝 펼쳐 설명을 하고 있었다.서양에는 할로윈이라는 풍습이 있다고 해요. 그녀의 말에 아이들이 할로윈-? 하고 입을 모아 묻는다. 병아리가 삐약거리는 듯한 모습에 키득키득 웃으며 그녀가 네- 하고 답한다.할로윈이란 얼마 전 구한 서양의 서적에 실린 서양인들의 명절 중 하나였다. 죽은 사람들을 기리는 날로, 그 날 하루 유령들이 몰래 현세로 올라와 인간들과 섞여 어울리는 날이라고 했던가. 이곳의 풍습으로 말하자면 섣달그믐에 하는 나례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나례가 귀신을 쫓는 것이라면 할로윈은 귀신을 불러들이는 것이 차이겠지.“에엑, 귀신을 불러들여요? 왜요? 무서워.”“귀신이 뭐가 무서워. 난 하나도 안 무서워!”“헷..

~2017년/상춘곡 2017.07.14

꽃이 소중한 까닭에

: 시환 폭풍우가 몰아친 다음 날이었다. 덧대었던 나무판자를 떼어내고 꼭꼭 걸어 잠갔던 창문을 활짝 열자, 언제 그랬냐는 듯 말간 하늘이 반겨주었다. 후우, 하고 깊이 숨을 들이쉬자 촉촉하고 달콤한 공기가 폐를 감돈다.“오늘은 기분 좋은 하루가 될 것 같네.”아직 이슬방울이 남은 꽃길로 나와 한들한들 걷고 있자니 꽃들도 기분 좋게 웃어주는 듯 했다. 사나웠던 비바람을 견디고 살아남은 아이들에게서 강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그 기운을 넘겨받듯 꽃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가 다가왔다.“대단하군요. 그저 한없이 여려 보이는데.”그렇지. 마냥 여리게만 보이는 생명이지만 그래도 살아있다고, 더 살고 싶다고 악착같이 흙을 움켜쥐고 살아남는 생명.동시에 덧없는 것.무참히 꺾이고 만 꽃송이를 쥐고 허망해 ..

~2017년/상춘곡 2017.07.14

소중한 벗에게

: 황재신 사랑 고백을 했다고 들었다. 아무래도 작은 마을이다 보니 이런 소문은 발 없는 말처럼 빨리 돌아서,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그 소식을 귀에 전해 들었다.고백, 사랑 고백……. 상대에게 연심을 품고 앞으로 함께하자고 말하는 그 조심스러운 속삭임. 굉장한 용기라고 생각했다.저는 갖지 못하는 용기였다. 그래서 밤의 장막에 숨어 혼자 한숨을 내쉬는 그의 옆에 힘이라도 내라고 술병 하나를 선물했을 뿐인데,“에헤헤~”“역시 그만 가는 게 낫겠구나.”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성년식을 치르고 몇 번 마셔보지 않은 술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술 냄새를 풍길 수도 없거니와, 주위에서 딱히 함께 마실 상대가 없어서─아주머니 아저씨들과 마셨다간 살아남을 수가 없다─어쩌다 한 번 혼자서 자작을 하고 말..

~2017년/상춘곡 2017.07.14

옆자리가 따스한 꿈

꿈에서 아이는 언제나 똑같다. 무력하게 비명을 지르기만 한다. 때로는 아이가 되어, 때로는 이 모든 광경을 그저 지켜보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관객이 되어 그녀는 꿈을 꾼다.「어, 머니…. 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안 돼. 싫, 어. 싫어!!!」「네가 리리로구나. 하하, 그래. 혼자는 쓸쓸하지. 금방 보내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칼을 든 남자가 몇이나 작은 집에 밀어닥치고 어머니와 아버지와 함께 소중히 꾸민 집이 흙발로 마구 짓밟힌다. 새까만 밤이었다. 달도 제대로 뜨지 않던 그저 칠흑 같던 밤, 남자들은 이유도 말해주지 않은 채 들이닥쳐 어머니를 죽이고 아버지를 죽였다.이제껏 날붙이란 농사를 지을 때, 혹은 요리할 때만 쓴다고 생각했다. 그 날카로운 게 사람을 향한다는 건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2017년/상춘곡 2017.07.14

전복죽

아이의 부모님으로부터 전복을 선물로 받았다. 이 귀한 것을 어찌……, 하는 마음으로 머뭇거렸지만 꼭 챙겨 드시고 몸보신 하라는 아저씨의 말에 못 이겨 받고 말았다. 손바닥만 한 전복이 둘, 이것을 어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요즘 마을이 북적북적 해진 것을 떠올렸다.워낙 산세가 험하고 외진 곳에 있어 아는 사람만 안다는 평화롭고 조용한 골짜기 마을, 그런데도 불구하고 용케 찾아오는 사람들이 드문드문하면서 끊이지 않는 이곳이 근래는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북적거리는 곳이 되고 말았다. 며칠 전의 밤은 정말 축제라도 하는 것처럼 밤새 이야기소리로 환하였지.새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 봄, 계절에 맞춰 방문한 사람들, 평화로운 게 제일이라지만 매일매일 비슷하게만 흘러가던 일상에 불어온 변화는 마음을 설렘으로 가득 채..

~2017년/상춘곡 2017.07.14

상춘곡 : 리리

"쉿, 잠시 내게 귀를 기울여 봐요." 이름 : 리리蘺俬나이 : 21세성별 : 여키/몸무게 : 156cm/49kg외관햇빛에 닿으면 옅은 갈색으로 비치는 검갈색의 머리카락이 가슴 아래로 이어진다. 귀 옆으로 한 가닥씩 가늘게 땋아내린 게 양쪽으로 두 가닥. 앞머리는 오른쪽으로 가볍게 넘겨 눈을 찌르지 않게 하였다. 눈동자는 물속에서 반짝이는 조약돌처럼 살짝 푸른 빛 띄는 검은색. 전체적으로 오밀조밀한 얼굴형으로 앵두를 머금은 도톰한 입술이 매력 포인트.한푸에 가까운 옷을 입고 있다. 연두빛 물이 든 치마는 가슴부터 발목까지 덮는 하늘하늘한 형태에 위로 분홍색의 저고리를 입고 있다. 저고리 한쪽 끝에 매달린 노리개와 머리에 꽂은 꽃핀을 제외하고는 수수한 편.성격쉿, 이라는 말이 좋았다손가락을 입술 가까이 대..

~2017년/상춘곡 2017.07.14